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기엔 원만하다고 느꼈을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편갈라 싸우길 좋아하는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내편아닌 사람일 터. 그렇게 적도 없고 동지도 없었던 나의 7년간의 간호사 생활은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던 올해의 봄이었다. 돌이켜보면 참 귀중하다고 생각했던 후배와 동료, 선배와의 관계도 있었고, 내 진심과 헌신이 깡그리 무시당해 남보다 못하게 된 관계도 있었지만, 어찌되었건 나는 떠나야 될 날이 가까워 질수록 이 모든 관계를 잘 갈무리 하고 먼곳으로 가야 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직장. 참 감사하게도 그게 나에겐 한국에서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내어준 것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동료와 상사들은 너무도 따뜻하게 나의 길을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여태껏 만난 선배와 후배, 동료들, 친구들 중 몇몇은 어렵게 본인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나와 술 한잔 같이하며 미국에서의 삶을 응원해 주었다. 이쯤되니 비록 실패한 관계도 많았고, 그 상처로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지 꽤나 됐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고도 애써 눈감고 살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다시 못 보는 게 아쉬워 연락했지만 거절 아닌 거절을 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나만 몰랐을뿐 애초부터 상대가 생각한 관계는 딱 거기까지 였을터. 그래도 생각보다 내 주변에 감사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었구나 싶어 미국에 편안한 마음으로 올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내가 먼곳으로 이민을 떠난다는 건 곧 그들에게는 이제 더이상 쓸모가 없는 정도에 가까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할 터. 몇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보니 내 주변엔 쓸모없으면 관계를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의 앞날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민은 아주 간접적으로나마 상대가 날 과연 어떤관계로 생각하는지 알수 있게 해준 좋은 계기가 되었다. 먼길 마디않고 달려와서 바쁜와중에 술한잔 해준 고마운 친구.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다 날 우습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절절매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사람간의 관계가 꼭 공을 들인 만큼 정비례 하지 않는다는게 참 냉정하게 느껴졌던 한달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나는 마음을 전해준 사람들에게 떳떳한가 물어보니 그것도 쉬이 대답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때를 함께한 동기들은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며 물었지만, 시간이 지나 나도 그 연차가 되고보니 알게 모르게 따끔하게 배웠던 결이 남아 내 밑천이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고 덤덤히 답해주었다. 고마운 것도 많았지만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었기에 차마 고마웠었다 말하지 못하고 있었던 짐이 한순간에 내려놓아짐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가 되기로 했다. 이렇게 오래토록 연락할 친구가 한명 더 남게 되었다.
이민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민을 온다는 사실이 나한테 준 선물은 분명하다. 그 외로움을 이겨낼수 있게 나에게 오래토록 남아있을 친구들을 분명히 해 준것. 그래서 지금의 외로움이 그다지 기약없고 갑갑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