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노트
창밖에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집안에 열린 창문을 찾아 하나하나 닫는,
비가 오면 자동으로 하게 되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한 뒤
다시 PC 앞에 앉아서 하던 일을 하는데
스피커에서 나오는 윤하의 '빗소리'라는 노래가
키보드를 치고 있는 내 손을 잠시 멈추게 했다.
언제부터 날씨에 이리도 무덤덤해졌을까.
예전에는,
비가 내리는 날엔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 하거나
자동차 선루프 커버만 오픈해서 차창 위로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하곤 했는데.
눈이 내리는 날엔
통유리로 된 예쁜 카페를 찾아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가까운 이들에게 메시지도 하나씩 보내곤 했는데.
언제부터 감정이란 녀석에게 날씨를 감상할 여유조차 주지 않은 것일까.
당연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내 감정의 온도가 낮아진 것은 사실이고
감성보단 이성을, 낭만보단 실리를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깐.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변화를 하나 더 발견하고선 하던 일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진 않아
투명 비닐우산 하나만 달랑 들고 집 앞으로 나간다.
목적지 없이 그냥 걸으려고.
근데 비 오는 모습이 왜 이리 예쁘지.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예쁘다고 느껴본 것이
과연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다시 집으로 올라가 카메라를 챙겨 들고 다시 나온다.
그리고 하염없이 걷는다.
거리는 물기로 윤기가 흘렀고
나무의 녹음은 더 차분한 빛을 내며 눈을 편안하게 해 준다.
작은 우산으로 인해 조금씩 젖는 어깨는
눅눅함보다는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고
슬리퍼 안으로 스며든 빗물은 챱챱 경쾌한 소리를 내고 있다.
세월에 흐름에 조금씩 날아가 희미해져 버린 줄만 알았던 감성이
빗방울에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처럼
굳어있었던 마음 위로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소한 주변의 모든 것들에 무덤덤해진 것이
나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내 나이는 아직 이런 것들에 충분히 감응을 보이는 감정을 가졌는데
단지 좁은 각도의 시야로 앞만 보고 뛰어가는 내 평소의 딱딱한 생활패턴이
감정의 방문을 닫아버리고 있다는 것을.
조금만 시야를 넓히고 걸음을 천천히 하면 자연스레 열리는 이 감정의 방을 두고선
나이가 들어가는 자연의 섭리 탓이나 하다니.
내 탓이거늘.
집에 가면 이 젖은 옷들 또 빨아야겠네. 세탁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도 좋다.
옷뿐만 아니라 마음도 오래간만에 한껏 적신 것 같아서
뭔가 개운한 기분이다.
이렇게 감정도 한 번씩 적시면서 살자고.
글을 쓰는 지금도 흘러나오고 있는 이 촉촉한 멜로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