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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연 Sep 06. 2022

뮤지컬 <사의찬미> 속 '악의 보편성'

단편소설 <라쇼몽>과 함께 보는 넘버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뮤지컬 <사의찬미> 에 대해


뮤지컬 <사의찬미> 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6연째 대학로에 자리잡은 소극장 뮤지컬이다.


총 3인의 인물이 등장하는 시대극으로, 관객들은 1921년과 1926년을 넘나들며 주인공에게 있었던 사건의 비밀에 대해 파헤치게 된다.


극의 배경은 1921년, 도쿄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김우진은 와세다 영문학과에 재학중인 대학생으로, 너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며 접근해온 의문의 사내 한명운과 함께 희곡을 쓰게 된다. 한명운(사내)에 의해 도쿄 음악학교에 다니는 윤심덕을 만나게 되고, 윤심덕은 완성될 희곡의 주인공을 맡아주기로 한다.


극은 1921년과 1926년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1926년, 김우진은 회상을 통해 그 희곡은 공연되지 못했으며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다시 1921년으로 돌아가, 관객들은 셋의 사이가 점점 틀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김우진과 윤심덕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윤심덕이 몰랐던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한명운은 김우진이 유부남이란 사실을 폭로한다.


김우진은 더이상 너와 함께 작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미완성인 희곡 대본을 돌려주고 한명운에게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라고 끝을 고한다. 그 순간 돌변한 한명운은 김우진에게 총을 들이대며 결말을 완성하라고 강요하고, 궁지에 몰린 김우진이 총을 빼앗고 실수로 격발한다. 하지만 그 총은 빈 총이었다.


이후 김우진은 한명운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지만, 알 수 없는 원고가 도착한다. 김우진은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그 창조적이고 매력적인 문장들을 발표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명운과 함께 작업하던 희곡 <사의찬미> 가 다시 김우진에게 전달된다. 결말이 완성된 채로.


다시 1926년 시점으로 돌아와 김우진은 윤심덕에게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기회라며 여기 적힌 대로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결말 부분을 급하게 써서 넘겨준다. 윤심덕은 결말을 확인하고, 한명운이 보지 못하도록 바닥에 '결말 종이'를 떨어뜨려 숨긴다.


한명운은 윤심덕에게 배에 올라탄 김우진을 죽이기만 하면 내가 그의 역할을 대신해 널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가주겠다고 속삭이고, 총을 넘겨준다.


윤심덕은 넘겨받은 총으로 김우진을 쏘고, 자기 자신조차 쏘게 된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한명운과 관객들은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총에 맞아 죽은 척해 한명운을 속인 김우진과 윤심덕은 갑판 위로 도망친다. 하지만 금방 알아챈 한명운은 갑판 위까지 쫓아가고, 둘은 새로운 세상과 자유 그리고 사랑을 찾아 배 밖으로 몸을 던진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주인공 김우진이 겪는 일은 일본의 단편소설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겪은 일과 일부 비슷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915년, <라쇼몽> 을 쓴 작가이다.

뮤지컬 스모크에서도 간략히 언급되는 작가로, 스스로 생을 끝낸 인물이기도 하다.


단편 소설보다 더 짧은 길이의 엽편 소설을 주로 집필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병약한 체질과 신경쇠약을 가지고 있었는데, 1927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이기심이나 모순된 심리를 염세주의적 관점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많다.


그는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두 통의 편지> 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두 통의 편지>


작품은 먼저 나이 서른다섯, 사립 대학에서 윤리 및 영어 교사를 맡고 있는 사사키 신이치로의 첫 번째 편지로 시작한다. 수신인은 경찰서장.

그는 4년 전 결혼한 아내 후사코와 본인에게 총 세 번, 도플갱어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기가 곧 죽을 거라는 불안감을 토로하면서도 도플갱어로 인해 아내의 정조가 의심받고 있음에 대해 호소한다.

저희 부부가 불명예를 입지 않도록 적절히 처리해달라는 당부로 첫 번째 편지는 끝을 맺는다.

두 번째 편지는 아내의 실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방조한 경찰서장을 비난하며, 편지의 주인공은 앞으로 학교를 사직하고 초자연적 현상의 연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종사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도플갱어(Doppelgänger)


도플갱어(Doppelgänger) 는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 라는 뜻이다.


분신, 복제,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종의 심령 현상, 이라고 하며 도플갱어를 마주치면 둘 중 한명은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1796년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의 소설 <지벤케스>에 등장해 유명해졌다고 한다.



김우진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죽기 전, 몇 가지 일화가 있다.


1) 류노스케는 신경 쇠약과 불면증으로 처방받은 수면제 '바르비탈' 을 다량 복용해 자살했다.

2) 그는 죽기 전, 지인들에게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았다고 말했다.

3) 자기가 쓰지 않은 원고가 책상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4) 자기가 버린 작품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고 한다.

5)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자기 대신 지인들과 술자리를 즐기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사의찬미 속 김우진이 겪은 일과 몇 가지 공통된다.


1) 김우진은 신경 쇠약으로 극 중 몇 번이나 약을 먹는다.

2) 자기가 쓰지 않은 원고가 전달되었으며, 스스로 쓴 것처럼 그 글을 발표했다고 말한다.

3) "내가 쓴 희곡 사의 찬미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결말이 완성된 채로" 라고 말한다.


반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김우진은 가방을 뒤져 대본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두려움에 떨다가, 윤심덕이 가져갔던 대본을 돌려주자 안도하며 결말 부분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가 쓴 결말은 사라졌으며 한명운이 가져간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이로 인해 김우진이 쓴 결말은 한명운이 가져가고, 자기가 쓴 결말을 김우진에게 강요하듯 전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우진이 보고 겪은 '한명운' 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보고 겪은 도플갱어와 같은 존재일까? 그건 알 수 없다. 이건 그냥 하나의 가능성이자 해석 중 하나일 뿐이다.



한명운은 김우진이 스스로 생각해냈지만 부정하는 자기 자신의 사상, 혹은 스스로 썼지만 부정하는 자기 자신의 문장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극 중 한명운이 인용하고, 김우진이 "누구의 이론이야?" 라고 묻는 구절은 실제로는 실존인물 김우진이 발표한 문장이 맞다.)


혹은, 한명운은 김우진의 망상 그 자체일 수도 있다.


혹은, 한명운은 실존하는 인물이며 김우진에게 벌어진 모든 일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 맞을 수도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속 악의 보편성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 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해고된 하인이다. 비가 내리는 황폐한 라쇼몽 아래에서 그는 갈 곳이 없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도적이 될까 고민하지만 결심하지 못한다. 라쇼몽 위 누각에서 어떤 노파가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다. 노파는 그것이 나쁜 일인 줄 알지만,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합리화한다. 여기 죽은 사람도 생전에 살기 위해 악을 저질렀을 테니, 노파를 용서해 줄 것이라는 논리이다. 주인공 하인은 그렇다면 나 또한 살기 위해서라며 노파의 옷을 빼앗아 도망친다.


첫 출판 당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하인은 이미, 비를 무릅쓰고 교토에 강도짓을 하러 서두르고 있었다." 였다. 다만 이후 개고하여 "하인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로 바뀌었다.


이 작품은 실존의 문제 앞에서 무기력한 선과 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인은 노파의 악행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합리화를 보고, 스스로의 악행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즉, 악행을 되돌려주는 순간 '악'이 보편성과 상호성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의찬미 속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에서 보여지는 악의 보편성


뮤지컬 사의찬미 속에서도 악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순간이 있다.


주인공 김우진은 더이상 너와 함께 희곡을 작업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내 방에서 나가라며 한명운을 축객한다. 이 때 한명운은 총을 겨누고 김우진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김우진을 협박하던 한명운은 책상에 총을 내려놓는다. 그는 김우진에게 "넌 날 질투하고 있는 거야. 내 재능을, 그녀와의 관계를. 넌 그냥 그녀를 독차지하고 싶은 거야. 아니야? 아니라면 써." 라고 말하며 김우진에게 결말을 완성하도록 강요하고 재촉한다.


총에 겨눠져 생존의 위협을 느낀 김우진은 그의 말대로 결말을 완성하기 위해 펜을 집어들지 않는다. 살기 위해 총을 집어들고, 반대로 한명운을 겨냥한 채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한다.


하지만 한명운은 "후회할 거야, 김우진" 을 외치며 그에게 달려든다. 위협당하고 강요당한 끝에 김우진은 한명운이 자기에게로 달려오는 순간, 방아쇠를 당긴다.


김우진은 총을 쏘도록 한명운에게 유도되었다.


김우진이 총을 쏜 순간, 한명운은 마치 총에 맞은 듯 그 자리에서 쓰러지거나(김종구 사내) 너도 이제 재미 없다, 며 김우진에게 빈 총을 쏘거나(김종구 사내) 마이 베스트 후렌도, 굿또 파토나, 하며 실망한 듯 김우진에게 비난의 눈빛을 보내거나(정민 사내) 그리고 그의 총은 빈 총이었다, 라고 읊조리며 김우진의 행동을 희곡 속 주인공의 행동 지문으로 만들어 희곡의 결말을 구상하거나(에녹 사내) 네가 그럴 줄 알았단 듯 툭툭 털어내고(성태준 사내) "결말은 내가 직접 쓰지," 하고 김우진을 비웃으며 나간다.



극 초반, 한명운은 김우진에게 "넌 좀 달라. 너에게선 어떤 저항심 같은 게 느껴져. 다른 조선의 부르주아 청년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일종의 투쟁심이랄까?" 라고 말한다. 또한 김우진에 대해서 서술할 때 "부친의 가업을 이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괴로워." 라고 말한다.


한명운이 김우진을 희곡의 주인공이자 희생양으로 점찍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저항심, 투쟁심이다. 또한 생명력(라이프 포스).


넘버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에서 한명운은 김우진에게 총을 겨누고, (악을 행함) 김우진을 몰아붙여 총을 집어들게 만든 뒤 자기에게 총을 쏘도록 유도한다. (악의 보편성, 상호성)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악하다는 전제를 김우진에게 마치 사실인 것처럼 주입하기 위해, 한명운은 빈 총을 들고 와 김우진을 위협하고 자기에게 총을 쏘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김우진이 가치있다고 믿는 관념들은, 인간에 대한 실망을 통해 꺾일 수 있다. 한명운은 김우진이 총을 쏘도록 해 '너 또한 악하다' 는 메시지를 전하고 "너도 이제 재미 없다," 며 흥미를 거두는 척한다. 김우진의 생명력, 투쟁심, 저항심을 꺾어놓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꺾인 김우진은 이후 '윤심덕의 곁에 한명운이 있기 때문' 이라는 이유로 윤심덕을 도쿄에 놓아두고 한 마디 말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한명운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넘버 <그가 오고 있어> 직전의 대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완벽한 결말, 아름다운 결말의 실패에 대해


극 중에서 한명운은 김우진과 윤심덕에게 "의문의 정사(情死,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함께 자살하는 일)" 라는 완벽한 결말을 만들어 주고 싶어한다.


한명운은 김우진과 윤심덕이 좌절하고, 세상을 비관하고, 죽음을 찬미하며 함께 죽기를 바란다. 또한 그것을 완벽한 결말,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찬미한다.


이후 김우진과 윤심덕이 자기를 속이고 배 밖으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기 위해, 투신했을 때 "금지된 사랑 금지된 낭만, 허락되지 않은 이야기, 아름답지 않은 결말" 이라고 말한다. "찬미하라 비극의 결말을, 진실은 바닷속에 감춰라" 이라고도 덧붙인다.



김우진과 윤심덕은 그가 정한 결말을 벗어난다. 사느냐 죽느냐 생사의 여부보다는 세상을 비관하고,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고, 생명력을 잃고, 서로를 탓하며 동반 자살하는 결말이 아니라 "우린 새로운 세상으로 갈거야" 라고 말하며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지는 것이 핵심이다.

결말 이후에 김우진과 윤심덕이 살았을까보다는, 한명운이 준비한 어둡고 암울한 염세주의적 관점 그 자체를 벗어나 서로를 붙들고 투신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면 한명운이 원한 결말은 분명히 실패했다.



한명운, 1926년의 실패 이후


이건 그냥 가벼운 상상.

극 중 <그가 오고 있어> 장면에서 김우진은 한명운이 연관되어 있는 여러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1918년 가을, 대학선배 시마무라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어. 그리고 며칠 뒤, 그의 애인 마츠이가 충격으로 목을 맸지.

1921년 가을, 우에노 음악학교의 철학강사 노무라가 그의 제자 오카무라와 함께 서로의 몸을 묶고 에도가와에 투신했어.

1923년 여름, 인기 작가 아리시마 다케오가 그의 애인 하타노와 함께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어.

1924년 봄, 오야대학의 미토 교수가 사랑하는 술집 여급과 동반자살했지.


이 모든 일에 그가 연관되어 있어!



1926년에는 김우진과 윤심덕의 죽음을 예정해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패했다.


이후 1927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김우진이 겪은 것과 비슷한 일을 겪으며 도플갱어를 보았다고 주변에 호소한 끝에 홀로 수면제를 다량복용했다고 생각하면, 왠지 김우진과 윤심덕의 실패 이후에 시나리오를 바꾼 한명운의 이야기가 상상된다.


또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연인이 아니라 한 명만 대상으로 하는 한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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