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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n 18. 2023

이게 바로 행복, 이라는 정신승리

웃고 울고 투덜댔으면 좋겠어요

너: 이사에 대해 엄마한테 장문의 메시지가 왔어, 어찌나 길게 섭섭함을 담으셨는지.. 또 감정적인 짐이 생겨버렸네.


나: 아이고, 벌써 어머님께 말씀드렸어? 이사 갈 때까지 어머님 어쩌시고 너는 또 어쩌냐.


너: 날짜를 정한 것도 아닌데 막내가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갑자기 '할머니 우리 *월 *일에 **로 이사 가서 이제 할머니 보러 자주 못 와요' 이런 거야!


나: 푸하하, 애들은 정말 예측 불가능하네.


너: 멀리 간다니 (그렇게 안 멀어) 그동안 더 잘해줄 걸 싶어 마음이 쓰이는구나, 앞으로 자주 못 본다니 섭섭하구나, 이런 메시지가 왔지. 나는 진짜 궁금해. 엄마는 내가 옆에 있어서 지금 찐 행복한가!


나: 그건 왜?


너: 우리랑 있을 때 엄마가 밝거나 그러지 않아. 아빠는 애들이랑 잘 놓아주는데 엄마는 딱히 재미있거나 마음 편해 보이지도 않고 말이야. 다 같이 모였을 때 그 애매한 탠션이 사실 불편하거든? 그런데 엄마는 매주 만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나는 흐린 눈 하지.


나: 엄마의 역할을 하는 그 기분이 행복인 걸까? 네 말을 들어보니 울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도 우리가 다 모여있을 때 거의 말씀이 없으시고 티브이나 폰을 보시거든. 가족 사이에 티키타카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 그렇긴 해, 누군가가 말을 시작해도 곧바로 다른 누군가가 말을 끊고야 말아. 대화라는 게 잘 없지.


너: 진짜 엄마들은!


나: 엄마도 나중에는 '다 모여서 좋았다' 그래. 친구들이랑 있을 때의 하이톤 목소리, 친구들이랑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의 그 가볍고 밝은 표정은 온데간데없는데도 엄마에게 우리와의 시간이 더 우선순위가 높다니 애매해.


너: 친구라는 역할보다 엄마라는 역할이 가지는 우선순위인가 봐. 우리 엄마들은.. 행복이라는 상태가 뭔지 아시는 걸까? 애들을 보면 진짜 분명하게 분간이 가거든. 웃거나 울거나.. 행복할 때 나는 어떤가?


나: 엄마는 우리에게 힘든 모습도 보였지만 밝은 모습을 더 많이 보였는데도 우리는 고생한 엄마만 기억한다고 얘기했었지? 그게.. 엄마가 '우리를 위해 애쓰는' 모습에 대한 기억이라 마음의 짐이 돼서 그런 게 아닐까. 엄마가 자기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었다면 우리를 지배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달랐을까?


너: 엄마에게 나를 연결시키지 않아도 되는 그런 모습? 없고 상상도 잘 안돼.


나: 한 친구가 첫째였고 동생이 많았는데 그 친구가 (아마)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거든. 그 친구는 부모의 이혼을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숨긴 적이 없어. 아버님이 많이 가부장적이어서 가족을 억압했기 때문에 오히려 어머님이 이혼을 선택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 어머님과 동생들을 여러 번 봤는데 어머님은 연애도 하시고 아이들은 어떤 가족보다 밝았어, 그 속내야 내가 모르겠지만.


너: 어머님이 아이들을 위한다며 아빠를 장착한 정상가정을 선택하기보다 자기 삶을 찾아간 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쳤겠다. 모든 부모의 이벤트에 생기게 마련인 자식의 결핍이 평생을 지배할 필요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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