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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연 Sep 24. 2022

뮤지컬 <배니싱>, 인간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

해부학, 혹은 뇌과학과 심리학/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배니싱, 타인에 대한 이해



김의신은 어릴 적, 콜레라로 부모님을 잃었다. 원인만 안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이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귀신이 옮긴 병이라며 팥을 뿌리고 굿을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는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라고 의학에 몸담았다. 마치 아무도 죽게 하지 않겠다는 트라우마처럼(유승현 의신), 혹은 인류를 치유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위대한 목표처럼(정민 의신), 혹은 아이처럼 천진한 호기심과 순수한 꿈처럼(박규원 의신).


김의신은 극 초반에 이야기한다.


피부 아래 근육 아래

맥박 뛰던 혈관 끝까지

어떻게 심장이 뛰는지

어떻게 피가 흐르는지 알고 싶어

사람이 왜 아파 죽는지

어떻게 만들어져 움직이는지

단지 얇은 피부를 들추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어


김의신은 해부학을 통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피가 어떻게 흐르는지, 피부를 들추고 근육 아래까지 관찰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인간을 치유할 수 있다고.


김의신은 햇빛을 받으면 화상을 입고 타들어갔다가, 다시 어둠 속에서 재생되는 한 남자를 만난다. 자기의 믿음을 토대로 그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치료가 필요합니다. 내 이름은 김의신, 경성의전에서 공부를 하고 있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시오. 언제든!"


윤명렬은 '그딴 부랑자' 라고 일축했지만 김의신은 그를 보고 '병을 가진, 환자. 특별한 사람' 이라고 칭한다. 그들이 어둠 속에서 만났던 그 남자는 결국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그를 찾아간다.


김, 의신?

날 초대했잖아.

오늘, 새벽.


김의신은 그의 증상을 반드시 밝혀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며 연구를 제안한다. 얼마 만에 햇빛과 온기를 접한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어둠 속에 숨어 살아온 이 남자는 연구 제안을 수락한다.


김의신은 그에게 케이, 자신의 이니셜을 따 케이라는 이름을 준다. 멋있죠? 케이.


이 때쯤, 경성의전에서는 알 수 없는 실종 사건들이 벌어진다. 윤명렬은 김의신에게 이 소식들을 전해준다. 김의신은 경성의전에서 괴짜, 외골수, 이단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윤명렬이 아니라면 그런 소식들을 전해줄 이가 없다.

김의신은 실종 소식과 총독부 외과 의원 발령에서 성적이 우수한 자신보다 일본인 학생인 마츠모토가 우선적으로 뽑혔다는 소식에도 개의치 않고 연구를 계속한다.


케이에게 네 피의 특별한 브이 인자의 비밀을 밝혀냈다며, 이것만 제거할 수 있다면 다시 햇빛 속을 걸을 수 있다고 희망을 준다.


하지만 어느 날, 실종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시체로 발견된다. 상황은 급변한다. 학생들은 모두 살인 사건에 대한 진술을 위해 긴급 소집된다. 김의신은 진술이 끝나고 돌아가던 길에 희생자 마츠모토가 죽기 전 휘둘렀던 메스를 확보해 거기 묻은 피를 확인한다. 살인범의 피일 가능성이 높은 그 피에는 브이 인자가 존재하고 있다.


김의신은 마츠모토가 죽고 대신 총독부 외과 의원으로 발령난다. 케이가 찾아와 축하하며 아주 오래 전 내가 어떻게 감염되었는지 생각났다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김의신은 그 많은 사람들을 정말 다 네가 죽인 거냐고 확인한다. 케이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며 실망하지만, 곧 자기가 죽인 게 맞다고, 그들 모두 죽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 연구를 방해했기 때문에.


김의신은 케이에게 넌 미쳤다고, 이해할 수 없다며 우리 연구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 여기서 사라져. 넌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돼. 이 방에서 나가. 꺼져!


케이는 자신이 피를 통해 감염되었다는 걸 기억해낸다.


바로 네가 알려줬잖아

난 감염 된 거야 피를 통해서

피부 아래 너도 될 수 있어 흐르는 피는 똑같아

우리를 가르는 피부를 뚫고 직접 느껴봐

어떻게 다른지 너의 피와 세포까지 나를 알게 될 거야


케이는 김의신을 물어 피를 마르게 하고, 자신의 피를 주어 동질로 만든다.


날 어떻게 한 거야!

시간을 선물했어. 어둡고, 긴. 넌 내가 필요해.


김의신이 사라진 사이, 경성의전에서는 김의신을 두고 수상한 소문이 돈다. 그가 밤거리에서 쥐를 먹었다고, 입가에 피가 묻은 채였다고. 윤명렬은 형을 믿고 싶다고 말하지만 결국 소문을 믿게 된다.


김의신은 인간들에게 사냥당할 거라고, 돌아가지 말라는 케이를 뿌리치고 인간 사회에 남기 위해 경성의전으로 돌아간다. 돌아온 김의신을 마주친 윤명렬은 마츠모토의 메스를 몰래 챙겨가며 그를 경계한다. 김의신은 밤에만 활동이 가능한 검은 귀신이 되어버린 탓에 야간 응급실 근무에 지원하지만, 응급실에서 환자를 물어 피를 마셔버리고 만다. 윤명렬은 마츠모토의 메스를 김의신 의사의 방에서 발견했다며 상부에 보고하고, 김의신은 경성의전에서 벌어졌던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다.


김의신은 이제 더 이상 인간들 틈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절망적으로 깨닫고, 반쯤 자포자기 심정으로 케이에게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는다.


케이는 김의신에게 밤의 법칙들을 알려준다. 오랜 세월 인간의 피와 생명을 취해 자기 자신의 시간을 연장해온 검은 귀신으로서, 자기의 존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궤변 그 자체들. (#밤의 한 켠에서)


상냥하게 다가가서 인사를 해

부드러운 살결 아래, 흐르는 피


단숨에 무는 자비로움

상대도 황홀하니까

걱정하지마 죽어 마땅한 몸이야


밤의 한 켠에서 지켜봤어

수 없이 많은 억울한 죽음을

침략과 몰락의 순간에도

수 많은 전쟁의 순간에도

거기 있었어


(누군가가 살기 위해)

누군가는 죽게 돼 있어


내가 선사한 죽음은 깨끗해

죽어 마땅한 자들

(죽고 싶은 자들)

고통 없이 황홀하게 죽어가게 돼


의신: 안 돼 살인은!

K: 그게 나쁜가?


의신: 그건 범죄야!

K: 그건 누가 정하지?


인간도 타인의 피로 살아가

이 순간도 누군가의 피의 흘러

넘치는 피의 역사 속에

내가 마신 피는 몇 방울 안 돼



밤의 한 켠에서 나란히 거닐면서

밤의 한 켠에서 보게 될 거야

쉽게 타인을 죽이는 인간 포식자들을

죽고 죽이는 이 역사에서

우리가 마실 피는 몇 방울 안 돼


기억해 우리가 마실 피는 몇 방울 안 돼


김의신은 윤명렬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연구는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되니 모두 파기해 폐가로 가져다달라고 부탁한다. 윤명렬은 편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한다.


케이는 김의신에게 검은 귀신의 감각을 통제하는 법을 알려주고, 김의신에게 피를 구해다 준다. 김의신은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연구를 계속한다. 그리고, 케이에게는 하지 않았던 생체 실험을 스스로의 몸에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케이.


세상은 변해가고, 전쟁이 일어났다. 밖에 군인들이 많아졌다며 케이조차 세상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한편 군부의 지원을 받게 된 윤명렬은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김의신이 있는 폐가를 찾아온다.


이제서야? 날? 경계하던 김의신은 결국 형의 연구를 지원해줄 수 있다며 돌아오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다. 김의신은 윤명렬에게 "케이는 필요없어, 나 하나로 충분해. 아무도 몰라야 해. 그리고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이 필요해. 그리고.. 매일 짐승의 피가 필요해." 라며 자신 또한 케이에게 감염되어 검은 귀신이 되었단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린다.


케이는 연구를 위해 폐가를 떠나겠다는 김의신을 말리지만 실패한다. 마실 걸 더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뜨려는 케이에게 "꼭 돌아올게," 한 마디를 남기고 김의신은 떠난다. 케이는 다시 외로움 속에 남겨진다.


이런 끝은 익숙한데

왜 또 믿고 말았을까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무엇도 붙잡을 수 없는 걸 아는데


연구가 계속되던 어느 날, 윤명렬은 아버지에게 재촉당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로 연구실을 찾았다가 피를 구해달라는 요청에 마지못해 자리를 비운다. 그 때 김의신은 브이 인자를 제거하는 쥐를 통한 임상실험에 성공한다. 햇빛을 통해 자기 몸에도 실험이 성공했는지 확인하려 하지만, 자기 몸에는 실패하고 만다. 브이 인자를 제거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중얼거리는 김의신에게 윤명렬은 "우리가 필요한 건 네 몸의 브이 인자야!" 라며 멋대로 굴지 말라고 폭발하고 만다. "이제 내가 직접 널 연구할 거야!"


윤명렬은 연구 대상이자 연구의 주체로서 김의신을 대접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널 내가 직접 연구하겠다며 연구실에 햇빛을 들이는 장치를 통해 김의신을 압박한다. 애시당초 윤명렬이 마련한 연구실은 햇빛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으며 언제든 김의신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햇빛을 조절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이 때 케이가 찾아와 김의신을 데려가려 하고, 연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김의신의 백신 샘플을 케이 자신의 몸에 직접 주사한다. 그리고 "봐, 소용없어." 라며 보여주어 미련과 집착을 포기하게 한다. 이 때 윤명렬은 케이에게 총을 쏘아 제압한다. 김의신은 연구가 실패했음을 깨닫고 케이를 지키기 위해 윤명렬을 물어 제압한다. 김의신과 케이는 사라지고, 남겨진 윤명렬은 죽기 전 김의신의 브이 인자가 담긴 피를 마셔 검은 귀신이 된다.


폐가로 돌아온 케이는 김의신에게 돌아온 걸 축하한다며 축배를 들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일어서지 못하고 쓰러진다. "아파, 다쳤어."


금방 나을 줄 알았던 총상이 낫지 않는 걸 보고 김의신은 놀라지만, 케이는 덤덤하게 "성공했다, 네 연구. 이제 끝낼 수 있을 거 같아." 라며 기뻐한다.


김의신은 누구 맘대로 사라지냐며, 나랑 어둠 속에서 영원히 함께 살라며 자기의 피를 주어 케이를 다시 검은 귀신으로 되돌리려 한다. 케이는 "의신, 내가 늘 원하던 거야. 늘 내가 원하던 끝." 하며 자기의 소망이 햇빛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너에 대해 꽤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네. 너는 어떤 삶을 살았어, 아니, 너 꿈은 뭐였어? 아니, 너 진짜 이름이 뭐야.


죽어가는 케이를 끌어안고 묻는 김의신에게, 케이는 웃으며 "케이, 케이." 내 진짜 이름은 네가 지어준 케이라고 말한다. 김의신은 죽어가는 케이에게 햇빛 속으로 같이 가자고 말한다. 케이는 너 죽어, 타들어갈거야.. 라며 말리지만 김의신은 "네 꿈 속에서처럼, 함께." 라며 케이에게 웃어준다. 케이는 "함께..." 에 꿈같은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기 위해 힘내지만 총상으로 인해 숨을 거둔다.


김의신은 숨을 거둔 케이를 끌어안고, 비로소 햇빛이 자기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햇빛 속을 걷고 싶다는 케이를 이해한다. 누군가와 함께이기를 간절히 원했던 케이의 소망을 이해하게 된다.


여름날의 찬란한 햇빛, 나를 태워버린다 해도

잠시라도 느껴보고 싶었어



검은 귀신이 된 윤명렬은 혼자 남겨진 채 김의신의 연구일지를 읽는다.

"피부를 뚫고 그와 내가 동질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이해가 시작된다."


햇빛을 피해 어둠 속으로 기어들며 사라지는 윤명렬의 모습을 끝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인간으로서 죽고, 검은 귀신으로서 살아간 케이


케이는 말한다. 인간도 타인의 피로 살아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묻는다면 케이는 "타인의 피" 로 살아간다고 답할 것이다. 그것이 케이의 죄다. 타인의 피로 살아가면서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 타인의 피를 마시고 생명을 취하고 싶다면 케이 또한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케이는 온기와 햇빛, 그리고 타인을 빼앗기고 홀로 어둡고 긴 시간 속에 남겨졌다.


검은 귀신이 된 건 본인의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살기 위해 행한 그 모든 것들은 케이에게 죄로 돌아왔다. 인간의 삶, 검은 귀신의 삶.


케이는 인간으로서 죽고 검은 귀신으로서 다시 태어났다. 그러니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인간으로서 죽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검은 귀신으로서 살았고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김의신에게도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라며 어둡고 긴 시간을 선물한다. 김의신은 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를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받았다. 케이는 그 모든 걸 지켜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리고, 미안해. 미안." 라며 사과한다.


"어쩌면 우린 처음부터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는지도 몰라." 라던 케이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사라지는 거야. 내가 원하던 끝." 이라며 인간이었던 자기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몸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해도 케이의 삶은 돌아올 수 없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기에. 케이는 검은 귀신으로서 이어가던 삶을 끝내겠다며, 마지막을 받아들인다.



김의신이 케이를 이해하는 방법


김의신이 케이를 인간으로 되돌려놓은 뒤에야, 케이는 오래 전에 끝났던 자기 삶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케이를 본 김의신은 케이의 선택을 이해하고, 또 함께 햇빛 속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김의신이 햇빛 속으로 rep에서 케이와 함께 사라지는 선택은 여러가지로 느껴진다.


유승현 의신의 경우 검은 귀신으로서 더 살아갈 수 있는데도 인간으로서 사라지기를 원하는 케이의 선택을 온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타인의 피로써만 살아갈 수 있는 검은 귀신의 삶을 이어가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동의하기에, 함께 사라지는 것을 택한다. 케이의 선택을 온전히 이해했기에 스스로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끝은 유승현 의신에게도 선물같은 끝이었을 것이다.


정민 의신의 경우 죽는 순간까지 혼자여야 할 케이의 외로움을 이해한다.

케이와 동질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에 모든 인간을 구하고 싶었다던 자신의 큰 뜻을 꺾는다. 그는 케이의 곁에, "함께" 있어주며 그의 끝이 외롭지 않게 지켜준다. 또한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희생이 한 가지 더 남아있었다. 인류를 파괴할 브이 인자라는 나쁜 피를 자기 몸에 끌어안고 햇빛 속에서 사라지며 자기 자신이 백신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박규원 의신의 경우 어둡고 긴 시간 속에서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합리화할 수밖에 없었던 케이의 고통을 이해한다.

그는 왜 인간을 해쳤냐고, 널 이해할 수 없다고 케이의 양손을 붙들고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며 당부하다가도 케이가 자기 어깨를 만지려 하면 자기도 모르게 "내 몸에 손대지 마! 꺼져!!" 라며 소리쳤었다. 이해할 수 없던 케이의 선택. 대체 왜 그랬어 왜! 왜 죽였어!

하지만 규원 의신은 직접 검은 귀신의 몸으로 살아보며 케이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케이에게 "너랑 같이 갈 거야, 같이 가게 해 줘. 응?" 라며 이미 숨을 거둔 케이를 끌어안고 두려워 떨면서도 햇빛을 맞이한다. 그렇게 재가 되어 사라진다.



검은 귀신으로서 타의에 의해 살아진다.

인간으로서 자의로 사라진다.

케이는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을 선택했고, 나 또한 케이의 모든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을 치료하는 방법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


육체를 이해하고, 살리기 위해 김의신은 해부학을 답으로써 선택한다. 그는 인간의 피부와 근육을 들추고 어떻게 그것이 기능하는지 모두 알고 싶다며 빛나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김의신은 케이의 마음, 정신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생각하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김의신은 검은 귀신으로서 이해할 수 없다며 밀어냈던 케이의 마음을 이해했다.


김의신은 케이의 몸을 인간으로 되돌려 육체를 고쳐주었고, 검은 귀신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인간으로서 끝내겠다는 케이를 이해하며 끌어안아 마음까지 고쳐주었다.




뇌과학으로 보는 '나'


유퀴즈 온 더 블럭 142화에 이런 말이 나온다.


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나의 일부' 로 인식한다. 그 사람이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것이다. 타인을 위한 희생이지만 뇌과학으로 보면 결국은 나를 위한 행동이 된다. 남을 위한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수많은 사랑을 겪으며 '나' 를 확장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이 말을 보자마자 배니싱이 떠올랐다. 김의신은 부모님을 잘못된 치료로 잃은 '나' 를 떠올리며,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또다른 나' 로 확장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그들을 위해 (인류를 위해) 희생과 헌신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김의신은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들 모두를 '나' 로 확장해 끌어안은 사람이 아닐까?




마무리

                    

김의신은 어쩌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이 아니라 심리학과 뇌과학을 공부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해부학을 공부한 덕분에 케이를 이해했으니 그의 삶은 의미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

그 누군가가 전 인류가 아니라, 단 한 사람에 불과할지라 해도..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나' 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또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햇빛 속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가며 세상이 굴러가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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