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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Mar 23. 2024

냉이

감성 에세이 21

[에세이] 냉이

한결

퇴근 후 과일을 좀 사려고 동네 시장에 있는 과일가게를 가던 중 냉이가 눈에 뜨인다. 시장 한 귀퉁이 노점에 낮익은 할머니 한 분이 냉이 외에도 달래며 쑥이며 갖가지 푸성귀들을 진열해놓고 앉아 계신다. 구수하고 향긋한 냉이 된장국이 생각나 냉이 한 바구니를 산다. 정갈하게 다듬어 깨끗이 씻어놓은 것도 있지만 난 흙이 덕지덕지 붙은 것을 택했다. 흙내음을 맡으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줄기와 뿌리의 하얀 속살을 보고 싶어서다. 한 뿌리를 들어서 코에 가까이 가져가니 알싸한 봄의 향기가 코끝을 덮는다. 이왕 사는 김에 달래도 조금 사고 얼마되지 않는 가격으로 봄 내음을 송두리째 산다.


냉이 하면 고향의 들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언 땅 밭 이랑에 아지랑이가 포근 포근 올라올 무렵, 옆집 금자와 금순이 누나는 냉이를 캐러 다녔었다. 고향의 땅은 비옥했고 해마다 3월 무렵이면 들판이며 밭에 봄을 알리는 냉이가 천지였는데 어느 날 누나 들이 냉이를 함께 캐러가자고 한다. 왜 나를 데려가는지는 잘 모르지만 누나들에게 남동생이 없기는 했다.누나 들은 내게 냉이 한 뿌리를 보여주며 이런 걸 캐서 바구니에 담으라고 했다. 난 푸른 색 잎사귀를 보고 냉이같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캐어 바구니에 담았다. 한 바구니 그득 담아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갖다드리니 그것은 냉이가 아니라 잡풀이었다. 어린 나이에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구별할 수 있었을까. 그저 봄 햇살을 받으며 냉이를 캔다는 시간이 즐겁고 누나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시간이 좋았을 것이다.


냉이는 언땅이 녹을 무렵 겨울을 참아낸 봄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냉이가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아직 가시지않은 맨 땅을 뚫고 초록 세상의 문을 열면 세상 가득히 생의 기운이 용솟음친다. 그 기운을 고스란히 담아 냉이 된장찌개를 끓인다. 구수한 된장의 향기에 싱그러움 뛰어들어 보글보글 소리를 내고 파와 마늘을 넣고 마지막으로 다다닥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함을 더한다. 입 안에 가득한 생명의 향기로 눈과코, 입이 모두 즐거우니 임금님 수랏상 부럽지 않은 최고의 영양식이다. 냉이와 된장, 양념과 어우러진 봄이 내 입 안에에 가득하고 아직은 쌀쌀한 기온에 벗지 못한 겨울외투를 벗기게 만드는 봄햇살처럼 온 몸에 따스함이 퍼진다.


냉이는 천연 건강식이다.  그 효능이 인체 곳곳에 활력을 주는데 그중 비타민 성분은 눈의 건강에 좋고, 특히 베타카로닌이 함유되어있어 피록회복에 탁월하다. 또한 항산화 성분인 셀레늄이 들어있어 항암효과까지 있다. 화학비료의 남용 등으로 이제 냉이는 시골이 아니면 볼수없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대신 재배 쪽으로 많이 변화되었는데 땅에서 스스로 자란 것을을 어찌 사람의 손이 탄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한 겨울 강추위를 이겨내고 얼음땅을 뚫고 솟아 당당하게 세상의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생명력은 수천년을 살아온 단단한 바위도 뚫었으리라.


냉이 된장국과 뗄 수없는 조합인 냉이 무침이 생각나 고추장과 감식초,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비벼준다. 정제되지 않은 쌉살한 맛이 입 안을 채운다. 무침 한 젓가락에 고향의 들판을 입에 머금고 냉이 된장국 한 모금에 봄 햇살을 온 몸으로 받는다. 날이 따뜻해 완연한 봄인줄 착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회사 뒷담길엔 벌써 개나리가 고개를 봉긋 내밀었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봄은 순순대로 곳곳을 지나다니며 서서히 세상을 물들일 것이다. 아직 겨울의 테를 벗어나지  못한 나무들도 비가 한 차례 오고나면 봄물을 가득 머금은 초록을 피워내지 않을까. 아무래도 이번 주말엔 어렸을 때 냉이를 캐러 다녔던 고향 들판의 길섶을 찾아가야겠다. 수십년 전의 그 땅에 지금 또 냉이가 자라고 있을까. 꼭 먹으려고 캐오진 않더라도  냉이 대신에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그날의 추억과 엪집 누나들의 깔깔거리는 웃음, 그리고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를 소쿠리에 한 가득 담아오고 싶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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