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로만 가야 하는 줄 알았네
한 학생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국제학교 내에서 한국 학생들은 대체로 성실하고 성취도도 높아요. 그런데 정작 탑의 자리에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노력과 성실함으로는 최고지만, 한 분야에 몰입하는 집중력에서는 다른 나라 학생들에게 밀리는 것 같아요. 우리는 뭘 정말 잘하고 싶은지 몰라서 이것저것 해보잖아요. 두루두루 잘하는 팔방미인은 많은데, 넘사벽이라 부를 만한 친구는 많지 않아요.”
공부 말고 특별활동에 대한 관찰이었습니다. 악기, 운동, 미술 등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는 영역에서 어떤 학생들은 정말 다른 차원의 천재들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한국 학생들은 재능이 없는 걸까, 시간이 없는 걸까?'. 그 말이 한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꾸준함과 책임감,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실함입니다. 그런데 그 성실함이 방향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늘 앞을 향해 있지만, ‘지금 나는 어떤가’라는 질문에는 무슨 과목에서 성적이 잘 나오는지로 얼버무리곤 합니다. 일단 더 잘해야 하고, 어딘가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도착의 기준이 늘 바깥에 있다는 것도 문제고요. 남들이 정한 기준을 향해 달리고, 거기에 닿지 못하면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기죠. 그렇게 성실함은 방향을 잃고,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현재의 나는 점점 희미해집니다.
라떼도 지금도 사람들은 늘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직장인,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인생의 기본 숙제처럼 따라붙습니다. 지금의 나보다 앞으로의 나를 먼저 떠올리고, 오늘의 자리보다 내일의 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 스스로를 돌아볼 때도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인가’보다 ‘그곳에 도착할 수 있겠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를 앞으로 밀어붙이며, 그렇게 더 멋진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는 압박을 동기부여라고 부르며 살아갑니다.
‘되어 가는 중becoming’이라는 말은 참 매력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건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요. 우리는 무언가가 되어 가는 중일 때에만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조금 부족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도착한 누군가를 보며 언젠가는 나도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습니다. 하지만 되어 가는 중에만 집중하다 보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being을 놓치게 돼요.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의 나를 부족하고 불완전하다고 여기고, 목표에 닿으면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요. 언제나 아직 멀었다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며 좀처럼 안주하지 못합니다.
존재는 조건이 없어도 그 자체로 완전하다고 해요.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특별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오늘을 살아내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며 웃거나 침묵하고, 마음이 흔들리고 다시 중심을 찾는 그 모든 순간이 바로 존재의 증거라고 합니다. 존재는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있어요. 되어 가는 중의 내가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다면, 존재하는 나는 그 길의 중심에서 모든 시작과 길과 마무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되어감은 변화를 주고, 존재는 그 변화를 머물게 합니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삶이 완성되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부분 되어 가는 어딘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배우는 중, 적응하는 중, 이해하는 중에 여전히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답을 모르더라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되어 간다는 건 결국 존재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에요. 아무리 달려가도 출발점과 연결이 끊어지면 방향을 잃는 것처럼 존재가 없다면 무언가가 될 수도 없어요. 존재는 그렇게 되어감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자,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근원입니다.
대체 어떻게 존재에 집중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의 나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어쨌든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어’라는 말을 조용히 되뇌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아닙니다. 멈춤, 그만둠이 아니라 있음을 인식하려는 것이니까요. 내가 이 자리에 있음을 자각하면 되어 가는 중의 불안도 조금은 단단하게 버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되고 있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되어 가는 과정이 아무리 흔들려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미 그 과정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being하고, 여전히 becoming 중이니까요. 당장 도착하지 않아도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