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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31. 2023

마음 구멍에 바람 들기 쉬운 이맘때의 대비책 3가지

마음이 시릴 땐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체감하는 얼마 전까지 가벼운 셔츠 한 장 걸치고 훌훌 다니면 딱 좋았는데 눈 떠보니 기모 후드 위에 플리스를 겹쳐 입고 있다. 기능적으로 훌륭할지 모르나 심미적으로 썩 근사하진 않은 행색의 사람이 내 앞에 비추어진다. 일 년 중 마음 평수가 가장 널따래질 만큼 편애하는 계절이긴 한데 어깨동무하고 나란히 가던 해를 곧 보내줘야 한다는 쓸쓸함에, 갈수록 밤이 깊어지는 감각에 헛헛한 기분은 피할 수 없다.

 

 

 해가 짱짱하게 구름에 걸려있을 땐 마냥 좋다, 이 날씨는 축복이야, 영원했으면 좋겠다, 하며 마음을 헤벌쭉 열어놓고 즐긴다. 해가 저물면 덩달아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건지, 이 마음은 또 무엇에 끌려가는 건지 열린 마음 구멍 사이로 휑하고 찬 기운이 들어선다. 밤이 깊어 무르익는 만큼 나의 마음도 고요하게 저물어갔으면 좋으련만, 쯧하고 혀를 찬다. 더는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다. 찬 바람에 몸과 마음이 식어가지 않게 돌아오는 이맘때면 작고 귀여운 대책들을 줄 세운다.



첫 번째, 일단 적당한 날을 잡는다. 여기서 '적당한'이란 적당히 여유 있고 한가한데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을 의지가 있고 내 체력이 그에 비해 썩 나쁘지 않은 적당히 완벽한 날을 말한다. 적당히 그런 날이면 구석 안에서 빛 볼 일 없던 잘 묵은 겨울 이불과 수면 양말, 수면 잠옷 뭉텅이를 꺼내 단박에 세탁기에 넣고 본다. 9kg 용량의 세탁기가 2번 꽉 차는 양이다.


 수면 착장만 하더라도 발랄한 토끼가 뛰어노는 하늘색 원피스 잠옷과 별이 빼곡한 위아래 투피스 세트, 스마일 바지 그리고 마트에서 3개 혹은 4개 1세트로 구입한 다른 듯 닮은 디자인의 수면 양말들이 한 보따리다. 지난 겨우내 잘 입다가 바람이 순해질 때쯤 빨아 넣어두었는데 오랫동안 옷장 속에서 기운 없이 누워만 있었을 테니 다시 한번 빨아주는 게 속 편하다. 임무 재개의 첫 신호 같은 의식이라 그 아이들도 그게 편할 거라는 나의 어림짐작으로 깨끗이 빨아 건조기로 뽀송하게 말리고 단정히 접어 눈에 띄는 곳에 넣어둔다. 도톰하고 묵직한 겨울 이불도 마찬가지다. 오래 쉬었으니 이제 일할 차례야, 하며 살살 달래 묵은 때를 벗기고 좋은 향을 입혀 곱게 단장한다.


 모든 일과를 끝내면 씻고 나와 대기하고 있는 잠옷 하나를 골라 입고 침구 속으로 쏙 들어간다. 꿈나라로 곧 입성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운 얼굴로 이불에 치대는 몸짓을 한다. 발에 조금이라도 시린 기운이 서리면 잠이 들지 않아서 수면 양말도 꼭 신어준다. 자다가 속박감을 느낄 때쯤이면 양발의 무의식이 알아서 벗겨줄 테니 문제 될 게 없다. 이 모두가 찬 기운을 막아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는 F/W 시즌 한정 꿀잠 수비대다. 잘 자는 것도 결국 장비빨이다. 주황색 가로등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 암막 커튼, 침대 주위에서 나는 편안한 향, 자려고 눈 감았을 때 어느 하나 걸리는 게 없는 마음 같은 아이템은 시즌과 상관없이 365일 사수해야 하는 구성이니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는 별개다.



두 번째,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오트라테, 프라푸치노, 탄산수 같은 마실 거리와 아이스크림, 빙수, 수박, 오이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찬 성질의 음식을 매일 게임 격파하듯 섭렵했던 날들은 뒤로 하고 따듯한 한 끼를 맞이한다.   


 모든 일정과 동작이 반박자 정도 늦춰지는 일요일 오후, 계획 없이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계획은 없지만 갈 곳은 정해져 있다. 살 게 있어서, 살 게 없어서, 심심해서, 심심하지 않아서, 사람 구경하고 싶어서, 혼자 있고 싶어서, 돈이 없어서, 돈 쓰는 재미를 느끼고 싶어서 등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찰떡인 나의 사랑 마트로 향한다. 환한 형광등 빛에 눈이 따가워 조금 빠른 걸음으로 문을 지났다. 초입에 보이는 냉장 식품 코너를 어슬렁 거리다 나란히 줄지어 누워있는 콩나물 봉지와 눈이 마주친다. 일요일 오후의 나만큼 느슨해 보이는 형상이다. 봉지 겉면에는 무농약, 씻어 나온 콩나물, 국산콩 100% 등 뽐내고 있는 문구가 각각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손이 가니까 하나 집어든다. 아무래도 제일 끌리는 국산콩 100% 카피의 봉지로다가. 걸음을 옮겨 완전 조리 식품 매대 앞에 선다. 무엇을 골라 집어야 흡족한 하루로 마감할 수 있을지 땀나게 뇌와 눈동자를 굴려 전체를 스캔한다. 탐스러운 빨간 옷을 입은 고등어 무조림 쪽으로 시선이 머물길래 장바구니에 추가했다.  


 집에 도착해 콩나물 봉지를 열고 채반에 담아 4번 물에 헹궈 씻고 불에 냄비물을 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콩나물 요리는 어차피 한 가지밖에 없었다. 김치를 잘게 송송 썰어 넣은 김치콩나물국.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 국을 좋아했다. 미역국, 된장국, 시래깃국 등의 다른 국은 생소한 식감, 거부감 느껴지는 색이라는 이유로 첫눈에 일찌감치 선을 그었는데 김치콩나물국만은 언제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좋음의 영역에 있었다(지금은 다른 국들도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김치가 들어가 어린이가 먹기에 살짝 매콤하고 아삭아삭한 콩나물 식감이 썩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콩나물 머리는 고운 노란빛에 동글동글 귀엽기까지 하니 어린 눈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으리라. 첫 호기심은 좋음이 되고 좋음은 실행으로 이어진다. 다 큰 손으로 만들어 본 콩나물국은 라면 끓이는 것만큼 간단했다. 김치통을 꺼내 김치 한 줌 썰어 넣고 그날 취향에 따라 가감한 김치 국물을 넣고 액젓 한 스푼만 넣으면 간하기가 끝난다. 콩나물을 넣고 센 불에 5분 팔팔 끓이다 중불로 낮춰 10분 정도만 끓게 두면 완성이다. 고등어무조림을 세팅하고 밥을 데우고 한 김 식힌 국을 그릇에 담는다. 일주일 내내 전주비빔 삼각김밥의 단골로 지내다가 소박하지만 제대로 갖춰진 상차림을 보고 있자니 발밑에서부터 감격이 올라온다. 국부터 한 술 뜨는데 으어-하고 밖에 내놓기 부끄러운 아저씨 자아가 나온다. 시렸던 속이 데워져 녹았다. 술 마시고 해장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평생 데면데면했던 술과의 관계에서 해장을 해야겠다 마음먹어볼 사건의 발단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술 좀 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이 더 벅차게 느껴졌을까. 다른 건 몰라도 문득 그건 좀 부러워진다.


 시릴 땐 콩나물국만 한 게 없어 역시, 속으로 열두 번 정도 되뇌며 몸을 데웠다. 이 프레임 안에서 고등어무조림은 가진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조연 역할일 뿐이다. 영화 리틀포레스트 한국판을 보면 김태리 배우가 지친 서울살이를 뒤로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처음 만들어 먹는 첫끼가 쌀밥에 김 폴폴 나는 배춧국이다. 눈이 소복이 쌓인 추운 배경 안에서 허기진 몸과 마음을 채우겠다는 일념으로 땅 속 숨어있는 배추를 억척스럽게도 뽑아 된장을 풀고 국을 끓여 먹는다. 영화가 개봉했던 그날도 싸늘한 바람이 외투 안으로 삐집고 스며드는 날이었다. 고향에서의 첫 번째 요리 과정을 큰 스크린으로 맛보고 있자니 어두운 상영관 안의 몸과 마음도 서서히 덥혀졌다. 이튿날 눈을 치우며 만드는 두 번째 요리도 떨어진 체온을 높여주는 아끼는 장면중 하나다(영화를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계절별 요리를 암기한 수준이다.) 나는 유년 시절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는 친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만 했던 서울 토박이고 지금 내 앞에 놓인 건 배춧국도 아니지만 극 중 인물이 가졌던 온기를 서울 어딘가의 네모난 공간에서 느끼고 있다.

 

 누가 예전에 소울푸드를 물어봐올 때면 뭐가 있을까? 아이스크림? 빵? 떡볶이? 답을 골몰했다. 주식처럼 옆에 끼고 살 만큼 좋아하긴 하지만 영혼을 채워주는 음식이라기엔 가슴 안쪽 어딘가에 걸려 말이 잘 꺼내지지 않았는데 이제 속시원히 내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난 김치콩나물국!"



세 번째, 밤을 정면 돌파하는 밤 산책을 나선다. 발에 꼭 맞는 편한 운동화를 신고 콩나물국의 뜨끈한 맥이 느껴지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코를 뚫는 진한 나무 냄새가 머무는 곳으로 간다. 난 밤이 좋아- 조금 춥지만 아주 춥진 않은 이 밤이 좋아- 이 밤을 응원할 줄 아는 나도 좋아- 맥락도 두서도 없는 말들을 빵쪼가리 흘리듯 흔적을 남기며 길을 걷는다. 밤을 무서워하지 않고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주문 같은 말들이다. 흐르는 밤과 그 안에 몸을 실은 나를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언어와 움직임이다. 20분 포용의 걸음을 하고 돌아오면 차분하고 안정된 기분을 밤이 사라질 때까지 가져갈 수 있다.



 시간은 내 의사도 묻지 않고 잘도 착실하게 흐른다. 섭섭하다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토라진 얼굴로만 있지 말고 건강하게 무장한 마음으로 다가올 메마를 계절을 준비한다. 금방 지쳐 허물지 않도록. 오래가서 곧 따듯한 기운이 몰려오는 장면도 무탈히 맞이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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