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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닭 Jan 11. 2023

가족에게 더 소홀한 이유

투정과 죄책감

영원한 건 없지만



  아빠가 쓰러지셨다. 내가 긴 휴가를 앞둔 지 일주일 정도 되는 때, 가족 톡방에 불쑥 올라온 말이었다. 아빠는 작년 크리스마스이브부터 몸에 이상을 느끼셨다고 하신다. 목 부근에서 시작된 통증이 점점 심해져, 병원에 가셨더니 더 큰 병원으로 가보란다. 그렇게 지방의 3차 병원으로 입원하셨고, 입원하신 지 불과 하루 만에 왼쪽 반신이 마비되셨다. 나는 새해를 며칠 앞둔 연말에, 이러한 사실을 가족의 혼란과 함께 전달받았다.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간병인 고용, 코로나 검사 등의 문제로 당장 아빠를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잔병치레를 하신 적은 있지만, 갑자기 입원하실 정도의 일이라니? 멍해졌다. 본가를 나와 타지에서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갑자기 자각한 책임감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멍청하게 있을 순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정리했고,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하기로 했다. 또한 절차상의 일 외에도 챙길 것들이 있었다. 바로 다른 가족들의 마음이었다. 조급해지고 걱정이 많아지는 가족의 마음을 챙겨줄 수 있는 건, 조금 더 정신을 차린 나밖에 없었다. 나라도 걱정을 눌러두고, 주변을 살펴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의 마음을 챙기는 것보다, 가족들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 더 힘들었다.






투정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익숙한 나지만, 가족의 마음을 보는 건 매우 낯설고 힘들다. 가족은 오랫동안 내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의 대부분, 나에게 가족은 투정을 받아주는 상대였다. 그리고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처럼 먼저 이해받길 원하는 마음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비록 나이가 들고 점점 책임질 것이 많아지며,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지만, 부모님께 의지하던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책임감과 심리적 거리감을 적절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에 비해선, 배은망덕하게도 가족들에게 쉽게 소홀했다. 

  아빠의 몸이 좋지 않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도 가족들의 마음을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걱정과 고민을 들어주면서도 동시에 머릿속으로 '짜증 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하며 참았다. 도대체 왜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은 남들보다 가족에게 더 함부로 대하는가? 궁금하면서도 죄책감에 답답했다. 나는 그 답을 우연히 읽게 된 책에서 찾았다.

  정신과 교수였던 조지 E. 베일런트는 개인의 방어기제를 성숙도에 따라 4단계로 나누었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성숙한 것으로 보았는데, 3단계에서 소개된 방어기제 중 '전치(Displacement)'라는 것이 있다. 쉽게 풀이하자면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 속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나는 가정 바깥에서 참고 절제했던 스트레스를 가족들, 특히 부모님께는 거리낌 없이 풀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님께  투정 부렸을까? 이 부분이 나의 죄책감을 특히 자극하는 부분이다. 이유는 바로, 내가 사랑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죄책감



 아이가 떼를 쓰려면 먼저 주변 분위기가 충분히 호의적이어야 한다. (중략) 그와 커스틴이 몇 년 동안 심어준 그 모든 확신 ㅡ '난 항상 네 편이야.' '어떤 느낌이 들더라도 우리에겐 다 말해도 돼.' ㅡ 은 훌륭히 성공을 거뒀다. 둘은 윌리엄과 에스터에게 화를 받아줄 수 있고, 받아줄 거라고 신호를 보낸 이 두 애정 어린 어른들에게 좌절과 실망감을 곧바로 강력하게 표출해도 된다고 격려해온 것이다.
(중략)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는 양치질, 숙제, 방 정돈, 취침 시간, 마음 넓게 쓰기, 컴퓨터 사용 제한에 대해 말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중략) 그리고 이렇듯 사랑을 드러나지 않게 실행한 결과로, 좋은 부모는 그 실행이 잘 된 경우에 강렬한 분노와 적개심의 표적이 되고 만다.

-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은행나무(2016)


  내가 부모님께 투정을 부리는 게 익숙하단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부모님께서는 나의 투정을 어릴 적부터 감내하셨다는 말이 된다. 무논리의 논리로 무장한 꼬맹이의 고집을 들어주는 건 분명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고, 사랑 없이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부모님은, 가끔은 화를 내시더라도 나의 철없는 발언들을 묵묵히 들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부끄럽고 감사한 일이다.

  한때, 나는 매체에서 그려지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며, 내가 속한 가정을 불만족스럽게 여겼다. 도란도란 식탁에 둘러앉아 웃으며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 같은 가정은, 내가 속한 현실의 부족함을 찌르는 가시였다. 그러나 점차 다른 사람들을 직접 만나 많은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얼마나 행복한 가정에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루를 되돌아보며 정을 나누지는 않아도 서로를 헐뜯지 않았고, 언쟁이 생기더라도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으며, 공포보단 미지근한 신뢰감으로 가족 간의 유대감을 형성했다. 살면서 보고 배우는 모든 것들이, 가족에게 감사하라고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며 나타나는 부모님의 변화가 야속하다. 염색으로도 덮지 못한 흰머리와, 점점 두툼해지는 약 봉투, 어눌해지는 말투. 감성적으로 변해가는 아빠와 일을 놓지 못하는 엄마. 현관문 옆에 걸린 가족사진 속 우리는 변함없이 웃고 있는데 부모님의 주름은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나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해 응석부리기만 하고, 어떻게 은혜를 갚을지도 막막한데, 부모님들은 떠나가실 준비를 하는 듯하다. 든든했던 버팀목들이 무너져가고 있단 걸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아, 더욱 부모님께 투정 부리게 된다. 받은 사랑이 깊은 만큼, 죄책감은 더 커져만 간다.






영원한 건 없으니



  입원했던 지방의 병원은 아빠의 병명을 정확히 진단할 수 없었고, 가족들은 병원을 의심하며 덩달아 불안해졌다. 경추에 혹이 발견되었는데, 단순 염증인지 암인지 알 수 없단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선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검사 자체로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는다고 한다. 결국 서울의 큰 병원에 진료를 다시 보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형과 함께 올라오신다길래, 급히 휠체어를 대여하고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엥? 이게 웬걸. 형과 아빠가 저 멀리서 걸어오고 계시지 않은가? 어느 정도 증세가 호전되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보조 기구도 없이 걸어 다니신다고? 내가 상상한 아빠의 모습은 반신이 마비된 상태에서 멈춰있었는데, 다행히도 입원한 지 10일 만에 상태가 매우 호전되셨다. 비록 왼손은 아직 뻣뻣해 제대로 움직이시지 못하시지만, 반신이 마비되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큰 진전이었다.

  분명 아빠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걸어오시는 모습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잔소리를 들으며 자라온 나는 어느새 아빠에게 잔소리 하고 있었다. 허리 피세요, 목 바로 세우세요, 자세를 바로 해야 목에 무리가 안 가죠, 아빠 똥고집 부리지 마세요 어휴. 서울에서 진료받고 나니, 이렇게 급하게 아프고 호전되는 건 염증일 확률이 높단다. 암은 서서히 나빠지기만 한다고. 일상생활을 하며 재활이나 열심히 하란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혹시 몰라 병원 두 군데에 진료 예약을 해둔 상태라, 다음 예약까지 며칠이 비게 되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재활도 할 겸, 아빠에게 맛난 음식을 드리고 재미난 구경을 보여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아들이 아빠와 단둘이 시간을 가지는 건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그러니 더더욱 노력해야 했다. 아빠는 아프신 중에도 일 걱정을 하실 정도로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오셨다. 따로 즐기신 여가 생활이라고 해봤자 등산이 전부셨다. 같이 있는 동안에 새로운 경험을 쌓아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인도 전문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호수를 산책하며 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으며, 아기자기한 상품이 가득한 가게에서 쇼핑도 했다. 오래 걷기가 힘드셔서 더 많은 걸 하지는 못했지만, 아빠가 새로운 경험에서 즐거움을 느끼실 때마다 나도 뿌듯해졌다.

   이러한 일정 탓인지, 바로 뒤에서 코를 고시며 주무시는 아빠 덕에, 잠을 잘 수가 없어 글 쓸 시간이 생겼다. 저렇게 심하게 코를 고시는 걸 보면 다른 병이 있으신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병원 침대가 아니라 내 침대에서 주무신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원한 건 없으니 지금이라도 조금씩 잘해야겠다. 매시간을 긴장하며, 잘 모시겠다고 노력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의지가 생길 때라도 더 노력할 것이다. 주무시고 일어나신 다음 날은 더 상태가 호전되셨으면 좋겠다.



  나아가, 새해는 소중한 사람들 모두가 건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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