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단한 삶 2
30년 전, 부산에 직장을 잡고 이사할 때, 아버지가 2천만 원을 마련해 주셨다.
당시 허름한 15평 아파트 전세금이 1천6백만 원이었다. 처음으로 분가하여 자립하게 되었는데 생활비가 의외로 많이 들었다. 나는 학교 일로 바빴고, 아내는 두 아이 키우느라 바빴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너, 왜 돈 안 갚니?”
“어떤 돈요?”
“이사 갈 때 준 돈 말이야.”
그냥 다 주는 걸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갚으라 하시니 안 갚을 수는 없다. 매월 월급으로 빠듯하게 생활해서 준비된 돈이 하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신용협동조합에서 1년에 갚는 조건으로 500만 원을 빌려 보내 드렸다.
일 년 후 200만 원짜리 중고차를 구입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시외로 드라이브 갈 생각을 하니 너무 뿌듯했다. 아버지께도 자랑스럽게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나머지는 언제 갚을래?”
“아버지...”
“다는 안 받을 거고 반만 갚아라.”
그래도 다 갚으라고 하지 않으시니 천만다행이다. 또다시 신협에서 500만 원을 빌려 보내 드렸다.
이제 다 끝났겠지.
1년에 500만 원을 갚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명절이나 제사 때에 서울에 올라가는 차비도 만만치 않았다. 돈이 떨어지면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생활했다. 전세금은 매년 올라 2년에 한 번씩은 이사를 해야 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니 돈이 더 들어갔다. 아이들 돌 때 선물로 받은 반지도 다 팔아 썼다. 다행히도 매년 월급이 조금씩 올랐다. 그런데 왜 이리 매일 같이 궁핍한 걸까?
월급 통장관리는 아내가 했다.
“가계부는 쓰는 거야?”
“봐봐.”
매월 적금을 붓고 있었다.
“뭐 힘들게 저축해. 그냥 쓰는 게 낫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뿌듯했다.
전세 계약이 끝날 때마다 매번 이사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직장생활을 한 지 15년쯤 지나니 모은 돈이 좀 되어 집을 사기로 했다. 아이들이 커서 조금 더 넓은 아파트가 필요했다. 아파트는 아내가 보러 다녔다. 어느 날 32평 아파트를 계약한다고 나가더니, 느닷없이 38평을 가계약했다며 싱글벙글 들어왔다.
“38평 급매물인데, 너무 좋은 집이야. 내가 150만 원 더 깎았어.”
그 집을 사려면 1억 4천만 원을 빌려야 했는데, 15년 동안의 이자가 무려 8천만 원이나 되었다.
미친 짓이다, 그냥 이사 다니며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모자라 도와달라는 얘기는 못 하고, 원금이 1억 4천만 원인데 이자만 8천만 원이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놀라워하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네가 그 큰돈을 빌릴 수 있다니 얼마나 좋으냐.”
할 말이 없다.
다시는 도와 달라고 안 할 거다.
아내가 38평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소원이라니 안 들어줄 수 없다. 매달 126만 원씩 갚아야 했다. 다행히 두 아이가 공부를 잘해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등록금이 전혀 들지 않아 큰 어려움은 없었다. 15년 후에 그 집은 우리 집이 되었다. 이자 8천만 원은 우리 두 아이가 부담한 셈이다. 아이들이 장가갈 때 4천만 원씩 보태 줘야겠다.
아버지처럼 갚으라고 하지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