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한 구체적인 잘못이 무엇인가
너: 애를 보면서 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돼. 평생을 부모로부터 못 벗어났다, 그때 행복하지 못했다, 이러면서 살아왔는데 내가 그 입장이 돼보니 그냥 그들도 지금 나처럼 미성숙한 성인이었을 뿐인 거야. 부모가 된다고 내가 짠, 하고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 여전히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불편하거든. 내 입장에서는 내가 불편하니까 누구 잘못인가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인물은 부모야.
나: 그렇지 그렇지, 네가 불편하다는 건 분명하니까.
너: 근데 미성숙에서 나온 대처라고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 싶은 거야. 누군가가 미성숙한 걸 잘못이다, 그럴 순 없잖아. 안 그러면야 더 좋겠지만 그냥 안타까운 거지. 그래도 나는 피해를 받았고 그 상대가 부모인 거 같은데 뭘 탓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지금 내 상황이야.
나: 그러게. ‘왜 미성숙해! 사과하세요’? 애매하네…
너: A는 애가 셋이 자나. 애들이 어느 정도 컸으니 작년부터 전문직 공부를 시작해서 필기 1차를 합격했대. 그 와중에 친정 엄마가 몸이 안 좋아지셔서 휴직하고 친정도 돕고 애들도 보고.. 그러면서 공부를 하니 그게 되나, 2차에 떨어진 거야. 안 되겠다 싶어서 주말이라도 남편한테 애들을 맡기고 공부하러 가는데 남편도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애 셋이랑 보내야 하니 너무 힘든 거지. 그렇게 둘 다 방전되가지고 자꾸 싸우는데, 어느 날 첫째 딸이 자기한테 와서 ‘엄마, 공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래. 자기도 이래저래 피곤하고 2차에서 자신감이 떨어진 와중에 그게 꽂혔나 봐, 저번에 만났을 때 그 얘길 하더라고.
나: 어머나.. 싸우는 거 보면서 애들이 불안했나 보다.
너: 그렇지. 엄마의 공부 자체가 불만인 건 아니겠지. 딸이 ‘엄마 그 공부 말고 이 공부 어때, 더 전망 있어 보이는데’, 이러면 웃기겠다.
나:ㅎㅎㅎㅎㅎ 그러니까. 머 엄마가 공부하는 게 자기한테 나쁠 건 없지. 엄마가 1차 붙었을 땐 뭔진 모르지만 자랑스러웠을걸?
너: 진심은 엄마랑 아빠가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데 당장 표면에 엄마 공부가 문제처럼 보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 뭐.
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진짜 엄마가 공부를 그만둔다 쳐. 그러고 나서 엄마가 주말까지 애들 보면 해피엔딩이야?
너: 내 말이. 아빠가 주말에 공부를 했어도 딸이 아빠에게 '아빠가 공부를 그만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을까? 주제를 벗어나니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나: 지금 우리 화제가 ‘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한 구체적인 잘못이 무엇인가’, 잖아. 당장 떠오른 게, 싸우고 나서 화해를 안 한 거야! 싸움으로 가족 전체가 불안해졌는데 그 후에 한참을 아니면 절대 자식이 생각하는 ‘원래 우리 가족’으로 돌아오질 않는 거지.
너: 아, 부모가 싸우고 윽박지르는 그 순간의 불안 말고도 있을 수 있겠네. 싸움 자체도 싫었겠지만 그 이후 갈등의 해소가 없었던 거야. 불안한 맘에 자식들도 자기 나름대로 중재해보려 했는데 씨알도 안 먹혔을 거고.
나: 해결된 건 하나 없는데 대화도 안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고, 애들도 눈치 보이게 서로 애매하게 피하다가 불만은 그 위에 더 쌓이고 또 터져. 화내며 큰소리치고,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냐고 하고, 이런 게 반복된 거지. 게다가 한 번 틀어지면 싸우는 주기가 짧아지잖아. 어떤 싸움은 감정이 격하기만하고 이유가 분명하지도 않아!
너: (잘 싸우면) 싸움 자체는 의견이 안 맞을 때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잖아. 근데 이건 그 상황 안에 자식이라는 관찰자가 있는 거야. 문제는, 자기가 관찰자인지 모르고 그 상황에 자꾸 자기를 껴맞추느라 나때메 싸운다, 내가 지켜야 한다, 내가 해결해야 되겠다 막 그러는 거지.
나: ‘자식인 나라도 나서서 해결해야지’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부모 관계가 회복됐다면 그냥 자식에게 부모는 '지긋지긋한 싸움꾼’ 정도로 그칠 수 있지 않을까.
너: 그러네. 그럴 순 없겠지만, 자식이 굳이 자기 감정을 그 상황 속에 넣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현실은 싸우고 나서 막 한쪽 부모가 자식한테 와서 한풀이하거나 다른 부모를 욕해.
나: 아니면 갑자기 나한테 ‘너 때문이라’며 화풀이하거나 다른 부모를 대변해. 환장하는 거지. 그렇게 자라니 성인 돼서 온전히 미워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하면서, 그때는 애어른으로 지금은 그때보다 더 자라지 못한 모습으로 속 앓게 되는 거 아냐.
너: 자기네끼리는 투닥거리며 싸워도 나한테 만큼은 변함없더라, 이러면 좋겠다. 내가 오갈 곳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며 자라면서 부모 싸울 땐 귀 막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럴 수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진짜 그 순간이 지나면 그 분위기가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지나가, 너무 좋겠다.
나: 그렇게 자라면 불만이 생겼을 때 '상대가 나를 버리면 어쩌지' 그런 고민 안 하면서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누가 나한테 불만 얘기해도 그 관계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너: 사춘기 지나면서 자식도 부모도 분리불안 느낀다고 하던데, 불안만 있고 분리가 없어. 반항도 심하고 엄청 분리되고 싶을 거 같은데 그보다 불안이 더 커서 결국 분리 못하고 다시 그 불안에 정착하는 건가.
나: 그걸 못하니까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 같으면 적당히 밝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거나, 감정적으로 막 대하고 사과할 필요도 못 느끼는 그런 어두운 부분을 마구 표출하나 봐. 둘 다 진짜 자기 모습이기보다 한쪽이 과장된 거지. 어떤 남편한테는 아내가, 어떤 엄마한테는 자식이, 어떤 오빠한테는 동생이 그런 대상이다가 친구, 연인, 배우자로 넘어가나 봐.
너: 어떤 부모는, 자식을 감정 위계 상 아래로 놓고 자신의 불안이 극대화된 순간에 화풀이를 하기도 해. 잘못한 것도 없는 표출 대상들은 안에서 불만과 불안이 스멀스멀 자라나서 잠식당해. 또 불안 투영 대상을 찾아.
나: 안 그래도 불안한 세상, 이렇게 가족의 위기는 강화되고, 달라진 게 없는 우리는 그냥 또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가족이니까 이해해야지'라는 강압 속에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 같이 외줄 타며 살아. 이건.. 정말 불안하지 않을 수 없어!
너: 감정은, 친구나 형제끼리 수다로, 혹은 정신적 멘토 쪽 고민상담으로 흐르게 해야 덜 폭력적으로 표현될까. 역시 건강한 수다 처방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