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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Apr 03. 2024

삶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다

<본투비블루>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간절히 사이다 결말을 바라는 때가 있다. 주인공의 욕망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가 원하는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사이다 결말이 주는 통쾌함은 삶에 대한 간접적인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주인공에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여운이 남지 않는 것이다.


본투비블루는 쳇 베이커의 생애 일부를 조명한다. 젊은 나이에 재즈 씬에서 스타덤에 올랐지만, 챗 베이커는 마약 중독으로 몰락한다. 빚더미에 앉은 그는 어느 날 빚쟁이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트럼펫 연주자로서 가장 중요한 앞니를 잃는다. 그렇게 빛나는 과거를 뒤로하고 헤매게 된다.


제인은 그러한 쳇의 삶의 구원자이다. 마약 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그의 옆에서 헌신적으로 돕는다. 그녀의 도움으로 챗은 다행히 마약과 거리를 두게 된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연주 실력도 회복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끝내 재즈의 성지 '버드랜드'에서 공연할 기회도 주어진다.


한 번의 공연만 잘 해내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챗은 극도의 긴장 상태다. 마약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했던 약, 메타돈이 다 떨어진 탓이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챗의 대기실엔 헤로인이 놓여있다. 챗은 결국 자신을 내쳐버린 재즈씬에 크게 한방 먹이기 위해 마약을 주사하고 무대에 오른다.


챗은 환상적인 연주로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 그러나 제인은 챗의 연주를 듣고 그가 마약을 했음을 단번에 알아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영영 챗을 떠나고 만다.


우리는 챗의 나머지 생을 상상하게 된다. 본투비블루가 사이다 결말을 내어주지 않은 탓이다. 챗은 스타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연인 제인도 없고, 그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린 마약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남겨진 의문들은 영화가 끝나도 이야기를 살아가게 한다. 그 물음을 셈하다 보면 챗의 삶을 더 깊이 감각할 수 있다.


인간의 '해방'은 '억압'으로써 정의된다. 꽉 막혀버린 욕망, 그리고 결핍과 불만족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인간은 해방을 꿈꿀 수 있다. 그로써 선택은 의미를 갖게 된다. 제인과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서라도 헤로인을 주사하고 무대에 오를 만큼 챗은 간절했다. 인간의 삶이 본래 그러하지 않은가. 선택은 필연적으로 포기를 의미하고, 선택하지 않은 것들 덕택에, 우리의 선택은 더욱 무거워진다.


'사이다 결말'은 극도의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은유다. 모든 불편과 고통을 거세하는 세상 속에서 선택은 의미를 잃는다. 양자택일이 아닌, 이것도 저것도 반드시 가져야만 할 무언가가 된다.


그러한 세상에서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믿는다. 완전한 긍정의 결말이었다면,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이었다면, 우리는 <본 투비 블루>에서 어떠한 '블루'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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