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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의 노트 Oct 12. 2022

[도쿄 #2] 바닷마을 다이어리,슬램덩크의 그 곳

가마쿠라, 에노시마로 가자


오늘도 아침이 밝았다.



어제 도쿄 근교 가와구치코에서 후지산을 보고 돌아온 여독이 아직 남아있지만

오늘 역시 도쿄 시내가 아닌, 근교로 나가야 하는 날.

부지런히 준비를 한다.



오늘 갈 곳은 가마쿠라, 에노시마.



나이가 30대 이상이라면, 어렸을 때 최소 한 번쯤은 보거나 들었을 법한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만화책이 마르고 닳도록 읽었으며

TV에서 방영하던 - 박상민 씨가 번역 주제가를 불렀던 - 슬램덩크 애니메이션까지 봤던 1人으로서,

옛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꼭 가야 할 일정.





시간이 없는 여행자에게 거한 아침은 사치.

오늘도 아침엔 햄버거로 급히 때운다.











나는 여행 속에 있고

저들은 일상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엔 나의 일상이 더 여유롭겠지만,

이 여행이 끝난 후엔 나도 저들의 걸음 속도로 걷겠지.









가마쿠라로 가는 열차를 타며 오늘의 여행 시작.



한 철도원의 뒷모습.



일본은 전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아직도 곳곳에 보수적인 사고, 아날로그 정신이 담긴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전자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도 일일이 수기로 하거나

통일성과 안정감을 위해 아직도 취업, 입학식 등의 행사에 검은 정장을 요구하는 곳이 많은 점 등등.

반면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예를 들어 100엔짜리 엽서 한 장 포장하는 일 등)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고.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이웃나라라고 하지만

이렇게 문화, 성향, 사고방식 등 서로 다른 점도 참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이 더 즐거운 것이겠지.











오와 열을 잘 맞추고 있는 택시들.














"아저씨, 사진 그만 찍고 얼른 타세요"







가마쿠라 / 에노시마 여행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노면 열차, 에노덴 때문.







가나가와현의 후지사와 역~가마쿠라 역을 잇는 이 노면전차는,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가기도 하지만

바다가 바로 옆에 보이는 철도를 달리기도 한다.








맨 앞 칸에 타면, 이렇게 기관사가 에노덴을 운전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앞 유리 너머로 보이는 동네 뷰는 덤.



















맞은편의 에노덴과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서로 손을 들어 인사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버스 기사님들이 서로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참 보기 좋은 모습이다.













바다가 보인다!!











노면 열차에서 바라보는 바다라니.

저 바이크에 앉아 있는 여행자도 드넓은 에노시마 바다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겠지?


에노덴은 1일권으로 끊으면

노선 내 있는 역에 마음대로 내려서 구경했다가, 다시 타고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마음 내키는 역에 내려서 이곳저곳 다니며 구경을 한다.










외로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도 담아보고,







일본에서만 찍게 되는 자전거도 찍어보고,


















거리 스냅도 담아본다.






걷다가 커피 한잔하고 싶어서 카페를 찾는데,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곳에 coffee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있고,

그 옆으로 들어가 보니

봉고차 트렁크 안에 작은 카페가 있는 게 아닌가.





메뉴 종류도 생각보다 많더라.




케냐 원두로 커피를 한잔 시키니,




이렇게 봉고 카페 안에 계신 어르신 사장님께서

본인이 직접 담아온 듯한 커피와 얼음을 컵에 담아주는 게 아닌가.


이 커피가 맛이 있을지 없을지

그러한 사실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작고 독특한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사서 마시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다.








테이블은

페인트가 담겨있었을 것 같이 보이는 드럼통 위에

맞춤 제작을 한 듯한 원형 뚜껑으로 덮은 자리요,

인테리어는

나무 선반에 일본어가 가득 쓰여있는 잡지들을 꽂아놓은 책장뿐.


이런 운치 넘치는 카페 테이블이 또 어디에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에노덴을 타고 바닷가를 보러 간다.






4명의 자매들이 겪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나온 배경도 보고,








에노시마 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바다를 감상하는 연인의 모습도 담는다.











에노시마 맥주.

맥주병 그림에서부터 낭만이 흐르네.












파도는 드세게, 바람은 세차게 몰아치고 있으나

반려견과 함께라서 행복할 것 같아.











가마쿠라의 모습을 한 장으로 담아낸 사진.

늘 이 사진을 보며 그때의 그곳을 떠올리며 그리워했다.











가마쿠라 고코마에 역 (가마쿠라 고교 역).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오프닝에서

강백호와 채소연이 마주치는 기차역, 바로 그곳.







오프닝 캡처 / 출처 : Youtube



어린 시절에 내 혼을 빼앗았던

슬램덩크의 추억이 내 눈앞에 있다니!






기차 위로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

20년 전, 슬램덩크의 추억들도 마음속으로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12분에 한 대씩 오는 열차가 7~8대는 지나갈 때까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추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에노시마 전망대에 오를 계획이었으나

해는 나의 계획을 기다려 주지 않고 너무도 빠르게 서산으로 저물어 가고 있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를 급한 걸음으로 지나고 있었는데

눈앞이 너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은 이미 노을빛을 가득 머금고

너무도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망대에 오르겠다는 욕심은 이미 노을빛에 녹아버렸고

난 다리에서 내려가 해변가에 앉아서

신이 붓으로 그리고 있는 예술작품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신이 진정 하늘에 붓 칠을 하고 있는 걸까.














마음에 드는 컬러의 물감들을 모아 칠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낼 수 있을까.













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바닷바람,

갈매기 소리,

저 멀리 보이는 후지산,

붓으로 그린 듯한 구름,

여러 가지 빛깔의 찬란한 자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자연의 예술작품 속에서

가만히 앉아 전율을 느끼던

숨 막히던 그 시간, 그 느낌, 그 행복.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에노시마 그곳에서의 시간이

부디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던 순간이었다.









[도쿄 여행 #2] - 가마쿠라, 에노시마 (슬램덩크의 기억을 찾아서) 편 끝













매거진의 이전글 [2018 도쿄 #1] 도쿄타워와 후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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