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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뚠뚠 Nov 27. 2022

나쁜 스타트업 생명주기

2년 간의 고생 끝에 얻은 팁 

목적

이번에 스타트업 생활을 청산하고 나름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제가 스타트업만 3군데를 다녔는데 이게 소위 말하는 나쁜 스타트업(이하 좋타트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이 회사들은 일정한 생명주기가 있더라고요. 혹시라도 여러분이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개발자 분들이라면 여러분의 회사가 이 생명주기를 따르고 있는지, 불행히도 그러하다면 어느 단계까지 와 계시는지 깨닫고 추노 할 계획을 짜시기 바랍니다. ps. 이 글에서 말하는 좋타트업은 불량 스타트업을 말하는 거지 성공적으로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투자를 받는 건실한 스타트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응애! 나 애기 좋타트업

보통은 대표님들의 뇌내 망상으로 좋타트업들은 탄생합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이고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인데 이걸 한번 구현해 보자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좋고 나쁘냐로 스타트업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아이디어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그것보다 대표의 능력 / 상황이 저엉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나름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리는 대표님들은 아래의 요건 중 최소 한 가지는 갖춘 분들이었습니다.


1. 돈이 많다 (최소 3년간은 수입 없이 회사 유지 가능)

 

2. 해당 도메인에 엄청 빠싹 하다 (사업하려는 분야에 도사 수준)


3. 본인이 뛰어난 개발자다 (혼자서 프로토타입 만들고 배포 / 운영 가능)


물론 위의 요인을 가지고도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게 스타트업이다만 위 내용 중 하나라도 포함이 안된다면 맨 몸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할 거 없으셔서 창업하신 분들의 경우를 많이 봤는데... 




막장 팀 설립

이제 사업장을 차린 대표님은 자신의 끝내주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팀을 모집합니다. 자신은 스티브 잡스이니 워즈니악만 찾으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요. 위에서 이야기 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대표 군의 분들의 경우, 초창기 멤버들을 모으기 수월합니다. 높은 임금을 가지고 사람을 부리든 재직 시절 인맥을 통해 사람을 구하든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여기가 어디입니까 좋타트업입니다. 좋타트업의 경우 높은 확률로 아래와 같은 팀이 설립됩니다.


대표의 인맥 이사진 + 사회생활 초년생 개발진


이렇게 중간관리자는 없는 완벽한 모래시계 구조의 막장팀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대표의 지인들로 말하자면 능력 검증도 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수도 생각보다 많을 거예요. 조용하신 분들은 그나마 식충이 선에서 끝나는데 별나신 분들은 정말 이상한 딴지나 트롤링을 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스타트업은 초기 멤버의 능력이 정말 중요한데 이딴 팀을 짰으니 아이템이 똑바로 만들어질 리 만무하죠. 여하튼 팀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대표님이 꿈꾸시는 장밋빛 아이템을 만들 시간입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대부분의 대표님들은 이때쯤 성공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책을 일기 시작합니다. 린스타트업이니, 애자일 개발이니 이미 자신의 팀빌딩부터 잘못된 것을 모른 채 여러분에게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죠. 체계도 기반도 인력도 없는 곳에서 대표의 마음에 따라 아이템이 만들어집니다. BM도 불명확하고 명확한 게 없습니다. 개발 역시 구체적인 설계나 문서, 일정 등이 있을 리가 없죠.


이때쯤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추노를 하십니다. 하지만 대부분 초년생 분들은 개판이지만 아이템이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또 대표의 호언장담에 속아 계속 남아 있습니다. 사실 주니어 개발자들도 우수한 사수나 관리자가 붙어있으면 가격 대비 엄청난 능률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개발 문화가 정착하고 선순환 구조로 개발팀의 질도 높아지면서 제품도 좋아지는 구조가 나오지요. ㅎ


하지만 좋타트업의 경우 능력 부족의 CTO, 중간관리자의 부재로 인해 구글과 스택오버플로가 사수가 됩니다. 인터넷에서 단편적인 정보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구조를 구축하고 설계할 수는 없죠. 결국 이런 주니어들을 갈아서 만든 아이템들은 정말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기에 돌아는 가나 불법 증축된 것 같은 모습으로 "으어어... 죽.. 여.. 줘.." 하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실 서비스했다간? 큰일 나죠ㅎㅎ


여하튼 개발이 끝이 났습니다. 고생이 많았지만 개발한 결과물을 보니 주니어 개발자들은 뿌듯함을 느낍니다. 대표님은 당장에라도 시리즈 투자를 받고 고공 성장해서 IPO까지 하는 꿈을 꾸십니다. 적어도 이날의 사무실 분위기는 훈훈할 겁니다.




각설이 생활

투자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투자사는 바보가 아닙니다. 돈이 되지 않을 사업에는 투자를 할 리가 없죠. 이쯤 되면 대표님의 얼마 안 되는 창업자금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대표님은 자신의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형태를 가지고 나왔는데 왜 세상이 알아봐 주지 않는지 괘심 합니다. BM도 불명확하고 작동도 매끄럽지 않은 아이템에 투자를 할 사람은 없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이는 법이죠.


대표님은 여기서 두 가지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냥 사업을 접는 겁니다. 두 번째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대표들은 두 번째안을 선택합니다. 물론 형편없는 아이템을 가진 초기 스타트업에 대출을 해줄 정도로 은행은 따듯하지 않습니다. 결국 대표님이 선택하는 안은 정부지원금과 개발 외주 일입니다.


외주 일은 생각보다 정말 머리가 아픈 일입니다. 고객사는 돈을 냈으니 최대한 뽑아먹으려 하고 이쪽은 자신의 몸값에 맞게 일을 해야 하죠. 괜히 외주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부분은 영업을 하시는 분이 잘하셔야 하는데 일을 받을 건 받고 자를 건 잘라야 합니다. 일감 따오느라고 전부 받아버리면 3억짜리 일을 1억에 따와서 구성원을 갈아 넣는 방법으로 회사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대표님들은 호구지책으로 막장 프로젝트들을 받아오시고 그때부터 구성원들의 끝없는 야근이 시작됩니다. 


저는 이 단계가 거의 좋타트업 수명주기의 마지막으로 보고 있는데 아이템을 수정하고 더 다듬는 시간이 없이 막장 프로젝트에 리소스를 낭비하는 것이 스타트업에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단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먹을 게 없어서 자신의 정체성인 아이템을 던지고 SI나 하고 있으면 이건 더 이상 스타트업이 아닙니다.


대표님은 직원들을 독려하시며 자기도 힘들다.(이쯤 되면 정말 대표도 힘든 단계입니다) 이번만 넘기자 다 같이 고생하면 좋은 날이 올 거다 라는 소리를 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로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추노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눈치 없게 남아계신 분들은 좋타트업의 마지막 생명주기를 목격하게 됩니다. 온몸으로요.




배 째!

대표님의 얼굴색이 점점 썩어 갈 때쯤 월급 당일 여러분의 임금이 체불됩니다. 대표님은 온갖 말을 붙여가며 조금만 참아달라, 내 마음도 아프다와 같은 말을 하지만 사실 월급만 보고 살아가는 여러분은 몸이 타들어갑니다. 이걸 미리 언급을 하는 것도 아닌 월급날에 말하는 건 좋타트업 대표님들의 특징인가 봅니다.  이제 여러분은 폭발합니다.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오래 지속된 야근과 막장 회사의 진실된 모습이 인지가 되고 바로 추노각을 잡습니다.


보통 이렇게 퇴사를 하는 경우 "의리가 없다, 책임감이 없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여러분이 좋타트업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패키지를 다 경험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위한 투쟁 그리고 피로로 찌든 몸을 가지고 다음 일자리를 알아봐야겠지요.




교훈

이 이야기의 교훈은 간단합니다. 일단 입사를 할 때 회사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고(그래서 저는 면접을 많이 다녀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만약 저러한 회사에 들어갔다면 최대한 빨리 나오라는 것입니다. 정말 당장에 생활이 어렵다면 차라리 알바를 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요즘에 신입 개발자분들의 일자리가 많이 부족하다는데 생각이 나서 써봤습니다. 모두들 좋은 곳에 잘 취업되기를 바랍니다.


상단 이미지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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