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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Dec 15. 2023

우린 모두 몽유병 환자가 아닐까

[Movie] 잠 (2023. 12. 13 )

  나는 공포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

간 졸이며 긴장 타는 순간도 싫고 상상도 못 한 기괴하거나 끔찍한 상황을 러닝타임 내내 몇 번이고 마주치는 것도 싫고 큰 소리에 놀라는 것도 싫다.

영화 '잠'의 예고편을 보며 '아, 이건 내 영화가 아니다.' 싶었다. 분명 영화 보는 내내 깜짝깜짝 놀라며 눈을 감고 무언의 욕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상상되었고, 몽유병이라는 참신한 주제로 만든 영화라고 하니, 꽤나 궁금하였음에도 지금까지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이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는다. (OTT프로그램에 무료로 떠서는 아님(?))


  이 영화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수면장애, 몽유병은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기 위한 소재였을 뿐이다.

사실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글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전적으로 저의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현수와 수진은 서로를 정말 사랑하고 이해하고 있음에 분명한 아주 예쁜 커플이다.

현수가 무명배우로서 자신에게 의구심을 품을 때에도 수진은 현수 자신보다 현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예쁜 아내이며, 현수 또한 아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사랑해 주는 자상한 남편이다.



  이렇게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분명히 있음에도, 현수는 수진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물론 본인은 의도치 않았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수진은 현수에게 큰 불안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게 된다.

이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헤쳐나가려고 하지만, 오랫동안 반복되고 점차 정도가 심해지는 현수의 문제는 수진을 아프게 한다.



  점차 지쳐가는 수진은 이 문제에 대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된다. 현수가 의도치 않게 딸을 해치거나 죽일까 봐 밤에 잠을 잘 수가 없고 더 이상 현수의 주변에서 편할 수 없다.

정신적으로 약해진 수진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무당을 집에 끌어들이기에 이르고, 무당이 던진 말을 현재 상황과 대입하며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증명되지 않은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을 사실이라고 믿기에 이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고 자신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자, 어떤가.

현수가 의도치 않게 수진에게 준 상처는 극 중에 '몽유병'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 우리는 몽유병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는 상처'를 주곤 한다.

의도치 않은 날이 선 말투, 의도치 않은 무심함, 의도치 않은 집착.

그런 '의도치 않는 폭력'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는 그 상처에 매몰되어 상황을 바로 보기보다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비뚤어진 자신의 다른 방도를 찾게 된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절박함이 생기는 것이다.


  수진이 아래층 여자의 개를 죽이고 현수에게 "이제 쌤쌤이야. 내가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어?"라는 대사를 한다.

나에게는 이 대사가 왜 이렇게 와닿았을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그 사람이 의도를 했던 하지 않았던) 억울한 마음이 들고 그대로 갚아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마음수련이 아주 잘 되었거나, 갚아줄 재간이 없어서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것이거나, 아직 갚아주고 싶단 생각이 들 만큼 심하게 당하지 않을 것일 테지.




  서로 사랑하고 아끼기에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된다.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고 이해하기로 약속을 하지만, 의도치 않는 부분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렇지만 해결해 보고자 아득바득 살아간다. 관계란 이런 걸까.

  극 중 현수는 결국 강한 약을 먹고 몽유병이 치유된다. 그렇지만 수진에게 남은 상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사고로 이어지고 만다.

그런 수진을 위해 현수는 마치 문제가 수진이 생각했던 대로 해결된 듯이 연기를 해주고, 둘의 문제는 해결된 듯이 보이지만, 이번 한 번만 지나갔을 뿐이다.

또다시 '의도치 않은 폭력'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사랑하지만 상처 주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관계"에 대해 이 영화는 "잠"이라는 세계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나처럼 공포영화인줄 알고 지레 겁먹고 영화의 플레이 버튼을 아직 못 누르고 있는 분이 있다면, 한 번쯤 마음을 달리 하여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흐린 눈을 하며 맘 졸여야 하는 장면들이 있긴 하다)



PS. 윰블리는 역시 윰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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