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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pr 14. 2024

팝콘같은 세상

감성 에세이 24

[에세이] 팝콘같은 세상

민병식

 

매일 바쁘게 살다가 주말이 되거나 모처럼 쉬게 되는 날에는 그동안 부족했던 잠을 자거나 집 안 청소를 하게 되는데, 밀린 일을 하다보면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보다 더 바쁜 휴일도 있다. 또 어떤 날은 아무 것도 하기 싫어서 하릴없이 그냥 누워서 생각에 잠기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문득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있는데 " 지금 행복한가? "이다.


코로나 19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든 위기를 보냈고 유래없는 불황으로 보다 사람 들의 삶이 많이 힘든 지금의 우리나라는 예전의 웰빙, 힐링, 케렌시아 이런 단어 들은 점점 사치 스러운 단어가 되어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여유나 정신적 만족, 쉼보다 생존의 문제로 화두가 옮겨가고 있는 듯다. 4차 산업의 발달로 점점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니 일자리는 줄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 들이 평범한 사람으로 살기가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아직까지 직장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감사와 행복의 조건들을 찾기가 수월치 않아 보인다.

 

사회복지단체를 통해 정기적 후원하고 있는 분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바닷가 쪽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생각과는 달리 불생중 다행으로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고 거동도 괜찮아 보여 안부만 전하고 나왔다. 햇빛이 따사로운 오후, 잠시 짬을 내어 갈매기의 유영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 해양 공원에서는 막걸리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노숙인 몇이 모여 막걸리에 과자 한봉지, 조촐한 술상을 차려놓고 볕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주변에서는 개 세 마리가 과자  계속 돌아다닌다. 흰색 두 마리, 얼룩무늬 한 마리, 노숙자들은 과자 한 봉지로 막걸리를 몇 병째 먹고 있는 듯한데 개들은 계속 그 주변을 돌며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 보지만 부스러기조차 생기지 않는다. 한 녀석은 아예 죽치고 앉아서 물끄러미 한 남자를 바라만보고 있다. 순간 남자가 개입에 막걸리를 부어주고 개는 또 그것을 마신다. 동물에게 술을 주면 안 좋은 일이 생길수도 있는데 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모르게 바로 길 건너 편의점에 가서 강아지 전용 간식을 사서 개 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 개씩 던져주니 그 자리에서 게 눈 감추듯 먹는다.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얼룩무늬 녀석은 자기 것을 날름 먹어버리고는 다른 개에게 다가가 입에 문 것을 뺏으려고 한다. 하나는 계속 뺏으려고 달려들고 하나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도망가고 개들은 며칠을 굶은 듯하다. 생존경쟁의 사바나는 여기에도 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건넨다.

 

"뭘 주었는데 개들이 저래요?"

"네. 과자 한 조각 얻어먹으려고 계속 맴도는 개들이 안되보여서 개 전용 간식 좀 주었습니다. 편의점에 가면 팔아요."

 

그 남자는 개전용 간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면서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 돈을 들여 개들에게 간식을 사주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다시 편의점에 들러서 컵 라면을 몇 개 사서 물을 붓고 또 개 전용 간식을 사서 다시 공원 정자로 갔다"

 

과자도 다 드셨던데 술만 드시지 말고 요기 좀 하셔요, 그리고 사람도 먹어야하지만 개들도  먹어야지요"

 

라고 하고 간식을 다시 한 번 던져 주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잠시 후 뒤에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뒤돌아서서

 

"나중에 오면 아는 체 하셔요. 그때 또 라면 사 드릴 게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극단의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십원 한 장에 벌벌 떠는 인색한 사람도 있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은  실천이다.


어려워진 경제사정으로 인해 많은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수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어려운 사람 들은 계속 어려워지는 시기, 모두가 어렵고 힘든 이 때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을 위해 배려하고 생각하는 따뜻함이 필요한 때이다. 돈, 물질, 명예 등 행복의 조건은 내가 원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것 중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눌 수 있다면 나눔의 행복은 계속 내 주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멀리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행복의 조건을 찾으며 난 왜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불평하기보다는 곁에 놔두고 미처 보지 못하는 행복을 찾아 나보다 어려운 이들과 나누어 봄이 어떨까.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연인 한 쌍이 방금 튀겼는지 고소한 팝콘 냄새를 풍기며 내 앞을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는 세상이 커다란 팝콘 기계였으며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을 넣으면 몇 배로 커져서 나오고 희망을 넣으면 몇 배로 뻥튀기 되어 나오는 미움과 시기 질투와 원망은 모두 게워내고, 고마움과 미소, 양보와 화합을 버무려 넣으면 온누리를 향하여 웃음과 행복이 팡팡 터지는 고소한 내음 가득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비가 내리더니 바다 냄새 섞인 바람이 얼굴에 살랑 거리고 햇빛이 쨍쨍하니 모처럼 날씨가 맑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매일 오늘 날씨만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차에 오른다.

그림 전체 문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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