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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y scenes Sep 07. 2022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 드라이브 마이 카 Drive My Car >_2021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았다. 179분의 긴 러닝타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잔잔하게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는 비극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가후쿠와 그의 아내 오토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토는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가후쿠를 누구보다 지지하고 사랑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

행복했던 순간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오토의 외도현장을 목격한 가후쿠는 오토와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서 애써 모르는 척 묻어가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오토가 죽어버림으로써 둘은 영원히 관계를 유지하기도, 회복할 수도 없게 되었다.


 오토의 죽음으로 영화가 막을 올리고 2년 뒤 가후쿠가 연극 준비를 하러 히로시마에 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곳에서 배우 오디션을 보면서 오토와 외도했던 다카츠키를 보게 된다.

 다카츠키는 감정에 잘 휩쓸린다. 오디션에서 연기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모습과 시비 붙는 모습, 술집에서 가후쿠와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다. 자신에게 솔직한 나머지 사회적으로는 부적절한 행동을 하였지만 그만큼 자기표현이 강하고 가후쿠와는 다르게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다가츠키와 가후쿠는 오토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오토를 사랑했고 오토와의 사랑을 통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토의 이야기 속의 여고생은 자신일 것이고 그녀가 좋아했던 야마가는 가후쿠 였을 것이다. 강도는 자신이 그동안 외도했던 남자들을 나타냈으리라 생각한다. 강도를 죽이고 나왔지만 야마가는 아무 일 도 없던 사람처럼 지낸다. 마치 카후쿠처럼 다 알고 있음에도 묻지 않는다. 오토는 어쩌면 가후쿠에게 들킨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후쿠가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이야기하길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후쿠에게 털어놓으려던 날, 그녀는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그동안 자신이 벌여온 일에 대해 벌을 받은 것처럼 그녀는 아무런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오토의 죽음은 가후쿠에게도, 다가츠키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카츠키 이외에도 다양한 연극배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배우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대본을 통해서 서로의 감정을 느끼면서 호흡을 맞춰나간다. 상대방의 대사를 듣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감정 그 자체가 느껴졌다. 마지막에 유나(소냐)가 가후쿠(바냐)를 끌어안고 수화로 대사를 이야기하며 위로해 주는 장면을 보았을 땐 모든 사람들이 위로받았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수화를 배워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그 몸짓과 표정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해. 어떤 형태로든 그게 계속되지.
나와 너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가야 해.

 

 회사에서 소개해준 운전사 미사키도 상처를 가지고 있다. 미사키와 가후쿠는 묻어놨던 서로의 상처를 털어놓으면서 치유해 간다. 엄마에게 학대받았지만 사고로 엄마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미사키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을 것이다. 감정을 온전히 직면했을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가후쿠는 아내가 외도를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속이며 무시했다. 스스로 솔직하지 못한데 어떻게 남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아내의 외도를 목격했던 그 순간부터 가후쿠는 엄청난 배신감과 상처를 받았지만 이를 회피했다. 자신이 상처를 받은 사실을 회피하면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를 알지 못했다.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 그에게는 덮어두는 것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같지만 다른 상처를 지닌 미사키와 대화하면서 이를 깨닫고 인정해나간다.

그러면서 비로소 무대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다. 온전히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크던 작던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듯이 우리가 가진 상처도 서서히 아물 것이다. 나의 상처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면서 극복해 나가야 한다. 덮어두기만 하면 오히려 좋지 않은 시간만 쌓여갈 뿐이다. 얼굴 옆에 난 흉터를 없애지 않을 것이라는 미사키의 말처럼 상처를 덮어두려 하지 말자.

 <드라이브 마이 >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소냐가 바냐 아저씨에게 해준 위로가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살아갈 원동력을 주는  같았다. 소중한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다신  사람을   없게  가후쿠도, 모든 것을 허망하게 잃어버린 미사키도 계속해서 살아간다. 살아가야만 한다. 편히   있는 그날을 위해서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야 한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도록 해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열렬히 가슴 뜨겁게 믿어요.
그때가 오면 우린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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