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이미 2024년 9월 10일 끝난 전시에 대한 때 늦은 감상문입니다... 게으른 제가 죄송합니다...)
내 삶의 끝을 내가 정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건 언제가 되어야 할까?
몸이 극심히 아파서 거동하기 힘들 때?
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났을 때?
돈이 없고 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때가 온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는 것은 어떤 순간을 상상해도 최악이다.
그런 순간이 어떤 이에게는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을 때였다고 한다.
"베르나르 뷔페"
처음에는 생소하게 느껴졌던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전시회 덕분이었다.
지금은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정우철 도슨트 님을(도슨트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붙어서 생긴 별명) 그때 처음 만났었다. 작가와 작품을 스토리로 풀어 설명해 주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지닌 그분의 도슨트를 들으며 나도 처음 알게 된 뷔페라는 작가의 삶에 대해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전시와 겹치지 않는 많은 작품들이 한국을 찾아왔다는 소문에 다시 한번 뷔페 전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순전히 우연히 정우철 도슨트 님을 다시 만났다. 이번 전시는 도슨트가 누구인지를 미리 공개하지 않아, 누가 나올지 알 수가 없었는데, 몇 년 전 만났던 같은 분을 다시 만나게 되어 아주 반가웠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몇 년이나 지난 전시이고, 명성이 자자한 화가가 아니었음에도 베르나르 뷔페라는 화가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고 또다시 전시를 찾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일단 뷔페는 "잘생겼다" ㅋㅋㅋ
어떤 화가의 전시에 갔다가 그림만큼 화가의 사진이 선명히 기억에 남는 일은 내 경험 상 뷔페전이 유일하다. (피카소전에 가도 피카소 얼굴에는 전혀 감명받지 않음)
일생의 뮤즈이자 평생 하나의 사랑이었다는 애나벨과의 첫 만난 자리에서 찍혔다는 그 사진 속 그들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어울리는지... 사진 속 창밖으로 그들을 내다보는 할머니의 시선을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된다.
뷔페는 젊은 나이에 급부상한 인기 많은 천재 화가였고, 당시 파리 미술계의 아이돌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난한 화가로서 물감이 부족해서 색채감이 부족한 그림을 그려야 하기도 했지만 이름을 떨치고 부자가 된 이후에는 물감을 풍부하게 쓰다 못해 캔버스 밖으로 물감이 부조처럼 튀어나온 임파스토 기법의 유화를 그리기도 했다는데, 풍부한 표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건 아닐까?
물감 부족
물감 풍부
20대의 젊은 나이에 명예와 엄청난 부를 모두 얻게 된 천재화가 뷔페는, 결국 그가 초심을 잃었다고, 상업예술에 물들었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미움을 사기에 이르렀다.
태어난 김에 산다는 기안 84도 연예대상 수상 이후 초심을 잃었다는 장난 섞인 놀림을 받는 판에, 혜성같이 나타난 젊은(데다 잘생긴) 천재 화가가 값비싼 차(롤스로이스였다고 한다)를 타고 으리으리한 성(castle)을 사서 생활하는 데다 상업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대중들의 미움을 살만도 했을 것 같다.
배고프던 시절에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번뜩이는 개성이 담긴 천재적 작품들을 그리던 재능이 이제는 기껏 자동차 판매를 위한 그림에 쓰이다니. 대중들의 실망감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련만, 이야기를 듣는 나는 왠지 뷔페의 모든 행보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잘생겨서만은 아님)
그는 상업미술'만' 한 것이 아니라, 상업 미술'도' 한 것이었다. 평생 동안 끊이지 않고 그림을 그려왔고 하루도 그림을 그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그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의 유일한 편이 되어 주었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나가는 참상을 목격한 이후, 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했던 그의 마음속에는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항상 드리워져 있었을 것이다.
그와 관련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어둡고, 지쳐있으며, 거짓 웃음을 웃고 있지 않다. 지친 광대의 모습으로 자화상을 그리곤 하던 그는, 거짓으로 꾸며진 모습의 사람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결국 모두 지친 광대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가.
세상의 비난이나 차가운 시선에 어떠한 변명도 늘어놓지 않고 조용하고 묵묵히 그림을 통해 숨을 쉬며 살아갔다는 그는, 71세의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 애나벨이 있고, 그 어떤 경제적 궁핍도 없는 편안한 이 세상을 더 이상 살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파킨슨 병으로 손이 떨려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그의 마지막 때문에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엄청난 부와 명예, 사랑은 그에게 모두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림만이 그를 살아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그런 진심이 그림에 묻어나는 것 같아 모든 그림이 진지하고 절박하게 느껴진다.
그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그림 '브르타뉴의 폭풍'
상처받은 천재 화가의 마지막이 결국 자살이라니. 그것 참 드라마틱하다.
'나에게 그림이 없는 삶은 없다.' 단호한 그의 결단이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용기 있게 느껴진다.
나에게 그런 원동력을 주는 삶의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