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을 뚫고 피어나는, 불굴의 의지
새벽 공기가 칼날처럼 맑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가장자리에서, 얇은 초록이 낮게 눕는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잎은 납작하게 바닥을 붙들고, 결대로 길게 뻗어 있다. 한겨울에도 색을 거두지 않는 풀. 눈이 덮이면 눕고, 해가 들면 다시 선다. 쓰러지는 게 아니라, 계절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버틴다.
뚝새풀의 힘은 요란하지 않다. 키를 키우지 않고, 뿌리를 더한다. 얕은 흙에서도 옆으로 번지며 땅을 잡는다. 잎이 넓게 눕는 건 항복이 아니라 전략이다. 바람을 덜 받기 위한 높이 조절, 추위를 덜 먹기 위한 표면적의 선택. 겨울의 기술은 늘 눈에 잘 안 보인다. 그래서 더 믿을 만하다. 보여주기 대신 살아남기.
우리는 흔히 ‘겨울 같은 시간’ 앞에서 멈춘다. 속도가 떨어지고, 문장도 얼어붙는다. 그런데 뚝새풀은 다른 답을 낸다. 얼면 눕고, 녹으면 일어나라. 낮게 가라, 그러나 끊기지 마라.
멀리 못 갈 땐 가까이 넓혀라. 높이가 안 될 땐 바닥을 붙들어라. 눈으로 가려진 날에도,
그 아래에서 진행되는 일은 분명히 있다. 보이지 않아도 진행되는 생.
서리는 아침이 깊을수록 더 반짝이지만, 초록도 그만큼 또렷해진다. 대비가 클수록 본질이 보인다. 상실이 커질수록 남는 것들이 선명해지는 법. 뚝새풀은 말없이 보여준다. 남는다는 건 화려한 의지 표명이 아니라, 일상의 관성에 가까운 루틴이라고. 낮게 눕는 자세, 조금만 더 붙들고 있는 습관, 그리고 기온이 오를 때를 기다리는 인내.
나는 오늘의 기준을 낮추기로 한다. 내일을 위한 최소치. 한 문장, 한 컷, 한 통의 안부. 버틴다는 건 가끔 ‘덜 하는 용기’를 포함한다. 비워서 흔들림을 줄이고, 줄여서 지속을 늘리는 방향. 더 버티기 위해 덜 쓰는 기술. 뚝새풀은 아래에서 그걸 연습하고 있었다. 눈의 무게가 지나가면, 초록은 다시 선다. 기다림은 실행의 반대가 아니라, 실행의 전제다.
해가 올라서 서리가 물로 바뀌는 순간, 잎끝이 천천히 탄력을 되찾는다.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겨울도 끝내 ‘과정’ 일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 계절은 지나가고, 땅은 기억한다. 나도 오늘은 눕는다. 그리고 끊지 않는다. 낮더라도, 초록은 초록이니까.
깜별이의 메모
공사장 철판이 수축하며 짧게 ‘딩’ 하고 울린다. 찬 공기가 살짝 흔들리는 사이, 깜별이는 하얀 입김을 한 번 내뿜고 뚝새풀 가장자리에 발을 올린다. 고양이는 점프를 아끼고, 체온을 아낀다. 몸을 낮추고, 그늘과 볕의 폭을 잰다. 움직임을 줄이고 지속을 늘리는 전략. 깜별이의 오늘은 ‘덜 하되, 오래 하기’ 쪽에 가깝다. 겨울을 통과하는 동물의 계산법.
- 지금 네가 겨울 같다고 느끼는 자리에서, 끊지 않고 이어갈 최소치는 무엇일까?
위 이미지는 AI 생성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