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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손 Oct 26. 2022

화투나 한판 칠까요

주변 사물을 목공에 이용하기

우리 주변의 사물은 모두 다양한 형태의 선, 면으로 만들어져 있다. 

즉 모두 두께, 길이를 계량화 할 수 있다. 참고로 항상 손에 들려있는 내 핸드폰의  길이는 145mm이고 지갑에 있는 만 원짜리 지폐의 길이는 148mm이다. 그리고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가늠자가 아닐까 생각하는 내 왼손의 한 뼘은 대략 240mm이다. 

물론 이렇게 주머니에 있는 사물의 길이를 재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주머니에 줄자를 넣고 다니는 사람을 더욱 적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늘 지니고 다니는 물건의 길이를 알면 간혹 크기를 가늠해야 할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서랍장을 만들 때 프레임을 완성하고 서랍 내부 박스를 완성하면 마침내 서랍 앞판을 달아야 한다. 가구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하는 얼굴이 되는 이른바 화룡점정의 작업이다.

페인트를 칠하는 서랍이라면 별로 고려할 것이 없겠지만 원목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목재의 색감(같은 목재라도 색감이 다르다), 나뭇결무늬 등 조화를 고려하여 사랍 앞판의 순서를 결정한다. 다섯 칸짜리 서랍장을 만들경우 다섯 장의 앞판이 필요하지만 몇 장을 더 준비해서 최종 다섯 장을 선별하기도 한다. 중요한 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그렇지만 즐거운 작업이다.


앞판의 선정과 배치만큼 중요한 것이 서랍과 서랍 사이, 서랍과 프레임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맞추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2~3mm 정도가 적당하다. 더 크면 치밀한 맛이 떨어지고 더 작으면 온습도가 높아지는 여름철에 나무가 팽창하여 서랍이 열리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로 재가며 서랍 사방 2mm를 맞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쪽을 맞춰놓고 다른 쪽을 맞추다 보면 먼저 맞춘 곳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일정한 틈을 유지해주는 스페이서인데 전용 스페이서를 구매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가장 쉽고 저렴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화투이다.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화투는 모두 한 장의 두께가 1mm이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아귀'의 도끼가 손목으로 날아올 수 있기 때문에 정확히 같아야 한다.

서랍 사방에 두장씩을 대면 사방 2mm가 된다. 먼저 왼쪽과 아래쪽에 화투 두장씩을 놓고 서랍을 밀착시킨 후 오른쪽과 위쪽을 2mm가 되도록 자르거나 대패를 쳐서 맞추는 방식이다. 물론 다른 얇은 것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화투는 저렴하며 56장으로 여러 장의 스페이서가 필요할 때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항상 고르게 1mm를 유지한다는 것은 스페이서로서의 큰 장점이다.


2mm가 필요해서 두 장을 집었는데 '삼팔광땡'이라도 나오면 좋은 가구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은 보너스 같은 것이다.

유튜브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목공에서 화투를 쓰는 것과 같은 이유로 미국에서는 서랍을 만들 때 트럼프 카드를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화권을 넘어 목공과 도박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항상 일정한 두께가 유지되며 얇고 잃어버려도 그리 아쉽지 않은 스페이서를 찾다 보니 우리는 화투, 저 미국에서는 트럼프 카드를 쓰는 것이다. 주변의 사물에서 필요한 조건을 갖춘 물건을 찾아 작업에 응용하는 것은 일머리가 좋은 목수의 자질이기도 하다.


이제 혹여나 공방 바닥에 화투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할 일 없는 목수들이 둘러앉아 꽃놀이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는 거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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