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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가다 뛰는 도련님 Nov 02. 2022

#18 세 번째 모험 인테리어

세상 구하겠다는 내 꿈은 몇 점인가

이제 가야 할 길이 분명해졌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누구나 바라는 일을 이루는 것, 내가 성공한다면 다들 나를 따라 하겠지? 나는 도전과 열정,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다. 나의 성공은 또 다른 나를 만들기도 할 것이다. 청년들이 나를 따라 꿈을 꾸어 노동 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자연스레 취업 문제가 해결된다. 더 이상 쓸데없이 도서관에 죽치고 않아있는 청년들이 없어진다. 모두가 대기업만 바라보는 세상의 마침표가 찍힌다. 지나친 경쟁이 줄어든다. 대신 그 자리를 노동을 통해 삶을 배우고 타인을 이해하는 배려가 채워진다. 직업, 신분, 출신은 중요치 않다.



너무 대단해서 반할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전히 면접에선 세상 구하겠다는 말만 꺼내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인간이란 본래 경험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건데 세상 구해본 경험이 있을 리 만무하다. 세상 구하기는커녕 도전다운 도전조차 해봤을 리도 없다. 기업 홈페이지에는 죄다 인재상이 도전이라고만 말할 뿐, 진짜 도전을 원하는 기업은 없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찾아다녔다. 자격증이야말로 확실한 취업 수단일 테니 말이다. 내가 따고자 하는 자격증은 인테리어 분야이다. 훗날 세상 구한 후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싶었다.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성을 지을 거다. 사랑하는 사람과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을 따 먹는다. 집 옆에는 카페를 짓는다. 너무나도 완벽한 은퇴 계획이다.



하지만 원조차 나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학원 면접에서도 불합격하였다. 이게 말이 되나? 너무 황당해서 면접 평가지 공개를 요청하기도 했다. 내가 돈을 받겠다는 기업에 지원한 것도 아니고 내가 돈을 주겠다는 학원에 떨어졌다는 게 진짜 현실인 건가? 세상 구하겠다는 게 그 정도로 이상한 거였나? 아니면 내가 면접을 그 정도로 못 봤나? 천천히 면접 때 질문을 상기해 본다. 분명 면접관은 교우관계에 관하여 물어봤고 나는 고등학교 때 반장을 한 일화를 말해줬다.



"나를 반장으로 뽑아주면 공부해주시겠다."



그때 내 공약이고 정확히 34명 정원 중 19표를 받아 반장에 당선되었다. 이 정도면 교우관계에 문제가 없는 놈 아닐까? 도대체 왜 불합격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면접 평가지 줄 때까지 매일 아침마다 전화했다. 아마 나 같은 독종은 처음 봤을 거다. 매일 아침마다 똑같은 톤으로 똑같은 말로 전화했다. 결국 평가지 공개는 불가라던 학원 측에서 내게 평가지를 보내왔다.


-훈련 의욕 및 직종에 대한 이해도 5/15

-훈련 수강능력 및 수료 가능성 4/15

-직종에 대한 적성 및 선호도 5/15

-취업의지 및 취업 시급성 8/15


내가 그렇게 형편없어 보였나? 면접 때 해맑게 웃으면서 세상 구하겠다고 말한 거 때문에 그런가? 미친놈이라 생각했나? 미친놈은 맞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수료 가능성이 15점 만점에 4점이라니...



이거 기준이 뭐지?



결국 집에서 30분 거리인 강남역 부근 학원가에 다니지 못하고 족히 1시간 40분은 가야 하는 신촌역 부근 다른 학원가까지 면접을 보러 가야 했다. 이번에는 세상 구하겠다는 이야기는 입도 뻥끗 안 했다.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다.



학원 면접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나?



덕분에 학원을 다니던 6달 동안 신촌역을 오가며 매일 길바닥에 3시간 이상씩 쏟아부어야 했다. 한강을 건널 때마다 울화통이 터져 나왔다. 안 그래도 당시 내가 좋아하던 게임의 클래식 버전이 나오며 게임 삼매경에 빠졌던 터인데 길바닥에 매일 3시간을 부어야 하는 현실에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성실히(?) 학원 다닌 덕분에 수료도 하고 자격증도 한방에 땄다.



인테리어 회사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인테리어 회사에 찾아가 카페 때와 마찬가지로 면접을 기다리며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어차피 합격하게 되면 일할 곳인데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탕비실에 있는 커피머신에서 커피도 뽑아 먹어 본다. 꼴에 카페에서 일해 본거 티 내겠다고 커피머신을 해체하여 청소 상태도 점검해 본다.



위생상태는 불합격이다.



내가 자꾸만 기웃거리니 관리부 직원이 나를 자리에 앉힌다. 그런데 앉았다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앉은자리에 손이 닿을 만한 책자는 모조리 빼다 읽어본다. 이윽고 면접관이 늦어서 미안하다며 직원들이 밥을 먹던 테이블에서 면접이 시작된다. 어떤 질문을 할까...? 다행히 면접관은 내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근로 조건과 지방 출장이 가능한지 정도만 묻는다. 무조건 나는 "네, 네"만 한다. 면접 내용이 너무 싱거워 면접이 끝날 즈음 면접관에게 강렬하게 한 마디 한다.  



"아마 저같이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놈은 못 찾으실 겁니다."



집에 와서 마지막 나의 발언을 두고두고 곱씹는다. 괜한 말을 한 걸까? 마지막까지 "네, 네"만 했어야 했나? 또다시 후회가 밀려온다. 이놈의 성격은 불치병이다. 하루, 이틀... 전화가 왔다. 나는 합격했다. 취업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힘든 거였나? 날 불합격 시킨 기업들 전부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그렇게 2021년 7월 27일, 세 번째 모험인 인테리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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