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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지 Mar 21. 2024

완벽해지고 싶어요.

나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할 때






 들어가며

“인생이 너무 힘드네요.”

몇 년 전, 어른 앞에서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애들이 힘이 들게 뭐가 있냐’며 되려 혼이 났던 경험이 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때를 떠올려 보면, ‘과연 힘듦의 정도를 따질 수 있을까?’, ‘과연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더 힘들까?’라는 물음이 생긴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도 사실 어린아이인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때의 힘든 경험이 있었기에 현재 비교적 어른으로서의 힘든 경험이 ‘더욱’ 힘들다고 표현하는 게 아닐까.



청소년 기관에서 일하면서, 요즘 알파 세대라고 불리는 중학생, 고등학생,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며

‘이 아이들이 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가 나이에 비해 매우 무겁구나.’ 싶을 때가 많다.

‘학교-학원-집’이라는 지겹게 반복되는 인생의 사이클을

군말 없이 따르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대단하기도 하다.

오늘은 반복되는 일상을 12년이나 보내고 있는, 혹은 보내는 중인

중학생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끄적여 보려고 한다.





진심이 담긴 워크숍

기관의 청소년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특히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중학생 청소년들이 스트레스가 많았다.

(청소년 기관에 고3은 입시 준비로 인해 거의 없다.)

이들을 위해 내가 일하는 청소년 기관에서 1회기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열었다.



“내가 나를 모를 때, 진정한 나를 찾는 진로 워크숍”

워크숍 명은 이렇다. 프로그램은 진로 고민이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모집하였고,

‘동사, 명사 찾기, 정체성 정의하기, 미래의 나 상상하기 등의 활동’을 통해

자아 탐색과 진로 탐색을 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워크숍을 열기 전에 알게 된 정보들이 있었는데,

바로 다수의 청소년이 대학, 혹은 직업을 진로로 명명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 외에도 진로를 찾기 위해서는 자아 탐색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다수가 진로를 먼저 찾으려고 하는 현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는, 갖지 못하는 청소년이 다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워크숍을  ‘진정한 나를 찾는’이라는 키워드로 잡았다.



나 또한 청소년기에 나의 꿈을 ‘대학 진학’, 혹은 ‘기자’와 같은 일회성이고 단편적인 것만 목표로 삼았었다.

그러나 이 상태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사실상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에

목표가 사라진다는 다소 위험한 문제가 있다.

이때의 나는 목표가 사라졌기에 방황하고, 나를 자책하였으며,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싫었다.

그렇게 번아웃이 왔는데, 극복하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인데,

청소년기에 ‘나’를 이해하는 단계가 없었어서

어린아이가 사회에 내던져지면서 나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번아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은,

삶의 목표는 ‘지속 가능한 것’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며,

이 목표 설정을 청소년기 때부터 해야 한다는 점이다.

청소년기에는 ‘어떤 대학에 가지?’, ‘어느 학과로 가지?’, ‘어느 기업으로 취직하지?’와 같은 기준이 외부에 있는 고민이 아니라,

‘나는 누구지?’, ‘난 무엇을 좋아하지?’, ‘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지?’, ‘내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이지?’와 같은

내부적인 고민을 해야 함을 알았다.



따라서, 이번 워크숍을 통해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중학생 청소년들에게

지속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도록, 더불어 진로를 결정하기에 앞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나의 목표는 한 명이라도 워크숍에서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목표를 이룬 것 같다.





사람을 갉아먹는 완벽주의

사실 워크숍 방식은 지금까지 청년 대상 진로 상담과 똑같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이번에는 청소년 4명을 동시에 상담하는 것이었다.

참여자의 나이대를 보면 중학교 1학년 3명, 중학교 3학년 1명이었는데,

오히려 중3 청소년이 ‘미래의 나 상상하기’, ‘인생의 목표 정하기’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고,

워크숍을 하는 내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중1 친구들이 활동을 마치고 나간 뒤에야

그 어려움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중3 청소년에게,



“요즘 많이 힘들어요?” 물으니,

그 아이의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떤 점이 (익명)를 힘들게 했을까?”

“모르겠어요. 그냥 요즘 너무 우울하고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안 돼요.”



이 친구에게는 솔루션보다 공감과 위로가 먼저인 것 같아

활동을 중단하고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는 내내 누가 자신이 운다는 사실을 알까 봐 소리 하나 안 내며

옷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어떤 사정이 있길래 우는 모습도 철저하게 가리는 걸까 싶어 안쓰러웠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본격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능력이 출중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똑 부러지는 아이인데,

어떤 고민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자존감’에 있었다.



사실 판단을 제외하고, 이 친구의 말로는 집단 따돌림을 겪고 있었다.

이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객관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고등학교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친구는 특수목적 고등학교, 외국어 고등학교, 일반 고등학교 중에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지만,

나의 눈에는 고등학교 원서 접수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현재의 상황 파악, 자존감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이 친구가 어떤 상황에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졌다.



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니, 이 친구는 인정욕구, 명예 욕구, 완벽주의가 매우 크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예체능, 영어 회화 등등 다방면에서 잘한다는 칭찬을 지겹도록 듣고 살아서

결과가 나왔을 때 칭찬을 못 들으면 자신을 채찍질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친구였다.

왜냐? 나는 뭐든 잘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중3이 되며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친구들이 자신의 수행평가 결과물, 성적에 대해 평가를 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문제는 자신이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제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친구들에게 막말을 하여

이때부터 친구들과의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물론 도덕적으로 잘잘못을 따지자면 이 친구도 잘못한 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 판단이 아니라

이 친구가 다시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자존감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나는 이 문제의 원인으로 이 친구의 평가 기준이 자신이 아닌,

남에게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일어난 것으로 짐작했다.

따라서, 나는 약속을 제안했다.



1.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실수를 인정하고,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해주기.
2. 시험이 망해도 내 인생이 망한 게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기.
3. 내가 무엇인가를 잘했을 때 남에게 알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만족했는지 물어보기.
4. 나의 결과를 남에게 알리더라도 그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기.
5. 남들이 비난하더라도 똑같이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래? 피드백 고마워’와 같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



약속이 조금 많아서 기억하고 싶다고,

종이에 손수 적어가는 순수한 친구였다.

인생의 목표도 ‘성장’으로 잡았다.

사실 자신과의 약속문을 만들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의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몇 개월이 걸려도 상관없으니까 나는 여기(청소년기관)에 계속 있을 테니, 실천한 게 하나라도 있으면 약속 지켰다고 말해줘!”

“이런 약속하는 게 좀 유치하긴 한데 한번 해볼게요!”


사실 고등학교 원서 접수는 그 당시 3~4개월 남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약속만 만들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워크숍 후, 나는 1개월 동안 정말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평일에 갑자기 밝은 얼굴로 와서


“하지! 저 지켰어요!”


정말 듣던 중에 너무 반가운 말이었다.


“진짜?! 너무 좋다! 직접 실천해 보니까 어때?”

“이제 밤마다 안 울어요! 고등학교도 정했어요! 다 하지 덕분이에요. 감사해요.”


이래서 청소년 기관에서 일하나 싶다.

워크숍 열기 진짜 잘했다 싶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지금은 워크숍 기점으로 7~8개월 정도 지났는데,

이 친구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서 열심히, 재밌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추측이다.)

이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청년이든 청소년이든

모두 자신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기회가 꼭 있어야 함을 알게 됐다.






청년, 청소년에 걸쳐 자아/진로 탐색 워크숍을 여러 번 하면서

아직 답을 못하는 질문들은 많이 있다.


왜 사람들은 청년, 청소년기에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할까?
교육과정에 정말 자아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까?
있었다면 왜 효과를 보지 못하는가?
없다면 왜 도입되지 않는가?


대학 입학 원서 접수 시, 생활기록부 기재의 범위가 축소된 현재의 시점에서

대회 수상, 독서, 봉사, 축제 등의 비교과 활동이 교육과정 내에서 사라졌는데,

활동 기회의 축소가 과연 청년, 청소년의 성장에,

더 나아가 청소년의 자아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될까?

이미 활동 경험 교육 관련 논문들은 많지만,

공정성이라는 큰 가면에

아이들의 활동 경험 기회들이 가려져 있다.

과연 이게 최선일까?



- 많은 사람이 교육 과정에 관심을 갖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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