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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비 Jan 25. 2023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까

당신은 어떤-

자연스럽게 눈을 뜨니 어스레한 빛이 새어나온다. 

아침이 왔다는 소식은 눈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찌뿌둥하면서도 크게 피어나는 맑은 정신이 밤 새 이룬 깊은 잠을 말해준다. 


그가 새벽 녘 사라진 것도 같았는데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 시간과 이 관계, 그리고 이 사람 모두 현실에 잡히지 않는 환상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곳으로 손이 이끌려 눈을 떠보니 그동안의 내 현실은 사라지고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내 새로운 현실은 눈 앞에 놓인 이것들, 손에 잡히는 것들이 되어간다. 혹시 모를 꿈에서 깨어나 허망할 일이 남지 않도록 손에 더 꽉 쥐고 최대한 눈에 담을 뿐이다. 기억하기 위해 깨어 있을 뿐이다.



시간도 의식도 나 자신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이 시간, 책상 위에 덩그러이 놓여진 그의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외로움. 나를 만난 기쁨, 그리고 강한 의심, 그리고 더 강력한 확신들.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순간에 느끼는 것들은 우리 안에서 증폭된 것들이다. 제 멋대로 상상하고 자신의 의지를 투영하고 그 감정에 취해 몽롱해진다. 

모두 선명하지 않은 것들이겠지. 

그의 말처럼 서로의 존재를 선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마주하고 응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하지도, 멋지지도 않다. 나는 그저 한 마리 떠돌이 개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뿐이다. 그 과정에서 즐거움도 호기심도 열정도 생기지만 정할 곳 없이 떠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정할 마음, 어딘가에 두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를 봇짐처럼 둥글게 말아 가슴 안에 넣고 다닐 뿐이다. 당신처럼 숨결이 묻어나는 공간, 물건, 흔적이 내게는 없다. 나는 어쩌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림자가 없는 초라한 인간일지 모르겠다.

그런 나를 이렇게 좋아해주는 당신을 알 길이 없다. 

당신은 순수하고 그 순수함을 판단하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이 있다. 따끈한 열정이 있다. 언젠가 좋은 사람이 찾아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강력한 희망이 있다. 그런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당신은 밝다. 밝은 빛. 밝을수록 선명해지는 어둠. 모든 것을 함께 품는 그런 입체적인 사람. 


나도 언젠가 당신의 빛을 가질 수 있을까. 내게 그런 빛을 낼 수 있는 힘이 있기는 할까. 어쩌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동시에 당신의 빛을 흡수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내 방식으로 바리바리 챙겨와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걸지도. 그걸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이 되고 싶고 동시에 당신이 되고 싶지 않다. 당신과 함께하고 싶음과 동시에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다. 도대체 알 수 없을 이 감정과 시간이 이제는 어렵다. 

어렵다는 것. 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풀어 내고야 말겠다는 오기 속에서 갈등하는 마음들이, 그것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선명하지 않아서 더 혼란스럽기만 한 어둠 속을 허우적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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