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 Nov 19. 2023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feat. 백아연)

사우디 집 알아보고 있는 중

우여곡절 끝에 화해(?)를 하고 며칠 뒤, 남편이 머뭇거리며 말을 했다.


"내가 2년 정도 사우디에 가서 일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주재원 같은 거야."

"... 갑자기? 흠,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가고 싶으면 가야지. 난 친정으로 가야겠네."

"그래?"

"... 진짜 가는 거야? 근데 우리 아기 안 보고 싶겠어?"

"아니, 그냥 일단 생각해 보는 거야."

"그럼 우리 다 같이 갈까? 나 휴직할 수 있잖아????"

"(어이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중)"


그리고 이 날, 난 [아라브로]라는 카페에 가입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사우디'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 맴돌았고 아이를 재우다 잠들지 못한 나는 남편을 찾아가 말했다.

"나, 사우디만 생각나."

"(어이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중) 그냥 자라."


겨우 잠을 자고 다음 날, 카톡을 보냈다.

나 : 더 늦으면 부모님 걱정되고 아이 초등학교 입학이랑 겹쳐서 골치 아파져

남편 : 2년 후에 복귀를 못하면? 돌아왔을 때 집은? 새로운 업무를 해야 하는데 적응은? 당장은 좋아 보여도 이후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는 건데

나 : 복귀를 못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 계속 거기 머무를 수 있다고? 아님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남편 : 2년 후에 사람이 없어서 몇 년 더 해야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럼 너는 복직해야 하니까.

나 : 아, 동반휴직은 3년까지 신청 가능해. 연장도 가능하다고 해.

남편 : ㅡ.ㅡ


이 대화를 끝으로 잠시 '사우디'는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야근과 출장이 겹친 남편의 일정에 직장 일과 아이 돌보기에 바빠진 나였지만 죽지 않고 살아난 '사우디'는 <사우디 주재원/ 사우디 아이랑/ 사우디 컴파운드> 등등 아주 다양한 검색어로 우리 가족의 다른 삶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만들었다.   


주말이 되어 아이의 침대 위치와 가구를 이리저리 혼자 바꾸는 남편을 보며 물었다.

"혼자 할 수 있어? 나 잠깐 나갔다 와야 하는데 괜찮아?"

"갔다 와. 금방 해."

"... 근데 사우디는 왜 안 가려고 해? "

"(어이없는 눈빛 다시 발사) 안 간다고 아직 말 안 했어. 여러 가지로 고민 중이라니까. 가면 나는 여기보다 더 힘들게 일해야 하는데."

"그건 알고 있지. 보통 주재원 나가면 2배는 더 일한데, 엄청 늦게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하... 그냥 얼른 가."


아직 안 간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는 남편의 말에 힘입어 난 다시 사우디 관련 한인카페에 가입하여 우리가 머물 수 있을 만한 집의 위치와 가격, 아이를 보낼 수 있을만한 기관의 여부 등을 찾아보고 있다.


막상 글로 쓰고 보니 엄청 철부지 아내 같다. 맞다, 나는 철부지 아내다.

이래서 남편과 갈등이 끊이지 않지만, 남편은 나의 이런 면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본인 입으로도 그렇게 말했다.... 흠, 정확하진 않다.)


상황을 고려했을 때 우리 가족이 사우디를 가게 될 확률은 거의 없지만, 이걸로 나는 사우디에서 한번 살아봤다. 컴파운드라는 리조트 형식의 감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며칠 지내보니 꽤 만족스럽다.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사우디'에서의 삶을 그려보게 되다니, 삶은 참 재미있다.



(근데, 그럴 거면 왜 말했어...? 왜 설레게 했어....)


매거진의 이전글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