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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 아니다, 상대는 거래 조건을 본다

감정을 주는 건 자유지만, 해석은 언제나 상대의 몫이다

by 집샤

상대는 당신의 감정을 '호의'로 받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조건으로 해석한다. 당신이 무엇을 바라고, 어떤 대가를 원하는지, 혹은 왜 지금 이 타이밍에 그런 표현을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분석한다. 감정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오고 가는 구조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난 그냥 좋아서 한 거야", "아무 의도 없어", "그냥 도와주고 싶었어" 같은 말로 자신의 감정을 미화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당신이 아무 의도 없이 건넨 감정이라 해도, 상대는 당신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고 해석한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순수함'보다는 '의도'를 먼저 추론하게 설계된 생물이다.


이건 나쁜 게 아니다. 생존 본능이다.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받은 이 감정이 단순한 친절인지, 아니면 나를 관리하려는 시도인지, 이 관계의 구조를 바꾸려는 무언의 메시지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연애든 우정이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지점은 '상대가 나에게 뭘 원하는가'다. 그래서 상대는 질문 없이 본다. 그리고 조용히 계산한다. "얘가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하지?", "나를 왜 이렇게 배려하지?", "지금 이 타이밍에 왜?" — 질문이 쌓이면 감정은 무게를 가진다. 그리고 그 무게는 가끔 부담이 되고, 가끔 의심이 되고, 종종 거절이 된다. 의도 없는 호의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관계는 감정의 순수함보다 그 뒤에 숨은 동기를 먼저 체감한다.


당신이 관계 안에서 ‘무조건적인’ 것을 제공한다고 해서, 상대가 그걸 ‘무조건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거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교환의 시스템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밥을 샀으면, 다음번엔 내가 살 차례가 온다. 문을 열어줬으면,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 감정을 줬으면, 뭔가 리액션이 따라온다. 이런 ‘보이지 않는 교환 규칙’을 무시하고 감정을 주면, 상대는 혼란스러워진다. 그 혼란은 부담으로 전환되고, 결국은 거리를 만든다. 당신은 ‘호의’를 주었고,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이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이유로 멀어진다. 감정이 멀어지는 순간은, 언제나 설명되지 않은 호의가 쌓일 때다.


감정은 마치 계약 조건처럼 작동한다.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는 자신의 책임을 느끼기도 하고, 빚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먼저 연락하고, 먼저 챙기고, 먼저 도와주고, 먼저 표현한다면, 상대는 자신이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 돌려줌의 방식이 뚜렷하지 않거나,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설 것 같다고 판단되면, 그 관계는 피곤한 구조가 된다. 사람은 피곤한 구조를 회피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다. 그래서 도리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뭔가를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 먼저 관계에서 소외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필요한 건 감정을 줄일 줄 아는 훈련이다. 감정을 계산해서 주라는 게 아니다. 감정이 전달되는 방식을 관계의 문법 안에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지금 이 표현을 했을 때, 상대는 이걸 어떻게 느낄까? 감정이 아니라, 신호로 받아들이진 않을까?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교감인데, 상대는 이걸 어떤 책임의 시그널로 착각하진 않을까? 이런 계산은 연애를 재미없게 만드는 게 아니라, 관계의 지속성을 높여주는 기본적인 센스다.


모든 감정에는 구조가 있다. 아무리 순수해도, 그 감정은 상대가 느끼는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당신이 아무리 순수하게 다가가도, 그 감정이 상대에게 의무로 인식되는 순간, 관계는 부담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부담은 반드시 어느 지점에서 관계를 단절시키는 원인이 된다. 사람은 사랑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지지 못할 감정은 피한다. 감정이란 본래 아름다운 것이지만, 구조를 벗어나면 위협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은 '호의'로 시작되지만, 상대는 그것을 '거래 조건'으로 읽는다. 그리고 그 거래 조건이 모호하거나 과하다고 판단되면, 관계는 불균형으로 기운다. 호의가 실패하는 이유는, 그것이 상대의 의사 없이 구조를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주는 것은 자유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전적으로 상대의 몫이다. 감정이란, 줄 때가 아니라 돌려받을 때 그 구조가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고 연애든 우정이든, 이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만이 오래간다.


요점은 결국 연애를 잘 하고 싶으면 눈치보며 창작의 고뇌와 고통을 감당하고 머리가 터질 듯이 쉼없이 굴리라는 말이다. 귀한 인연을 편하게 얻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말고 그저 운으로 좋게 얻었던 경험 혹은 사례를 들먹이며 멍청하게 삽질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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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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