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하며 첫 번째로 날 당황시킨 건 기본적인 안전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는 것이다. 뉴스에서 보던 노가다 현장은 작업 시작전에 안전체조를 한다는 것인데 그런게 전혀 없다. 게다가 무대 제작을 위한 철근 구조물의 높이가 10m가 훌쩍 넘는데 추락 방지를 위한 그 어떠한 조치도 없다. 회사가 나에게 준 건 목장갑뿐, 안전모는 본적도 없다.
사고가 나면 나는 어찌 될까?
분명 구인공고 글에는 방송국 정직원이라고 쓰여있었지만 실상은 방송국 하청의 하청의 말단 직원이었다. 그마저도 근로계약서 작성조차 못했기에 정직원이라는 신분마저도 의심스러웠다. 그곳에서 8개월동안 일을 한 직원 역시 근로계약서 따윈 본적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나라는 놈은 무슨 수를 쓰든 근로계약서를 쓰고 싶었다. 당연하게도 회사는 순순히 해줄리 없으니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했다. 마침 나는 취업을 하게 되면 국가로부터 30만 원을 받는 취업 시스템에 참여 중이었다.
이를 근거로 부장에게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부장은 굉장히 난처해했다. 그도 그럴게 나의 요구는 법을 논하는 게 아니라 취업을 증명하여 30만 원 받겠다는 금전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장은 근로계약서 자체가 사측에 너무 불리하다는 입장만을 고수하며 계속해서 작성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면 그냥 내게 30만 원 달라고 하니 역정을 냈다.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한 내가 학교 취업센터장과 부장을 전화 연결시켜 담판을 보게 만들었다. 이 정도 했으면 계약서 작성이 될 줄 알았는데 끝끝내 계약서는 보지도 못했다.
참 다른의미로 대단하다.
일을 시작하며 두 번째로 나를 당황시킨 건 사람 귀한 줄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 그만두라는 식의 대우가 이어졌다. 안전체조라던지 안전교육 같은 건 사고만 안 나면 문제없으니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첫날 일을 시작하는 나에게 무얼 하라는 지시조차 없다. 그냥 투명인간이다. 현장에는 다른 한국인 직원도 있었는데 어쩌다 나를 부를 때도 내 이름이 아닌 "거기요" "저기요" 등 도저히 같은 회사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호칭으로 나를 불렀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싶어도 냉소적인 분위기 때문에 말조차 걸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놀란점은 노가다에도 복장 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일은 누가 뭐라해도 노가다라 불리우는 단순 반복 노동이다. 그러니 복장은 움직이기 편한 옷이 좋다. 하지만 첫 날 일을 마치고 택시를 기다리는 내게 8개월차라는 직원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부장님이 바지 보고 모라 안 해요? 내일부턴 다른 거 입으세요.”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내가 입은 등산복은 노가다꾼처럼 보이기 때문에 입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이 노가다인 만큼 활동하기 편한 옷인 등산복을 입은 건데 노가다꾼처럼 보이는 옷을 입으면 부장이 혼을 낸다는 것이다. 하는 일은 노가다지만 노가다 꾼처럼 보이지 않는 게 이곳의 룰인 것이다. 부장은 언제나 흰색 가디건과 구두를 신고 다닌다.
노가다에도 복장 규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