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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그라노 Dec 02. 2022

해고(구조조정)를 대하는 나의 자세

일단 욕 한번 하고 시작하는 나의 글로벌 기업 구조조정 경험담

끝없이 자라나는 세상의 악을 씻어내고 노아와 방주를 통해 새로운 조화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일어난 홍수.

"이제 내가 홍수를 일으켜 하늘 아래 숨 쉬는 모든 살덩이들을 없애버리겠다” 창세기 6장 17절의 내용이다. 40일 동안 비가 내리고 150일 동안 물이 차오르고 모든 것이 멸망했지만 방주를 통하여 인류와 생명들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하다.

 

뜬금없는 종교 이야기지만, 이번 글의 맥락과 비슷해서 한번 찾아봤다.


미국계 회사 3군데, 독일계 회사 2군데, 프랑스계 회사 1군데, 네덜란드 회사 하나까지 지금까지 총 7개의 회사에서 근무를 했고 하고 있다. 크리스천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라서 그런가 이놈의 기업들은 시도 때도 없이 구조조정이라는 홍수를 일으켜 많은 직원들을 쓸어버린다.


직접적으로 겪은 구조조정은 미국 회사에서의 2번. 내가 직접 손을 댔던 구조조정은 1번. 입사하자마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지나간 경우가 2번. 거의 85% 이상의 나의 직장생활은 구조조정을 겪은 셈이다.


대부분은 경우에는 1) 리더 또는 상급 임원진이 바뀌는 경우 2) 비즈니스가 망가진 경우 3) 정치나 안력 다툼에서 한 팀이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자세히 살펴보면,


1) 리더 또는 상급 인원진이 갈아치워 지는 경우: 이 경우에는 모든 절차가 매우 조용히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급 임원이나 리더의 경우에는 정치에 능하고 적당기간에 걸친 피아식별 이후에 명분을 만들어 조직이 서서히 One by One으로 갈아지는 경우.


2) 비즈니스가 망가진 경우: 파이낸스와 HR 위주로 살생부가 만들어지고 몇몇 빅마우스 직원들을 통해 루머가 퍼진다. 인사팀은 회식이나 개인적인 자리를 웬만하면 가지지 않았던 것 같고 공식적인 리스트 및 회사의 Townhall 같은 공식석상에서 리더가 발표 후,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퇴직대상자 위주로 개별 면담 회의가 잡힌다. 일정기간 사무실 분위기가 싸~ 하다. 당일에는 해고 관련 세브런스(위로금) 패키지로 언성을 높이거나, 변호사를 선임하며 입을 꾹 닫아버리거나, 가벼운 난동이 일어나기도 했던 것 같다.


3) 정치적 안력 다툼으로 인한 경우: 이 경우에는 양 팀이 날을 세우고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이며 쓸데없는 에너지를 어마어마하게 소비한다. 이때 각 팀의 정보는 무기화되며, 잘못 흘러나간 정보는 바로 비수가 되어 우리 팀 및 팀 리더의 등에 꽂히게 된다. 조금 더 라인을 잘 탄 리더의 재량에 따라 (1) 번의 경우로 진행되는 경우와 (2) 번이 일어날 때 1 순위로 팀 전체가 공중분해되는 경우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형태의 구조조정이 제일 피곤하고 힘들었 던 것 같다. (이긴 팀은 웃고, 지는 팀은 운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정치적인 어젠다로 똘똘 뭉친 “이긴” 팀은 나중에 내부 분열로 흩어지긴 했다.)


1,2 그리고 3번 모두 당사자들은 피를 말리는 일뿐만 아니라 일개 회사원으로 그 크고 작은 홍수를 피해 노아의 방주로 올라타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급기야 나는 배를 잘못 탄 적도 있다 ㅋㅋ) 각 국가마다 다르지만,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와 그에 대한 증거 자료들 (이메일, 노트북 등등)이 있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적절한 대응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회사에서 변호사에 대한 비용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국가별로 업종별로 조금씩 다를 것 같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변호사 선임이 가능하고, 노트북과 회사의 물품을 판결이나 합의가 나기 전까지 회사에 반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혹시나 이런 일이 있다면 변호사와 상의를 해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네덜란드에서는 아직 직접 구조조정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는 배가 아닙니다. 방주는 떠다니는 상자일 뿐 동력이 있는 배가 아닙니다. 방주의 주인은 여전히 신일뿐. 신의 결정에 마지막 남은 방주의 생사도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이라는 홍수에서 새로운 직무 또는 조직이라는 방주를 통해 살아남아도 나의 커리어라이프가 보장되는 게 아니지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직장인으로서 구조조정을 겪으며 살아남는 방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없다시피 하네요. 다만, 조금 더 가능한 기회들을 미리 찾아보고 안전장치를 최대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 직장인의 삶인가 봅니다. 그리고 중립적일 것. 정치에 휘둘리지 않을 것. 이런 것들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이 정립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못그랬거든요 ^^;


 구조조정의 급물살을 맞고 난 후, 괜히 미안하고 나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놓일까 걱정했던 내 가족이 큰 힘이 되어주고 곁에 있어주었던 것이 고마웠어요. 비굴해지고 뭔가 쓸모없어진 것 같던 그날 밤, 돌아간 집에서 아무 말 없이 "괜찮아! 힘내!"라고 해준 아내와 3살 딸아이로부터 받은 감동의 "홍수"는 잊히지 않네요.


다음 글은 글로벌 대륙간, 회사 간의 이직 경험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


(Header image source from: https://blended.law/nieuws/reorganization-in-the-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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