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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n Apr 27. 2024

오늘 해고 당했어요

우울증 8년차 그리고 4년차 직장인의 해고일지

"죄송해요, 본 채용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손이 떨렸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안되겠어? 정도였다.




23년 10월 말에 입사하여 첫번째 수습 기간을 마치고 수습 기간을 연장하자는 말에 흔쾌히 그러겠다 대답했고, 그렇게 잘 다니고 있었다.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하며, 성과도 꽤나 있었다. 계약 만료 아니 본 채용일자가 딱 3일 남았을 무렵에 팀장은 나에게 잠시 제 1 사무실로 와달라고 했다. 뭐가 급한가 싶었지만, 사실 회사 메신저에서 와달라고 할 때부터 설마?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가 해왔던 것들이 있었기에 겁먹지 않았다.


1 사무실에 도착해 팀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배가 아파왔다. 어릴 적부터 항상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염이 오던게 역시나였다. 화장실에 와 회의실에 들어가려고 하기 전, 혹시 모르니 휴대폰에 녹음기를 켰다.


시덥지 않은 인사들이 오고가고, 팀장은 빙빙 돌려 말을 했다. 본 채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도의적으로 한달치의 급여는 줄테니 원하는 날짜까지만 나와 인수인계를 하고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다음 주 월요일에 대표가 직접 나에게 왜 본채용이 되지 않았는지 설명할거라고 했다.(내 계약 만료는 일요일이었고, 목요일과 금요일 대표는 휴가였다) 대표는 내 계약 만료 침착하게 알겠다, 마지막 날짜는 생각해보겠다 하고 나왔다.


안색이 안좋아 보인다는 말은 진짜였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너무 놀란 나머지 손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2 사무실로 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좋았으면 좀 나았으려나? 그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잡친 기분, 비라도 오니 다행이었다.


우울증 약을 끊은지 딱 2개월만의 일이었고, 숨이 막혀 다시 병원에 먼저 가야하나 했다. 버릇처럼 하던 내 탓을 하기 시작하려다가, 내 뇌는 많이 나아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팽팽 돌아갔다.


노무사를 찾아 연락을 취하고, 같은 직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는지 찾았다. 속이 좋지 않아 밥을 굶으려다가 회사 돈으로 한끼라도 더 먹자 싶어 죽 집을 찾았고 나와 같은 입장에 처해있다가 먼저 나가게 된 입사 동기에게 연락을 하고 차분하게 애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내 탓을 할 것 같았지만 예전처럼 술이나 먹고 허튼 짓을 하거나 잠에 들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나는 내가 해야할 일들을 정리해서 하나하나 해 나가고 있었다. 내 스스로 내가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나는 성큼 나아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래왔듯, 나는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한 13.56% 정도지만?

계획이 철저한 98% J인 나는 그 전부터 수습 기간 본 채용 거절에 대한 이야기들은 수 없이 찾아봤고, 케이스들을 알아보고, 커뮤니티와 노무사들과 연락을 하며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본 채용이 거절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을 뿐. 내가 세워놓았던 4가지의 계획 중 가장 낮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던 일이 실행될 줄은 몰랐다.


근데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도 아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나아가야만 했다.

나에게는 오래된 월세집과 두 마리의 고양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회생 인가를 일주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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