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가 없는 이해는 아마도 당신의 착각
드라마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은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순간들입니다. 오해는 잠깐 등장할 뿐, 말 자체가 완벽하게 해석되는 것이 일상처럼 그려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위기의 순간에 내가 의도한 ‘아’를 '아'로 표현하고 ‘아’로 받아들여진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드라마 속 상황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현실 속 대화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같은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그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어긋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각자 다른 해석을 하고, 때로는 아예 소통을 피하려고도 하죠. 과장되거나 축소된 의미 전달, 혹은 왜곡된 이해는 흔히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대화를 나누며 서로 다른 맥락 속에서 단어 하나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질되기도 하고, 자신이 하려는 말과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서 소통은 더 어려워집니다.
소통의 혼란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이해 자체가 아니라, 서로를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지금 내뱉은 말이 바로 지금 완벽하게 이해받는 것이 항상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해*는 피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이해, 하나의 정답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려 하게 되고, 오해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새로운 이해나 교감을 놓쳐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 이 글에서의 오해는 나의 편견과 사고방식 안에서 발생한 이해의 다른 버전입니다. 내 잣대로 단정 짓고 강요하는 걸 말하는 건 아니에요.
오해는 이해로 가는 길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이해에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 불완전함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이해를 향한 방향이 보입니다. 오해를 미안해하고 답답해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서로의 사고의 패턴을 발견하고 그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해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정한 소통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해 속에서 서로의 진심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는 더 깊이 연결될 기회를 얻습니다. 완벽한 이해란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그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시작입니다. 대화는 그 자체로 소통의 일부일 뿐, 그 시작과 끝, 그리고 그 과정의 소요 시간은 상대적입니다. 이해는 끝이 없는 여정이며, 오해가 그 여정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더 넓고 깊은 방향으로 오해를 하면서 진정한 이해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