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삼덩굴

엉킴 속에서 배우는 생존의 철학

by nj쩡북

초가을 볕이 낮게 깔린 오후, 울타리 위로 가느다란 줄기들이 방향을 찾는다. 환삼덩굴은 망설이지 않는다. 손가락 같은 잎자루와 갈고리털로 주변을 더듬고, 닿는 순간 몸을 틀어 감아 오른다. 곧아지는 대신 휘어진다. 혼자 서기보다, 기대어 오르는 쪽을 택한다.

이 식물의 기술은 단순하다. 가까운 것부터 잡는다. 오늘 닿을 수 있는 기둥, 오늘 걸 수 있는 고리. 줄기는 하루에도 몇 번 방향을 바꾸고, 마디마다 새로운 결정을 내린다. 집요함과 집착의 차이를 몸으로 구분한다. 떨어질 것엔 미련이 없고, 붙잡힐 것엔 끝까지 매달린다. 선택과 포기의 리듬이 엉킴을 질서로 만든다.

우리는 엉킨 관계를 대개 ‘문제’로만 본다. 환삼덩굴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엉킴은 환경이고, 그 안에서 필요한 건 기술이다. 어디에 매달릴지, 어디를 끊을지, 어느 타이밍에 방향을 틀지. 정면 돌파가 부딪히기만 할 때, 감아 오르는 길이 있다. 한 칸 뒤로 물러 예각을 만들고, 비스듬히 올라서는 전략. 곧은 길보다 빗긴 길이 더 빠를 때가 있다.

상실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어지럽고 복잡한 선들 사이에서 내 줄 하나를 잃지 않는 법. 오늘 손이 닿는 지지대를 파악하고, 불필요한 매듭은 잘라낸다. 매듭을 다 풀 수 없다면, 새로운 매듭을 하나 더 만들어 방향을 바꾸는 것. 질서를 강요하기보다 리듬을 설계하는 쪽. 환삼덩굴은 말없이 알려준다. “엉킴은 끝이 아니라, 길의 다른 형태.”

환삼덩굴의 잎은 손바닥처럼 벌어져 바람을 잡고, 잔가시는 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지나치게 지배적으로 보인다. 이 힘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다. 주변을 삼키는 집착이 될 수도, 서로를 끌어올리는 지지대가 될 수도 있다. 같은 구조, 다른 결과. 우리는 오늘 어떤 결과를 선택할 건가.

나는 내 하루의 엉킴을 지도처럼 펼쳐 본다. 해야 할 일, 미뤄둔 연락, 정리하지 못한 감정의 선들. 전부 풀 생각을 버리고, 먼저 걸 고리를 고른다. 가장 가까운 지지대 하나. 그다음 마디는 거기서 정한다. 방향은 매 순간 바꿀 수 있다. 포기는 패배가 아니라 설계라고, 환삼덩굴은 조용히 귀띔한다.

해가 기울고 덩굴의 그림자가 울타리 틈을 길게 타고 흐른다. 나는 그 그림자를 따라 호흡을 고른다. 오늘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간다. 비켜서 오르는 기술로, 결국 제자리를 조금 높인다. 엉켜 있지만, 쓰러지지 않는 오후.

오늘 내가 밀어 넣을 작은 뿌리는 ‘각도 조정 10도’다.



깜별이의 메모


울타리 너머 공사장의 굴삭기 팔이 느리게 움직이고, 금속 소리가 한 번 울린다. 깜별이는 펜스 그림자에 등을 붙이고, 덩굴의 선을 눈으로 따라간다. 고양이는 직선보다 곡선을 신뢰한다.

한 번에 뛰지 않고, 발을 걸 곳을 먼저 확인한다. 보폭을 줄이고 각도를 바꾸면, 위험도 줄어든다는 걸 안다. 깜별이의 이동 동선이 덩굴의 회전을 닮았다. 과감함 대신 정확함, 속도 대신 각도.


- 지금 네 앞의 엉킴에서, 먼저 걸어둘 ‘지지대 하나’는 무엇일까?

위 이미지는 AI 생성 이미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강아지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