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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Apr 10. 2024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무거운 동시

괜히 시인이 아니었어

시를 좋아한다.

시집을 꼼꼼히 읽으며 안에 담긴 내용을 보고 시인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기보다,

그냥 어느 순간 읽은 시에 갑자기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을 좋아한다. 

고개가 끄덕여진 시를 꼽아보자면, 

보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사람으로 가득하던 시기에는 <내 마음의 고삐(정채봉)>가 있었고

마냥 사랑스러운 눈길로 볼 수 없었던 유아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던 시기에는 <풀꽃(나태주)>이 있었다.


시작은 늘 그렇듯이 호기심이었다.

시가 궁금했다. 어른이 되어서 느낀 시는 이렇게 멋진데, 이렇게 내 삶과 가까운데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시는 왜 누구의 마음에도 닿지 않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동시'를 찾아봤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수업으로 하는 <친구야 미안해> 같은 동시가 아니라, 진짜 시인이 지은 동시를 읽어봤다.  

세상에, 너무 재밌었다.

감동과 유머가 있는데 철학도 있었다. 심지어 술술 읽혔다. 

또다시 거금을 들여 이번엔 동시수업을 수강했다. 


동시에 대하여 알아보고 동시를 한 두 작품 정도 지어보는 강의였는데, 세상에 동시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첫 번째 강의에서 함께 읽어본 동시집은 <웨하스를 먹는 시간(조정인)>이었다. 

그냥 술술 읽혔으나 딱히 와닿는 점은 없었다. 그런데, 다른 수강생분들의 리뷰를 보니 이게 웬일. 

뭐라고..? 여기 이런 뜻이 있었다고...? 

뭐라고...? 이 시인의 동시 세계는 이런 특성을 갖고 있다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에 멍하니 3시간을 보내고 나니 아차 싶었다. 


시인은 괜히 시인이 아니구나.

보통 글 쓰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 '작가'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혹은 '저자'이거나. 

그런데 이상하게 시인은, 시인이라 부르게 된다. 

시인이 시를 쓸 때 단어를 고르고 골라 짧은 글 안에 담으려고 하니 그 안에 본인의 세계가 확고하게 구축이 되어서일까. 

뒤늦게 깨달아 뭐 한담, 어차피 뛰어든 동시의 세계. 일단 허우적거려 보자. 


그리하여 8주간의 허우적 거림이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시집은 그저 미소만 띤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고, 살풋 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집은 리뷰도 써봤다. 

요즘은 복습을 하고 있다. 

복습을 한다고 해서 뭘 끄적거리며 열심히 시인의 세계를 탐구한다는 건 아니다.

그냥 다시 읽어보는 중이다. 

그러면 다시 내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어 안달이 날 시가 찾아올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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