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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Aug 04. 2023

삶이 항상 앞으로만 나아가진 않더라

그렇다고 의미 있는 후퇴도 아니었다.

공황장애, 우울증이 가장 무서운 점은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스스로를 좀먹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다른 증상을 가지고 있겠지만 저는 약간 멘털에 있어서 개복치 같은 나약함을 보이게 된 거 같긴 합니다.


그래서 뭐가 됐든 집에서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아이와 자잘한 놀이를 한다거나, 어항의 수초를 다듬는다거나, 프라모델을 만들거나, 골프를 치거나 이거 저거 많이 시도하고 많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산스럽게 하루를 보내다 문득 혼자인 순간이 오면 슬그머니 불안감이 머리를 내밀곤 합니다. 그리곤 회사에서 있었던 자잘한 실수나 불편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제 자신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버리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 걸까?'라는 벽에 부딪혀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럴 때 누군가가 옆에서 손을 내밀어도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그런 뒷걸음질을 치고마는 그런 제 자신이 더욱 한심하고 가치 없게 느껴지곤 합니다. 저는 이 스스로를 좀먹어 가는 병이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어디가 부러진 거라면 낫기를 기다릴 수라도 있겠지만 이건 끝이 보이지 않아요. 나는 언제 '정상'이 되는 걸까? 나는 언제가 되어서야 홀로 있어도 '문제없이' 지낼 수 있게 되는 걸까?


언젠가 뒤돌아서 보면 제 인생에 있어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기억되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의 제게는 그저 오늘도 몇 걸음은 뒷걸음질 쳤을 뿐이라고 기억되는 나날들입니다.


이런 가운데 출근은 더없이 무섭고 두려운 일 중에 하나입니다.

혹시 일을 정말 못하는 똥멍청이가 아닐까 생각하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저 나름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회사에서도 나름 대접받고 평판도 좋아서 늘 인사평가나 상향평가로도 상위권에 드는 사람입니다?...만, 능력과 스트레스는 별개의 일인 거 같아요...



솔직히 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병이 걸렸을까 원망도 해 보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버텨내야 하는 게 삶이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걸요. 그래서 때로는 오늘처럼 한없이 가라앉고 힘든 날에도 그냥 그렇게 견뎌내는 것 같아요.


같은 병을 앓고 계신 분들께, 어떤 위로로도 회복할 수는 없지만 우리 잘하고 있잖아요? 그래도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내고 있잖아요?

전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 거 같아요. 이 하루가 그렇게 기적이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오늘 하루를 또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 같아요. 오늘 퇴근길도 정말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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