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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Jul 31. 2024

#03. 그런데 돈벌이는 어떡해?

당신이 술만 안 먹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

휴직을 결정하고 난 뒤에 바로 피부로 와닿은 고민은 돈.

솔직히 충동적이지 않았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결정이었기에 탄탄한 계획이 부족했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일처리도 그렇고 늘 대안을 빠르게 도출하고 대응했던 나이기에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복직이 보장된 대기업이라는 환경, 높은 연봉으로 쌓아왔던 경제적 여유 그리고 내 능력으로 가진 다양한 기회들이 한몫을 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런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 일지 생각하니 조금은 쓸쓸하면서도 지금의 상황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신경안정제를 비롯해 항우울제를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쉴 수 있으니까...


사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휴직은 이미 공황장애를 앓으며 받아놓은 진단서가 있기에 병가도 가능했고,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기에 육아휴직도 선택지에 있었다.

이 중에 육아휴직을 선택한 이유는 내 휴직을 만류하며 선배가 외친 질문에 답이 담겨 있기도 했다.


"휴직은 다 좋아, 그런데 돈벌이는 어떡해? 그냥 참어 인마"


일단 육아휴직은 나라에서 수당이 나온다. 만족할 만한 금액은 아니기에 망설였지만...


"당신이 술만 안 먹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


와이프의 위로인지 질책인지 모를 외침에 상황은 더 빠르게 정리됐다.

그렇지, 힘들다는 후배들, 부하 직원들 밥 사주고, 술 사주는 돈만 빼도 육아휴직 수당과 저축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터다. 그동안 가정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회사에 충성했던 내 삶이 다시 보이는 계기였다.


어떻게 보면 성공만을 바라보는 인생을 걸어왔던 거 같다. 대학시절 스스로 학비를 벌려고 시작한 프리랜서로 시작해서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조기 취업으로 한 뒤로 주욱, 18년을 쉴 틈 없이 달려오기만 했더랬다.

매일을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노력했고, 기획자라는 일을 하면서 매니지먼트에 도움이 되기에 동료, 후배들의 상담자를 자처했었다. 후회되냐 묻는다면, 난 언제라도 같은 길을 걷겠노라 다짐할 만큼 후회 없이 살아왔다.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였고 성공은 그 보상이라 믿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건 번듯한 대기업이라는 직장과 연봉, 그리고 매일 늘어가는 정신과 약뿐이었고 그 어디에도 진짜 내 인생은 없다는 걸 딸아이와 웃으며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제대로 쉼으로 채워야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런데 뭘 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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