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측은 언제나 규정이라며 갖가지 지시를 한다. 그중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이 용접 작업 시 바닥에 불이 붙지 않도록 불티 방지포를 깔아 달라는 거다. 불티 방지 포란 용접 시 발생하는 불똥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게 바닥에 깔아 두는 섬유를 말한다. 공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듣기에는 화재를 예방하는 조치라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용접은 화재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 바닥은 불이 붙을 리 없는 콘크리트 바닥이다.
우리는 중학교 때 불의 3요소라는 걸 배운다. 불이 붙기 위한 3가지 조건을 말한다. 연료, 열, 산소가 바로 그것이다. 일단 공사 현장에서 '열'과 '산소'라는 조건은 충족한다. 용접이라는 작업 자체가 고열을 발생시켜 금속을 접합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 번째 요소인 '연료'이다. 앞서 말했듯이 공사장 바닥은 온통 콘크리트이다. 불에 탈만 한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은 끊임없이 바닥에 불이 붙지 않도록 불티 방지포를 깔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규정'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콘크리트 바닥에 불이 붙지 않는 건 상식인데 어째서 비상식적인 행동을 요구하는지 물어봤다. 그때마다 백화점 측 안전요원들은 그것이 규정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규정? 그들이 말하는 규정이 상식에 어긋남을 설명해 봤다. 콘크리트에는 불이 붙지 않는다는 상식을 말이다. 그러자 자기들도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이라며 어쩔 수 없음을 호소했다. 이 패턴은 전국의 어느 백화점이나 동일하다.
그래서 안전팀장이라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 물어봤다.
백화점은 언제나 규정을 말한다. 그렇다면 분명 규정집이 존재할 테니 그것을 보여달라 했다. 처음 나의 당돌한 요구에 안전 팀장은 기분이 상했는지 자기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공사를 못하게 할 수도 있다며 으릉장을 놨다. 안전규정이라는 게 백가지가 넘는데 그것들을 모두 지키고는 공사를 못한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다며 자신들이 편의를 봐주고 있기 때문에 공사를 할 수 있는 거라 답했다
한 마디로 봐주고 있으니 기라는 거였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얼마나 사람들을 괴롭혀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괴롭힐지 눈에 선하다. 나는 이 꼬락서니 못 본다. 규정집이라는 걸 보여줄 때까지 안전실 앞에 드러눕는다. 나는 나의 옳음에 자신 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규정을 더 잘 지키기 위해 보여달라고 했을 뿐이다. 나의 요구는 정당하다. 규정집이 존재한다면 보여주면 그만이다. 이건 마치 모든 회사가 가지고 있는 사내규정집과 같은 맥락이다. 타인에게 법이든 규정이든 뭐든 강제하고 싶으면 그만한 근거를 보여주면 되는 거다.
너, 사람 잘못 골랐어.
처음에는 그리도 당당하던 안전팀장도 나의 당돌함에 당황했는지 그런 규정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토했다. 아마도 나의 행동이 눈에 띄었던 게 거슬렸나 보다. 덩치는 산만한 놈이 사람들 돌아다니는 복도에 대자로 누워 자버리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통쾌했다. 두 번 다시 그런 말도 안 되는 규정을 요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 누구도 고치려 하지 않은 뿌리 깊은 악습을 끊어냈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뿌듯했다.
하지만 전부 나의 착각이었다.
여전히 작업자들은 콘크리트 바닥에 불이 붙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네...",라며 콘크리트 바닥에 불티방지포를 까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수없이 부딪혀 봤지만 소용없음을 아는 자들의 무기력한 자들의 대답.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 아무리 혼자 지랄발광을 떨어도 바뀌지 않는다.
백화점의 관심사는 서류에 첨부될 예쁜 사진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시멘트 바닥에 불티방지포를 깔라고 요구하는 까닭은 서류에 첨부될 예쁜 사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쁜 사진이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신에게 책임이 없음을 말할 수 있는 그런 사진이다. 그러니 황당하리만큼 안전해 보이는 사진을 연출해서 찍어야 한다. 너무 심하게 연출된 사진일수록 좋은 사진이다. 필요한 건 오로지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의 값싼 수고스러움과 자괴감뿐이다.
백화점에게 안전이란 사고가 날 경우 높으신 분들의 자리 보존을 위한 책임 회피용이다.
처음에는 공권력의 힘을 빌려 이 부당함을 고칠까도 생각해 보았다. 백화점의 과한 요구는 안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전에 대한 스트레스만 유발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안전에 해가 될 뿐이다. 하지만 생각만 해볼 뿐, 실행할 수는 없었다. '안전'을 주제로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안전은 과할수록 좋기 때문이다.
각종 산업 재해를 두고 이 나라 전 총리가 했던 발언이다. 안전은 과할수록 좋다!,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다. 공사를 사진으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공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이토록 폭력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과해도 좋음' 때문에 현장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콘크리트 바닥에 불이 붙지 않게끔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직접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심경은 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 나라가 말하는 안전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게 아니다.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가 있다. 동정심을 팔기 위해 가난한 국가의 불행을 파는 행위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국가의 빈곤을 도와주겠다며 어린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가 모금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겉으로는 빈곤에 허덕이는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아주 거룩한 취지이지만 정작 사진에 찍히는 자에 대한 존중은 없다.
자신들의 안위만 있을 뿐이다.
코로나 사태로 작업자들은 늘 PCR검사지를 들고 다녀야 했다. 어떤 백화점은 3일에 한 번씩 검사를 요청했다. 백화점에 드나드는 수많은 고객들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데 말이다. 안 그래도 일이 바쁘고 힘든데 작업자들은 그 PCR 검사를 받겠다고 허구한 날 시간을 내어 임시선별소에 줄을 서 코를 쑤셔야 했다. 어떤 백화점은 매일 간의 검사지 결과를 휴대폰으로 찍은 후 칼라 인쇄해서 제출하라고도 했다. 그런데 공사판에 칼라 인쇄기가 있을 리 없다. 매일 내가 근처 문구점에서 칼라로 인쇄를 해와야 한다.
갑질이란 게 그런 거다. 참을 수 없는 거벼움에 짓눌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