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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와 기술 지식의 이해

by 권석민

연구 개발(R&D)과 그것을 통해 창출되는 기술 지식은 현대 사회 발전의 핵심 동력이지만, 동시에 독특하고 복합적인 특성을 지녀 단순한 시장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일반적인 상품이나 서비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들은 민간 부문의 자발적 투자를 위축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공공 부문의 개입과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우리는 R&D와 기술 지식이 지닌 네 가지 주요 특성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며, 혁신의 본질과 그 지원 방안에 대한 이해 하고자 한다.


1. 지식의 공공재적 성격: 무임승차와 과소 투자의 함정

기술 지식은 '공공재'와 매우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공공재는 두 가지 특징, 즉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가진다. '비경합성'은 한 사람이 지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 지식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등대의 불빛은 모두가 동시에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과 같다. '비배제성'의 특성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지식의 혜택을 누리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치찌개 비법을 개발해도 옆집에서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 하는 것을 막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기술 지식은 '무임승차'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 힘들게 개발해 놓은 기술을 다른 기업이 모방하거나 역설계하여 아무런 개발 비용 없이 이득만 취하는 상황이 빈번히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기술을 개발한 주체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유인, 즉 '인센티브'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순수하게 시장 기능에만 의존할 경우 기업들은 서로 남이 기술을 개발하기를 기다리거나 투자를 주저하게 되어, 사회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R&D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과소 투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매년 정부가 수십조 원의 R&D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과소 투자 문제를 해결하고 지식 확산의 긍정적인 효과(스필오버)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2020년에는 R&D 예산이 24조 원을 넘기도 했다. 물론 정부 지원의 효율성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민간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2. 높은 불확실성: 혁신의 깔때기와 이리듐 프로젝트의 교훈

R&D 과정에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것은 바로 '높은 불확실성'이다. 이 불확실성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술적 불확실성'으로, 과연 이 기술이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둘째는 '시장 불확실성'으로, 어찌어찌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도 과연 소비자들이 이를 구매할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우리는 흔히 '혁신의 깔때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상업화에 성공하는 아이디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심지어 3천 개의 아이디어 중에 성공하는 것은 하나 정도라는 이야기도 있다.


모토로라의 거대한 '이리듐 프로젝트'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1980년대 말, 모토로라는 전 세계 어디서든 통화가 가능한 위성 전화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다. 당초 계획은 원소 기호 77번 이리듐처럼 위성 77개를 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66개를 쏘아 올렸다.


기술적으로는 저궤도에 위성을 쫙 깔아 통신 음영 지역을 없애려는 엄청난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돈으로 약 5조 원에 가까운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음에도, 시장에서는 외면받았던 것이다. 기술은 구현되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고 때마침 휴대폰이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수요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이처럼 R&D의 높은 불확실성은 민간 기업들이 선뜻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정부는 R&D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개발된 기술의 '초기 구매자'가 되어줌으로써 기술 위험을 낮추고 초기 시장을 형성하는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3. 수익률 문제: 사적 이익과 사회적 편익의 괴리

R&D 투자의 세 번째 중요한 특성은 '수익률 문제'이다. 이는 R&D 투자를 통해 기술을 개발한 주체, 즉 기업이 얻는 이익(사적 수익률)과 그 기술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서 얻게 되는 이익(사회적 수익률)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수익률이 사적 수익률보다 훨씬 크다. 앞에서 언급한 '스필오버 효과' 때문인데, 기술은 한번 개발되면 여러 곳에 쓰이며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후생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사적 수익률이 약 11.8% 일 때 사회적 수익률은 18.7%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당한 차이는 기업의 투자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기업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이익 기준, 즉 '문턱 수익률'을 넘지 못하면 투자를 주저하게 된다. 비록 사회 전체적으로는 큰 이득을 가져다줄 기술이라 할지라도, 기업에게 돌아가는 사적 이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강력한 근거가 된다. 당장은 기업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적더라도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에 큰 도움이 될 만한 기술들, 예를 들어 아주 기초적인 과학 연구나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에 있는 신기술 분야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거 인터넷 기술의 발전이나 오늘날 인공지능 기반 기술의 개발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4. 확산 과정의 어려움: 시간 지연과 '캐즘'의 함정

마지막 네 번째 특징은 혁신 기술의 '확산 과정에 따르는 어려움'이다. 아무리 대단한 혁신 제품이라 할지라도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모두가 즉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처음에는 대다수 소비자들이 관망하며 지켜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혁신 기술의 확산은 'S자형 커브'를 그리는 경향이 있다. 소수의 혁신가나 얼리 어답터들이 먼저 기술을 수용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다수에게 퍼져 나가는 형태이다. 라디오, PC, 인터넷 같은 기술 확산 사례들이 모두 이러한 S자형 커브를 따랐다. 초기 단계에서는 소비자들이 '이게 과연 괜찮은 건가?', '나에게 꼭 필요한가?' 하는 '두려움, 불확실성, 의심(FUD: Fear, Uncertainty, Doubt)' 때문에 선뜻 기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러다가 사용 경험이 쌓이면서 '써보니 괜찮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확산되고, 동시에 생산기술이 발전하면서 가격이 점차 내려가기 시작하면, 비로소 초기 다수 수용자나 후기 다수 수용자, 즉 대중에게 확산되기 시작한다. 공정 혁신을 통한 가격 하락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이 확산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특히 얼리 어답터에서 초기 다수 수용자로 넘어가는 단계가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를 '캐즘(Chasm)', 즉 '깊은 골짜기'라고 부른다. 실제로 많은 유망한 기술들이 이 캐즘을 넘지 못하고 사라지곤 한다. 기술 자체의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 분위기, 제도, 규제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비기술적 요인들도 확산 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5. 혁신 지원을 위한 복합적 접근

지금까지 우리는 R&D와 기술 지식의 네 가지 주요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이를 종합해 보면, 기술 지식은 단순한 상품과는 달리 공공재적 성격 때문에 민간 투자가 위축될 수 있고,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으며, 투자 이익이 개발자보다는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는 경향이 크고, 설령 성공한다 해도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리듐 프로젝트 사례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듯이, 혁신은 매우 매력적이지만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이러한 복합적인 특징들을 모두 고려해야만 기술 혁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연구 제안을 접할 때, 오늘 논의한 이러한 점들을 눈여겨보고 '이처럼 실패 가능성도 높고 이익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는데, 과연 우리 사회는 이런 혁신을 어떻게 더 잘 지원하고 키워 나가야 할까?'라는 고민을 함께 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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