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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수 Jan 02. 2025

이 한 장의 사진(1)

-사문동 삼성아파트 앞의 옛길-

2001년 동해시에서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동해시 어제와 오늘』의 67쪽에 ‘1980년대 사문동 삼성아파트 앞의 옛길’이라는 설명이 있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사진 가운데의 윗부분을 보면 ‘ㅅ’자 지붕의 건물에 넓은 창고가 딸린 큰 건물 한 채를 볼 수 있다.


사문동 삼성아파트 앞의 옛길(1980년대) Ⓒ『사진으로 보는 동해시 어제와 오늘』


천곡동에 거주하는 한금자(84) 씨의 증언에 따르면 ‘ㅅ’자 지붕의 건물은 6‧25 전쟁 당시 미군이 막사로 쓰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하며 전쟁이 끝난 후 영동미유주식회사(후 영동석유주식회사)에서 인수하여 창고를 증축한 후 영동미유주식회사 묵호영업소의 석유를 보관하던 창고로 썼다고 한다.


참고로 안묵호에 있었던 영동미유주식회사 묵호영업소는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Standard Oil Company, Inc)의 솔표 석유 등을 취급하였으며 그 사진은 다음과 같다.


영동미유주식회사 묵호영업소 Ⓒ강동수


〈참고〉 미국 석유 회사의 인천 상륙, 솔표 석유     

조선에 최초로 도입된 석유는 미국 최대 석유 회사인 스탠다드 오일사(STANDARD OIL COMPANY OF NEWYORK, 약칭 SOCONY)의 제품입니다. 조선 석유 시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타운센드 상회(Walter Davis Townsend)는 1897년 스탠다드 오일사와 계약을 하여 조선에서의 석유 독점 판매권을 가졌고, 인천에 있는 총판 대리점 순신창(順信昌) 상회를 통해 '솔표[松票]', '승리표'라는 상표로 석유를 판매하였습니다. 그해 말 월미도에 대량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고를 건립하였습니다.


1900년 4월, 타운센드는 오쿠다 데이지로(奧田貞次郎)등 인천 지역 일본 상인 11명이 조직한 '인천송함석유조합'에 석유 독점 판매권을 팔아 일본 상인들이 유통을 가져갔습니다.  

   

개항 초기만 해도 석유는 조선 사람들에게 낯선 존재였지만, 일본 상인에 의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어둠을 밝혀주는 전등불에 마음을 뺏겨버리고 맙니다. 이후 러시아산, 일본산 석유가 수입되었지만 미국산 솔표 석유는 다른 제품에 비해 악취와 매연이 없었기 때문에 가격이 훨씬 비싸도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스탠다드 오일사의 석유는 1910년대까지 조선 시장을 독점하였으나 1920년대 이후 미국의 텍사코 '별표'와 영국의 쉘 '조개표'가 들어와 석유 3인방으로 불리며 서로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   


  

사문동 삼성아파트 앞의 옛길은 2001년 사진집이 발간된 당시의 사진을 보면 잘 정비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1년 당시 정비된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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