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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손 Mar 14. 2023

라면은 신라면, 브런치는 이혼?


'작가'라는 타이틀은 얼마나 폼이나는가.

무슨 작위라도 하사 받은 듯 그 명칭에 우쭐해서 밤마다 커피 한잔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제법 글 쓰는 폼을 몇 번 잡았더랬다. 드물게 밀린 말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거침없이 써 내려간 적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을 한 단어, 한 문장에 잡혀있기 일쑤였다. 

가뭄에 콩나듯한 라이킷과 댓글에 열광하는 것도 오래가지 않았고 얼치기 작가 놀이도 잠시였다. 

이내 쓰다 만 글이 서랍에 수두룩하게 쌓이다가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


이름 탓인지 '느린손'의 손은 느려서 애먼 엉덩이까지 고생시켰다. 써지는 것 없이 오래 앉아있는 것은 오래 서 있는 것보다 힘들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다른 작가, 작가놀이하는 작가 말고 진짜 작가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잘 쓴 글들을 읽느라 내 글을 쓰는 것을 잊었고 급기야 주눅이 들어 무슨 결단이라도 내려야 했다.


'긴급 절필선언'...이라도 할까 하다가 누가 알리도 없는 선언은 참 우스꽝스럽고 애처롭기까지 한 일이었다.


그래서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그래도 전직 마케터이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어떤 글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지 '요즘 뜨는 브런치북' 순위를 쭈욱 훑어보았다.

1위에서 10위까지 주요 키워드는 매우 쉽게 정리됐다. 애초에 '분석'해보려 했는데 분석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매우 빠르게 한 단어로 요약됐다.


'이혼'


1위부터 10위까지 글 중 7개의 글 제목에 이혼 또는 이혼을 암시하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으면 컴퓨터 관련 글을 찾아 읽는다. 그러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혼에 관심이 있는 것인가. 

남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싶은 관음 같은 것일까, 아니면 인생의 큰, 어쩌면 가장 큰 질곡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위로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남의 아픔을 통해 스스로 위안이라도 얻으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의 선택에 대한 응원을 보내려고?

물론 글이 좋지 않으면 순위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글 자체로 보아도 순위에 오른 글들은 오를만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며 잘 살고 있다..류의 착한 제목의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그런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들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마도 너무 순한 맛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라면은 신라면이고 외식 1등 메뉴는 마라탕이다. 

사람들은 착한 맛에 반응하지 않고 맵고 짜고 자극적인 것에 열광한다. 아무 죄 없는 김치 한 보시기로 따귀를 날리고 족보를 꽈배기처럼 비비 꼬고 한번 더 꼬아야 사람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올 수 있다. 

브런치의 이혼 관련 글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즉각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한 동안 플레이팅 도마가 유행했다. 칼을 대는 도마라기보다는 음식을 보기 좋게 '플레이팅'할 때 사용하고 보통 긴 손잡이가 있다. 손잡이를 만들면 손잡이 양쪽 부분, 소위 '어깨' 부분을 따내게 되는데 이 부분은 영 쓸모가 없어 대부분 폐기물이 되거나 난로로 들어간다.


이 '어깨'를 이용해 물고기를 만들었다.

다정한 물고기 부부 한 쌍과 엄마를 따르는 치어 떼이다. 해저의 산 역시 컵받침을 만들고 남은 버려지는 목재를 사용했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바닷속 풍경은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듯했고, 한없이 착한 맛으로 한 동안 공방 휴게실의 벽을 장식했다. 애초 의도한 바와 달랐지만 나름 괜찮은 실수였다.



사실 치어 한 마리의 색깔을 달리 한 것은 '다를 수 있다, 달라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심고 싶어서였는데 분위기가 귀엽고 명랑해서 보이는 대로 아기자기한 물고기 가족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작품의 진가가 달라진 것은 제목을 바꾸고부터이다. 

농담처럼 던진 것이 새로운 작품 제목이 되었고 이른바 고추 세 개짜리 아주 매운맛 제목이 되었다.

작품의 새 제목을 들은 사람들은 이른바 '빵빵' 터졌다. 


'불륜'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색깔이 다른 치어 한 마리가 몹쓸 상상을 부른 것이다.

어찌 되었든 오래되어 벽에 그냥 '존재하던' 작품 두 점이 새 이름을 받고 다시 살아났다.


제목이 어떻든, 작가의 본래 의도가 어떻든, 내 글도 내 작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렇다고 해도 맵지 않은 것을 일부러 맵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엇을 마음껏 만들어 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봄이다.

자 이제, 다시 시작. 

싱거우면 싱거운대로 매우면 매운대로 뭐든 쓰고 뭐든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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