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청주에 있는 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 이제 막 성인으로써 더 넓은 세상을 접하게 된 나는 ‘자유’라는 말을 맛볼 생각에 설레고 있었다. 고등학교 모의고사 성적보다 훨씬 더 못 나온 수능 성적에 주변 사람들은 시험을 다시 한번 더 보는 건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권하기도 했고, 대학교도 어떻게 보면 성적을 맞춰서 왔으며, 심지어 과를 선택하게 된 것도 내가 원해서라기보다도 ‘교사’를 선호하시는 우리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른이 되어 가장 먼저 내린 결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른’답지 못한 결정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설레고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어른을 체험하고 싶었던 아이였을 뿐이다.
새내기로서 마음껏 놀았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니, 더 이상 노는 게 이전처럼 마냥 즐겁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대학 생활 동안 이렇게 놀기만 하는 건가? 가족들이 다 있는 집과 멀리 떨어져 있는 청주라는 낯선 도시에서 앞으로 지내야 할 3년이 두렵게 느껴졌다. 매일 보는 동기들은 이제는 색다를 게 없는 가족처럼 느껴졌고, 좁은 캠퍼스는 앞으로 남은 대학 생활이 매일매일 똑같을 것이라는 평화롭지만 권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듣는 수업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내용처럼 느껴졌으며, 두꺼운 전공책 대신에 수채화 연습을 하던 스케치북과 탈춤 수업을 할 때 쓰던 한삼을 들고 다니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분명 다른 친구들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하여 교육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그 노력의 결실로 종합 대학교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있는데, 나만 다시 고등학교로 입학한 기분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초등교사’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저 좋게만 느껴졌던 이 칭찬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를 가두는 프레임처럼 느껴졌다. 나 스스로를 진심으로 미래의 초등교사라고 느끼지 않는데, 주변의 환경이 나를 ‘초등교사’로 만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과 주변이 인식하는 나의 모습 사이의 괴리감이 생겼고, 내가 상상했던 대학 생활과 실제 대학 생활 간의 괴리감이 생겼다. 이러한 순간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다음 학기부터 연합동아리 ‘여행하는 선생님들’에 합류하여 활동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이 동아리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연합동아리’의 장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이비 종교 단체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반, 교육대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은 대학생들-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절반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동아리 활동이 약 1년 반간의 시간이 흘러 나의 대학 생활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아리에서 함께한 그 시간을 감히 나의 ‘대학 생활’ 넓게는 ‘청춘’이라고 말하고 싶다.
‘심장이 뛰는 일을 하세요’
‘여행하는 선생님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하면서 앞으로 살아갈지 고민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길이 정해져 있지만 그 길이 맞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오랜 방황 끝에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은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들이사실 나에게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교육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앞으로 할 직업(초등교사)이 정해져 있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에는 나아갈 진로가 정해진 교대생들이 많았기에 이러한 질문들이 생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 당시 나에게 필요한 질문이었고, 결국에는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대해 대답해 나가는 과정들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동아리를 통해서 처음으로 교육 여행을 떠났다. 경상남도 사천에 있는 한 고등학교로 가서 처음으로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발표도 많이 해 보았기에 그저 또 하나의 발표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학생들 앞에 섰다.
나는 원래 계획적인 성향이 강해서, 첫 수업을 준비하면서 첫인사부터 마지막 인사까지 꼼꼼하게 대본을 써갔던 기억이 난다. ‘수업’이라는 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계획대로 될 수가 없다. 당연하게 대본까지 쓰며 꼼꼼하게 준비한 수업은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원래의 나 같았으면 그렇게 틀어진 계획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너무 재밌었다.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대답과 활동 결과물을 만들었고, 그러한 모습이 나의 계획과는 달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오히려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은 나 자신도 처음 발견한 모습이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하나의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세상은 나 혼자 만들어가는 세상보다 넓었고, 풍부했고, 깊었으며 아름다웠다. 앞으로 나와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도 오래 이 세상에 머물고 싶었다.
문득 동아리의 한 사람이 말해준 게 생각났다. ‘어떻게 앞으로 내가 할 일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심장이 뛰는 일’을 하라고 했다. 나의 첫 수업을 했던 그 순간 나는 어떠했는가? 사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때 내 심장은 기분 좋은 설렘으로 뛰고 있었다.
그렇게 내 첫 번째 교육여행이 끝나고, 나는 다시 교육대학교로 돌아왔다. 동기들은 그대로였고, 캠퍼스와 청주도 여전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 학교에서, 청주에서 지낼 시간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교육대학교에서 듣는 수업들이 의미 없게 느껴지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초등교사’가 잘 어울린다고 말하기 이전에 내가 어떠한 교사가 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한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수업을 들으면서,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끔 과거 내가 처음 수업을 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내 심장이 기분 좋게 뛰는 걸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