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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모아 Sep 18. 2022

03. 어딜 가든 내가 유일한 동양인

*편의상 오지를 'A타운'이라고 칭함


멜번에서는 A타운까지 곧바로 날아가는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브리즈번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마침 함께 지원한 동기도 브리즈번에 살고 있었고, 그 친구도 길어지는 채용과정 때문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 공항에서 조인 후 목적지에서 함께 이동을 하기로 했다.


내 항공편(멜번-브리즈번)은 꽤 이른 시각에 있었기에 난 브리즈번 도착 후 갖은 여유를 부리며 점심을 먹고, 보딩 시간 직전 게이트로 이동했다. 'A타운이 오지니까 작은 경비행기가 뜨겠지?'라는 생각 외에 별생각 없이 게이트에 도착했는데, 벤치를 가득 매운 사람들을 보는 순간 '헉' 소리가 절로 났다.


1) 동양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2) 남녀 비율이 9:1이었다.


바로 직전에 두 달 가까이 거대한 차이나타운과 다를 바 없는 멜번시티에서 생활을 하다 이 게이트로 오니 적응이 전혀 되지 않았다. 어딜 가든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중국인, 인도인조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고, 내가 ‘유일한’ 동양인 승객이었다. 게다가 이리 봐도 남자, 저리 봐도 남자, 여자를 눈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A타운은 광산업이 핵심 산업이라 인구 비율 중 남성 비율이 전적으로 많은 곳이었다.


"잠시 후 A타운으로 가는 000편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게이트를 가득 메운 광부로 추정되는 승객들

수하물 무게가 초과하는 바람에 뒤늦게 엑스레이를 통과 중인 동기를 기다리며 백인 남자 70%, 원주민 20%, 백인 여자 10%으로 구성된 보딩 대기줄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10분 후)


실습 후 5개월 만에 보는 동기와 함께 감격의 상봉 후 같이 비행기에 탑승한다.


(3시간 후)


착륙 후 비행기 계단을 내려가는데 채광지역 아니랄까봐 바람에 쇠/먼지 내음이 섞여있었고, 사우나에 가까운 열기로 숨이 턱턱 막혔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초봄’이라고 하기도 무색하게 현재기온이 자그마치 3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하물 무게 때문에 레더 재킷과 가죽부츠를 신고 있는 내 모습이 수치스럽기 그지 없었다. 내 유별난 패션 때문일까. 단층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항을 들어서자마자 빼곡히 매운 승객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아, 내가 유일한 동양인이지.'


순간 내 인종이 너무 튀어서 겉모습을 잠시 바꿀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거금을 줘서라도 바꾸고 싶을 정도였다.


수하물을 찾느라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기다리는 와중에도 계속 느껴지는 시선들. ‘흠. 이곳 생활이 쉽지 않겠군'


짐을 찾은 대부분의 남자들은 광산업 셔틀버스로 추정되는 버스를 타고 단체로 사라졌고, 동기와 나는 마침 운이 좋게 공항 앞을 지나가던 택시를 멈춰 세워 호텔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택시를 운전해 주신 기사님은 A타운에 10년 전에 와 눌러앉은 분이었는데, 호텔까지 운전해 가면서 동네 설명을 해주셨다. 주변을 둘러봐도 건물이 아무것도 없고, 길거리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더운 날씨와 대중교통의 부재로 차가 필수인 지역이었다). 유일하게 창 너머로 보이는 경치는 높은 흙더미들이 다였는데 기사님 말씀에 의하면 그 높이가 300m에 달한다고 한다.


땅거미가 질 무렵 무사히 호텔에 우리는 짐을 풀 새도 없이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일식집에서 아주 짠 데리야끼 치킨 보울을 하나씩 시켜먹곤 쏜살같이 호텔로 돌아왔다. 실제로 A타운은 범죄율이 꽤 높은 지역이라 경계태세를 낮출 수가 없었다.


내일 병원에 가서 NUM을 만날 생각을 하며 동기와 난 일찍 잠을 청했다.

소피와 내가 첫 날 묵은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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