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취업 일기 3
오래도록 기억되는 중소기업 대표가 있다.
오래전에, 처음 들어보는, OO기전이란 중소기업으로부터 졸업생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른 학교 출신 사원들은 많이 있는데, 이번에는 우리 학과 학생도 받아 보고 싶다고 했다. 요구조건은 성실한 학생으로 학점이 3.0 이상이면 된다고 했다. 학생을 추천하려면 먼저 회사를 잘 알아봐야 한다. 학생들의 눈높이에도 맞아야 한다. 회사를 잘 모를 때는 직접 방문해서 회사 상황을 살펴보는 게 좋다. 그 회사는 상시 직원이 90명 정도 되는 중소기업으로, 대형 선박에 들어가는 발전 설비를 설계 제작하는 회사였다.
회사 대표의 경영 철학은 남달라 보였다.
그 회사는 조그만 중소기업인데도 고급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연구인력은 회사 자체에서 시행하는 인력양성 프로그램에 의해 키워진 사람들이었다. 사원들 중에서 성실한 사람을 선발하고 대학원 학비를 지원했다. 그들에게 회사에서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게 하고,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급여는 일반 중소기업과 비슷했지만, 능력별로 급여를 확실하게 달리 지급했다. 기사 자격증 2차 시험에 응시하는 직원에게는 업무를 줄여주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주려 노력했다. 회사 대표와 상담하면서, 입사 자격 조건을 '성실한 학생'으로 제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공지를 했는데 선뜻 나서는 지원자가 없었다. 마감 날 학점이 2.8인 한 학생이 지원 의사를 밝혔다. 회사에서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마음 졸이며, 그 학생을 데리고 대표를 찾아갔다. 학생이 전공 면접을 보러 간 사이에, 대표는 학생의 이력서를 유심히 살펴봤다. 학생의 사회봉사 실적을 발견하고는 요즘 보기 드문 학생이라고 칭찬을 많이 했다. 학생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려 애쓰는 마음이, 다른 회사의 대표들과는 다르게, 많이 멋져 보였다. 전공 면접에 관계없이 한 달간 수련기간을 거쳐 정식 사원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학생에게 물었다.
“전공 면접은 잘했니?”
“대답을 못 했어요.”
“하나도?”
“그냥 열심히 하겠다고만 했어요.”
수련기간 한 달이 지나갈 때쯤에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학생이 적응을 하지 못해,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수가 없습니다.”
학생이 애처로웠지만, 대표의 결단력에 믿음이 갔다. 전화를 해준 것도 고마웠다. 학생의 전공 면접점수가 많이 부족했지만, 제자를 직접 데리고 온 교수의 체면을 봐서 한 달간 수련기간을 줘 보기로 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끔 그 회사 이야기를 해줬다.
그 후 1년이 지날 즈음에, 그 회사의 대표로부터 또 추천 부탁을 받았다. 이번에는 학점이 3.5 정도이고 기사 자격증이 있는 학생이 지원했다. 여느 때처럼 학생을 데리고 회사를 방문했고, 대표 면담을 하고 전공면접을 거쳤다. 그 학생은 즉시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그 후 제자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여, 대표에게 줄 골프공을 사들고 회사를 방문했다. 대표가 반갑게 맞이하며 제자가 너무 잘한다며 기대된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내가 내민 선물을 보더니 난감해했다.
“저는 이런 건 쓰지 않습니다.”
“?”
“저는 4피스 이상의 볼만 씁니다.”
“??”
“그냥 가져가세요.”
대표의 말이 놀랍다. 골프 실력이 프로급이라서 아무 공이나 쓰지 않는단다. 아무리 골프를 잘 치고 프로선수라도 그렇지. 손님이 고민 끝에 사 온 선물을 당사자 앞에서, 그것도 제자가 보는 데서, 필요 없다고 그냥 가져가라고, 민망하게 말을 막 하다니 실망이다. 당황스럽고 씁쓸했다. 하지만 이내 내 머릿속에서 야릇한 미소가 지어졌다.
'잘 되었다. 잠시 후면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할 거다. 나한테 빚진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내가 취업 부탁하면 언제나 다 들어줄 거다.'
다음 해 그리고 그 후로도 여러 번 학생을 데리고 대표를 면담했다. 그때마다 대표는 기쁘게 학생을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해 주었다. 취업한 제자들 중에는 2~3년 만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중소기업들은 직원을 뽑을 때 오래도록 성실하게 근무할 사람을 선택한다. 숙련된 직원들이 대기업으로 이직해 가면 업무 공백이 생기고 사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대표는 그런 것도 중소기업이 담당할 몫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그들을 잘 관리하여 이직해 간 대기업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고 했다.
대표의 경영방침에 믿음이 간다.
10년 후에는 더 크고 튼튼한 회사로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