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든 햇살 Oct 17. 2023

헝가리안 빵집

평범과 비범


   뉴욕에 살던 딸을 방문했던 때였다. 브로드웨이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헝가리안 빵집에 들렀다. 땡그랑. 벨 소리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빵 몇 개를 집으며 딸이 말했다. 엄마, 여기 와서 글을 쓰면 베스트셀러를 쓴대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귀가 솔깃해져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벽마다 커다란 책 포스터가 액자 안에 모셔져 있다. 그 외에 뭔가 있겠지. 작가들이 이끌린 이 가게만의 비범함.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없었다. 시골 마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작고 우중충한 가게였다. 낡은 테이블이 대여섯 개 정도 놓여있고 앉아 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정장에 넥타이를 맨 뉴요커들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브로드웨이에서 이렇게 인테리어에 신경 쓰지 않은 무심한 빵집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닐 듯했다. 지극히 평범한 그곳이 작가들의 골방인 셈이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액자 아래 앉아있었다. 고개를 들면 자신의 꿈이 보이는 자리다. 꾀죄죄한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이야기에 꽤 집중한 듯 손은 빠르고 눈은 퀭하다. 쓰려는 욕구로 불타는 눈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지친 눈이다. 

   언제부터 그는 거기 앉아 있었던 걸까. 사람들은 이 가게에서 빵을 사서 집으로 가고 자리에 앉아 빵을 먹는 일은 많지 않은 모양이다. 덕분에 가난한 작가들이 간단히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나 보다. 눈길을 끌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장소가 글을 쓰는 이들에겐 성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좁은 골방에서 글을 쓰던 사람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경치가 빼어나고 한적한 곳에 작업실을 마련한다. 경치에 마음을 빼앗긴 것인지 그 뒤론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작가를 만나면 헝가리안 빵집으로 가라고 말해줘야겠다. 화장을 지우고 넥타이를 풀고 편안한 옷을 입는다면 더 좋겠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가 허름한 옷을 걸친 사람을 맞아주는 곳. 평범이 창작 의지를 솟구치게 하는 곳. 그곳에서 알게 된 것은 비범을 꿈꾸는 사람들을 돕는 건 결국 평범이라는 것.

   평범한 사람들은 비범을 꿈꾼다. 막상 비범에 이른 이들도 결국 평범한 행복을 구할 때가 온다지만, 인생에 한 번쯤은 비범한 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그녀는 부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