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응원한단다.
나는 유아교육과를 온전히 내 의지로 선택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 내내 생각해온 선생님은 초/중/고등학교 선생님이었지 유치원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봐온 엄마의 모습, 그 당시 내가 제일 '선생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학과가 유아교육과였기에.
'어차피 다 똑같은 선생님이야.'와 같은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대학 진학이 나의 인생을 좌우했다.
졸업 후 학과 분위기에 따라 가장 처우/복지가 좋다는 '공립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내가 졸업한 학교는 연속으로 매해 합격자를 수십 명씩 배출하고 있었고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나는 "당연히" 나도 그 시험에 통과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 공부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고자 조기졸업 준비를 위해 논문도 썼다.
임고 공부를 하며 얻은 것은 앉아있는 힘, 다양한 교수방법과 지도법, 상호작용 방법, 인간관계 등등 여러 가지였지만 많은 시간을 쏟아낸 나의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친구들은 졸업 후 바로 취업하여 벌써 3년 차 교사가 되어가는 중이었고, 그 밑에서 신입교사를 경험할 용기가 없던 나는 유치원 대신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그래도 아무 곳이나 갈 수 없어 고르고 골라 간 곳이 '직장 어린이집'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 첫 아이들을 만났다.
19명의 푸른숲을 만나며 다짐했다.
내게 맡겨진 아이들을 언제라도 나만은 너희의 편인 것을, 어딜 가든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고 그 해 신학기 준비기간 내내, 교사생활 속에서 매번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다음 해 2월 여러 사건사고 속에서도 푸른숲을 모두 무사히 졸업시기키는 것으로 열매를 거두었다.
몇 년 후, A가 2학년이 되었다고 스승의 날에 엄마와 함께 찾아왔다.
"선생님, 선생님이 나랑 친구들 지금도 응원하고 있는 거 알아요.
그래서 이번에 줄넘기 조금 못했는데도 포기 안 했어요.
선생님이 저 응원하는 거 아니까"
내 믿음과 노력으로 잘 자라준 네가 정말 고마웠다.
교사 생활 중 3번이나 졸업을 시켰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첫 아이들,
많이 부족한 선생님이었을 텐데 준비해준 환경과 놀이를 잘 즐겨주어서, 선생님과 함께 울고 웃어주어서 정말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