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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비 아티스트 Sep 19. 2022

인생 취미. 그 첫 번째인 가드닝.

취미가 생겼다. 필요에 의해서 시작한 일인데 기대 이상 좋아져 나의 취미 no.1으로 명명하고 팠다. 이 취미는 가드닝이다. 정원에서 잘 키운 꽃은 자연스럽게 꽃꽂이로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게 취미 no.2가 되고 나는 이와도 깊은 사랑에 빠졌다. 내친김에 no.3까지 취미를 확장했다. 꽃을 꽂으려니 원하는 사이즈와 형태의 꽃병이 필요한데, 이걸 살 수가 없었다. 해서 도자기 굽기가 필연적으로 세 번째 취미가 되었다. 취미에 시간과 열정을 할애하며 사는 삶이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게 심지어는 돈벌이가 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래서 취미에 대해 생각을 하는 중이다. 어려서부터 참 많은 것들을 시도했다. 지난 세월 찔러본 취미들, 내가 한 번이라도 손대 본 취미 활동 리스트를 만들어봤다. 헬스나 여행, 영화 이런 건 그냥 생활이니, 리스트에선 빼도록 했다. 


악기 : 피아노

운동 : 수영, 스쿠바다이빙, 테니스, 스쿼시, 골프, 스키

전통 : 탈춤, 장구

언어 : 일어, 중국어, 더치

미술 관련 : 회화, 도자기, 꽃꽂이

기타 : 가드닝, 글쓰기, 독서클럽


수십 년 동안 모아 온 내 취미들을 보고 있자니 나라는 사람의 이모저모가 좀 보이지 않는가. 음악, 미술, 운동, 언어, 문화, 식물, 친목모임 등 정말 가지가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찐 오지랖이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관심과 참여의 강도는 같지 않다. 예를 들면, 위쪽 네 줄은 피아노 빼고 뭐 하나 오래 끈기 있게 한 게 없다. 피아노의 경우 소싯적에 음악에 소질 있다는 말을 들으며 6-7년 열심히 레슨 받았는데, 그것마저 지금은 멀리한 지 오래이고 요즘 나한테 음악은 Spotify 가 전부이다. 반면, 회화가 꾸준히 해온 취미라는 건 좀 의외이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그다지 미술에 소질 없으셨다는 이유로 내가 그림을 못 그릴 거라 재차 암시를 주셨다. 어릴 땐 그 말을 그대고 믿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미술은 감상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욕심이 되었고 난 틈틈이 직장 생활 중에 저녁이나 주말을 이용해, 홍콩 살면서도, 또 네덜란드에서도 회화를 했다. 지금은 꽃을 매체로 삼는 예술인 꽃꽂이와 조형 미술인 도자기가 나의 주된 취미이니 지금까지도 내 관심의 영역은 변함이 없다. 


최근 취미에 진지해진 건 네덜란드의 영향이 크다. 이곳에서 만난 현지 동료들 중 아주 취미에 진심인 친구들 덕이다. 산드라(Sandra)는 케이크 베이킹을 배우기 위해 수년간 주 4일만 근무하며 하루를 할애해 베이킹 학원을 다녔다. 이런 근무 형태는 유럽의 유연한 고용체계 덕에 가능한 일이지만,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결단이다. 5일 중 하루를 쉬니 당연히 월급이 20%가 깎이는데, 업무량은 5-10% 정도밖에 안 줄어든다고들 하기 때문이다. 즉, 5일 치 일을 4일 안에 해야 하는 격이지만 이런 투자 덕에 산드라의 빵과 케이크는 여느 제과점 제품보다 훌륭하고 그녀는 지금도 친한 친구와 동료의 결혼식에 웨딩 케이크 및 수많은 디저트 베이킹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타이스(Thijs)는 회사 파티 때마다 색소폰을 부는 친구다. 회사 밴드는 실력이 고만고만한데, 그는 그래도 제법 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저녁에 클럽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곤 했다는데, 한창때는 여기서 들어오는 수입이 월급보다 나았단다. 와우!


네덜란드의 부부들은 뭐든지 동등하게 나누는데, 가사, 육아, 경제적 분담 이외에도, 부부가 각자의 취미 생활을 할애하는 시간도 공평하게 나누는 듯하다. 예를 들면, 월요일 저녁은 남편이 친구들과 밴드 연습하는 날이어서 집을 비우면,  목요일은 와이프가 도자기를 배우며 자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남편이 정기적으로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와이프는 1년에 두어 번, 친구들과 해외로 요가 리트리트(yoga retreat)를 가서 그간의 수고를 보상받는다. 둘 중 하나가 전업 주부라 해도 이런 식의 원칙은 지킨다. 이렇듯 취미는 소중하게 취급되고 가족과 커뮤니티가 서로 서포트해가며 동등하게 즐기는 중요한 활동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중 진정 '인생 취미'를 찾은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나만해도 저 위의 스무 개 가까이의 취미 리스트 중, 지금도 애정과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는 건 3-4 개 정도이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취미에 열성인 나를 매우 부러워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본인은 시간도 많고 너무나 취미를 갖고 싶은데 뭘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단다. 언뜻 들어보니 본인이 소질이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처음의 어쩔 수 없는 서투르고 어색한 기간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달까. 남들에게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은 부담감이랄까. 그런데 과연 취미란 게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나 일은 남들이 만든 기준과 잣대에 맞춰 잘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취미는 그저 100% 자기만족이면 되지 않을까.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순수한 나의 즐거움, 나의 보람과 의미의 영역이면 될 듯하다.


내가 나의 '인생 취미'를 찾은 경로는 좀 특별하다. 게다가 나는 첫 번째 취미가 두 번째와 세 번째를 불러온 형국이니, 나의 첫 번째 취미는 더더구나 의미 있다. 그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2015년 이사 온 우리 집은 암스테르담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주택가이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에 비해 대지도 집도 큰 편이다. 우린 아이들이 뛰어놀아도 아래층에서 불평하지 않을 단독주택을 찾아 외곽으로 나왔기에, 적당히 넉넉한 정원을 갖춘 집을 골랐다. 용감한 구매 결정이었지만, 나나 남편이나 가드닝엔 경험도 취미도 없었다. 때가 되면 누군가는 하겠지,라고 둘 다 생각했던 것이다. 서로 눈치나 주고받다가 우리가 낸 해결책은 풀이 무릎까지 올라올 때 즈음에 마지못해 잔디를 깎고 나무들이 서로 엉켜 두 나무가 하나가 되겠구나 싶을 즈음에 가지를 치는, 그야말로 가드닝 최소한의 법칙이었다. 남들은 2주에 한 번은 풀도 베고, 가지도 치고, 잡초도 뽑고 한다는데, 우리는 눈에 거슬리는 것만 끝까지 미루다가 마지못해 처리했다. 


그렇게 몇 년 후, 집과 집 사이의 담을 새로 쌓는 건을 상의하러 이웃이 우리 집에 첨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우리 마당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마당이 널찍하고 좋다고 했다. 그리곤 일을 다 본 후엔, "나한테 이런 정원이 있다면 전 정말 많은 걸 해볼 것 같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그의 부러움인지 질타인지 구분이 안 가는 말을 듣고, 오랫동안 쌓여왔던 정원 관리 태만에 대한 죄책감과, 내 게으름에 대한 자괴감이 쓰나미로 밀려왔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게 얼마나 탐나게 좋은 건지,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바보같이. 


문제의 인식 이후에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몇 가지의 것들이 필요했다. 우선 시간을 확보하는 게 문제였다. 정원을 가꾼다는 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걸 알기에, 마음 한편 끌림이 있어도 계속 묻고 미룬 것도 사실이었다. 또 한 가지 마음을 열어야 할 부분은 정원일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일이고 험하고 터프한 상황들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거였다. 비와 땀과 자외선, 손톱 밑 흙때, 온갖 해충과 익충과의 애증 관계, 쪼그리고 앉은 다리와 삽질할 때의 허리의 고통, 여기저기 긁히고 찔린 상처와 알레르기 반응들.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내게 밀림의 세계는 여러 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각오가 필요한 영역이었다. 


바로 그때 즈음에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2020년 3월부터 네덜란드의 직장인은 전부 재택근무에 돌입하게 되었다. 바쁜 출퇴근 시간,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미팅과 식사, 잦은 출장, 그 모든 게 다 사라진 세상. Lock down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우리 집 담벼락 안에서의 삶만이 허용되기 시작한 그때, 나는 직감했다. 아! 이제 나와 우리 집 정원이 온전히 1:1로 맞짱을 뜨나 보다. 아니, 한동안은 여가라곤 이것밖에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다들 한숨과 탄성으로 코로나를 원망할 때 나는 속으로 일종의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정말 우연이라고 하기엔 필연 같은 이 상황은 오래 묶은 숙제를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언젠가 올 꽃이 만발한 정원의 그날을 그리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를 무장하고 호미, 삽, 목장갑을 구입했다. 나를 가드너의 길로 이끈 순리를 따라, 땅 한 뼘 한 뼘, 정원을 개척해갔다. 코로나로 세상이 시끌벅적하던 시절, 마당 한구석에서 조용히 자연과 친해지던 그 소중한 경험이 내게 어떤 자양분이 되었을지. 이제 나는 땅에서 굵직한 지렁이가 꿈. 틀. 하고 나오면 깊은 반가움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진정한 가드너가 되었다. 


어찌 보면 이 집을 샀을 때부터, 난 우리 집의 나무와 흙과 새들과 언젠가는 친해지리라 의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쳇바퀴에서 내려오지 못해 외면하고 미루던 중, 쳇바퀴가 멈추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정원 있는 집에 대한 꿈은, 어릴 적 홍은동 달동네의 우리 집 정원에서 아빠가 나무를 옮겨 심고, 호스로 꽃에 물 주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당 한 구석 타이어로 만든 그네를 타던 두 동생들의 모습과 주말마다 절구통에 구워 먹던 삼겹살의 그 환상적인 맛. 어쩌면 인생 취미를 찾는다는 것은 무의식 속의 기억과 그리움, 혹은 내 마음을 홀리게 했던 어떤 이의 노력이나 재능에 대한 인상, 이런 것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 묵혀지고 섞여 발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여러분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식물을 가까이해보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내가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예산을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만큼의 나를 실제로 투자해야 한다. 너무 많은 생각이 앞서는 것보다 계획과 실천을 섞어 병행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 처음엔 책이나 유튜브로 정보를 수집하고, 동네 화원 두어 군데를 확보해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하는 것. 조금씩 쌓은 지식들을 화원 주인과, 또는 가드닝 좀 하는 벗과 이야기 나눠 보는 것. 그 정도 했을 때 뭔가 재미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일단 시작이 좋은 거다. 


가드닝은 지적이면서도 몸을 많이 쓰고, 손은 흙투성이 되어 버리지만 공간에 멋과 운치를 더하고, 예산이 많던 적던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한, 환경과 다른 생물들에게도 유익한 참 좋은 취미 활동이다. 다음번엔 좀 더 구체적인 가드닝 체험기를 공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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