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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드람희 Sep 12. 2022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

잘 싸우는 방법

결혼을 하기 전부터 결혼을 한 후 지금까지 남편에게 제일 고마운 부분은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기분이 좋을 때나 기분이 나쁠 때나 항상 똑같이 말을 예쁘게 합니다. 저로써는 참 신기한 부분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기분이 좋으면 말을 예쁘게 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나쁜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욕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 기준에서 나쁜 말들을 하며 언성을 높입니다. 그때그때의 감정을 쏟아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물론 자신의 감정을 너무 다 드러내고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저는 서운하거나 억울하거나 하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참고 속으로 삭이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 감정을 차분히 이성적인 말로 남편에게 전달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서운하면 눈물부터 쏟아지고 콧물을 먹으며 잘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꾸역꾸역 내뱉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좀 낫습니다. 1년 정도 같이 살면서 몇 번 남편과 다퉈보며 어떻게 싸우는 것이 잘 싸우는 것인지, 어떻게 화해하는 것이 잘 화해하는 것인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은 참 좋은 습관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많은 상황을 긍정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기분 좋은 감탄사와 듣기 좋은 말로 장식하는 것,

예쁜 말을 하는 습관은 삶을 들뜨게 만들고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을 특별한 추억으로 만듭니다.



오늘 아침 집 밖을 나오니 마당에 꽃무릇이 막 피어있었습니다.

"자기야 이리 와봐! 꽃무릇이 피었어요~ 너무 예쁘네요~ 막 피려고 하는 게 너무 사랑스럽다~"

오늘 아침이 더 화창 해지는 느낌입니다.


사실 남편과 결혼 후 초반에 저는 저희 남편의 이런 표현들이 신기하고 어색했습니다. 그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마당의 모습에도 매일 같이 예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주말만 되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현관문을 활짝 열고 좁은 현관에 앉아 마당을 한참 바라보며 "아~ 너무 좋다~ 우리 집 예에~쁘다! 자기도 여기 옆에 앉아요~"라고 합니다. 저는 굳이 앉아서 안 봐도 잘 보이는 풍경이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은 풍경인데 왜 저리 좋아하는지 갸우뚱했습니다. 하지만 주말 아침, 남편의 살짝 들뜬 기분을 같이 느끼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어쩌면 특별할 수 있는 것에 같이 미소 지으며 "예쁘다~"라고 한마디 하는 기쁨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하루의 시작이 싱그러워지는 것은 말 한마디면 충분했습니다. 함께하는 주말 시작이 더 행복해지는 것도요.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은 평소에도 참 좋은 습관이지만 싸우거나 다툴 때 특히 빛을 발합니다. 예쁜 말 몇 마디는 감정적인 상대방을 안아주고 다독여 있는 같습니다.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는 쓸데없는 자존심만 앞서고 문제의 본질과 상대방의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 감정이 더 서운하고 서운해, 저는 더 슬퍼져 한없이 어려지고 어릴 적 아빠 엄마가 안아주기만을 기다리는 아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제가 잘못했어도 끝까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남편이 먼저 안아줬으면 하는 욕심만 내세웁니다. 이런 저를 꿰뚫어 보는 것인지 남편은 매번 먼저 손을 내밀고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자기가 서운했구나~ 몰라줘서 미안해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하며 안아줍니다. 꼭 이렇게 남편이 미안하다고 다가와주면 그때서야 저는 저를 돌아보고 남편에게 미안해져 쭈뼛쭈뼛 미안하다는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이성이 찾아오면 이 사람은 떼쓰는 저를 왜 항상 차분히 안아줄 수 있는지 생각하며 매번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가와주는 남편에게 고맙고 더 미안해져 버립니다.


요즘은 남편과 다툴 만한 일이 생기면 저도 남편처럼 차분히 제가 왜 화가 나는지, 왜 서운한지 설명하려 노력합니다. 힘들어요. 화가 많이 나면 설명이고 뭐고 그냥 언성부터 높아지고 눈에서 진짜 레이저가 나옵니다.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화를 분출해버리고 싶고 용가리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면 남편에게도 상처가 되고 저에게는 더 좋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화를 참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게 되어 싸움이 더 커질 수 있거든요. 싸움의 본질을 잃고 화를 내며 서로를 더 미워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감정을 쏟으면 스스로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처음 남편이 저와 싸우고 난 후 화해할 때 저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화가 나서 다투더라도 우리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대해줍시다.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자기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 자기를 소중히 대하려 해요. 화를 내더라도 나를 소중히 여기며 말을 해주세요."

저는 화가 나면 상대가 소중하더라도 제 화가 불쑥 튀어나와 발사되다 보니 소중함은 순간 잊히고 제 감정이 우선되어버리는데 남편은 이성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상대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드는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고 맞는 행동인데 저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툴 때 저를 대하는 남편의 모습은 볼 때마다 정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마음이 싸울 때마저 남편으로 인해 순식간에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몇 번 다투고 나니 요즘은 싸우는 빈도와 정도가 줄었습니다. 싸울 때 쓰는 말들을 조금씩 바꾸고 남편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겠다 생각하며 말하니 싸움이 될 일도 작은 말다툼에서 끝나고 작은 말다툼이 될 일은 귀여운 말장난으로 끝납니다. 표현 하나,  말 한마디가 정말 중요하구나 싶습니다.


싸운 뒤 화해하고 나서 요즘 저는 남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 이번엔 화를 예쁘게 내지 않았나요?"

하지만 아직 남편은 이렇게 답합니다.

"흠... 잘 모르겠네요?"

저는 나름대로 제 화내는 방식이 많이 차분해지고 예쁘게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직 멀었나 봅니다.

제 노력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지만 남편이 그렇게 느꼈다니 할 수 없죠.

평생 바뀌기 힘든 부분인가 싶지만 그래도 노력할 겁니다.

제가 남편에게 느끼는 고마움을 남편도 저로 인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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