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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rrick Kim RN Aug 01. 2023

나를 간호할수 있는 간호사들

간호사로 2달, 미국에서 근무하며 느끼는 근무환경에 대한 인상

처음 간호사로 첫발을 내디딘 2016년, 모든 게 낯설고 매일 몇 번이나 혼나는지가 개인적인 관심사의 전부였던 그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었다. "너 손이 너무 느리다. 좀 빨리 해볼래?"


성격도 급하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그루브는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던 나였지만, 병원은 그중에서도 성격 급하고 불같은 사람들만 살아남은 곳인지라, 여태껏 7년 넘게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요구사항에 반응하고 손을 맞춰가며 간호팀의 일원으로 맞춰나가며 여유 있게 일을 해본 경험은 없었다. 일단 출근하면 병원문을 나오는 순간까지 단 1분도 쉬는 건 용납되지 못하는 환경에 너무나 익숙해져, 잠시나마 쉴 시간이 있는 날은 퇴근길에 복권이라도 한 장씩 사곤 했다. 그렇게 무수히 혼나고 말과 행동에 상처받기를 반복하니 어느덧 정확도와 속도가 갖춰지는 순간이 오긴 했으나 그럴 땐 어김없이 더 많은 업무가 부여되었고 그렇게 1년 차부터 7년 차까지 나는 "맷집이 강하고 빠르고 정확한 업무의 10시간"이 미덕인 환경에서 익숙해졌다.


그러다 어느덧 미국에 이민 와서 일을 시작한 지 2개월, 내가 미국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Slow down"


내가 다니는 병원도 꽤나 바쁜 축에 드는 곳인지라, 미국현지 친구들 사이에선 기피하는 업무환경이었고, 그래서 출근 전부터 얼마나 바쁘길래, 쉴 틈 없이 일한다는 것일까 싶긴 했다. 그렇게 출근하고 트레이닝, 업무를 실제로 해보니, 제일 처음 놀란 것은 어느 누구도 본인 스스로의 페이스를 오버해서 근무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은 제시간 안에 다 끝낼 정도로 주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런 친구들 눈에는 내가 필요이상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 터, 근무할 때 몇 명이나 나한테 슬쩍 와서 "slow down"을 살짝 속삭이곤 했다. 이 친구들 눈에는 나 혼자서 활활 태워서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으니 내심 헛웃음도 나왔다.


바쁜 게 당연하고,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수준 미달의 대접을 받으며 버텼던 나의 신규생활. 하지만 신규는 속도와 정확도를 동시에 잡을 수 없기에 혼나면서 배우는 힘든 시간의 연속이고 연차가 쌓이면 내 몸이 따라주지 못해 30대에 접어들어 사직하는 내 동기들을 떠올리니 내심 쓴웃음이 지어졌다.


내가 일하는 미국의 병동에는 간호사로 30년 넘게 일하고 있는 동료가 4명이나 있다. 그 외에도 처음 간호사로 일을 시작하고 그만두지 않으며 계속 일하는 간호사가 거의 대부분인데, 이런 광경도 나에겐 처음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스스로는 내가 결코 좋은 간호사라고는 결코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간호사라서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의 뿌듯함과 자부심에 7년의 시간 동안 환자간호가 싫어서 떠나겠단 생각은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겠지만 "휴식과 나를 돌보는 행위"가 부도덕으로 치부되는 우리의 업무환경에서도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우리를 병원에 있게 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신체, 정신적인 건강이 더 이상 버텨주지 못해 나정도의 근무연차가 되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병원을 떠나는 동기가 대부분인데, 그렇기에 미국 간호사들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여유가 굉장히 부럽게 느껴졌다.


영어가 큰 산이긴 하지만 나를 돌보고 내가 하는 간호업무가 정확한지 더블체크를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미국의 업무환경에 굉장히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만일 내가 한국에서부터 이렇게 일을 했더라면 어쩌면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외로움, 가족과의 이별,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에 온몸을 던져가며 딱 하나 쥐고 있는 "간호사"라는 직업. 이들에게는 당연한 근무 중 커피 한잔, 잠깐 앉아서 쉬는 게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여겨지고 의사, 환자, 보호자로부터 끊임없이 무시당하던 나의 초창기 간호사 생활을 돌아보니 마음 한편이 쓰려오기도 했다. 실제로 나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 간호사 선생님도 "간호사를 하고 싶어서 미국으로 왔다"라고 말하시곤 하셨는데, 미국에서 2달을 근무하다 보니 유달리 그 말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2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의 환자들은 모두 "RN (Registed Nurse)"라는 명찰 하나만으로도 나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의사들도 나의 간호행위에 대해 관심가지며 어느 누구 하나 내 의견을 무시한 적 없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분위기에 나를 간호하며 타인을 간호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나는 가족과 헤어지고 타국에 이민자로 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간호사는 사명감으로 일하지만, 봉사자가 아니라 전문 직업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면허를 가지고 책임을 지며 일한다. 세상 그 어떤 직업이라도 책임과 의무만 가득하고 권리는 빈약하고 무시당하기 일쑤라면 아무리 대단한 사명감을 가져도 대부분 오래 버틸 재간이 없다. 미국은 그런 당연한 이치를 병원이라고, "너희는 환자를 위해서 일하는데 그 정도는 받아들여야 된다"라고 무시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인 존중이 간호사들로 하여금 자부심과 책임감, 환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할수 있게 하는듯 하다. 사람 간의 관계는 늘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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