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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손 Nov 20. 2022

당근의 추억

원목 가구 구별법

'당근, 당근'


요즘 여럿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심심치 않게 들는 알림이다. '당근'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집 근처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는 필연적으로 ‘풍요로운’ 쓰레기를 남길 수밖에 없다. 환경문제가 심각한 시대에 자칫 쓰레기가 될 수 있는 물건에 한 번, 두 번의 사용 사이클을 더 만든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나도 꼭 새것일 필요가 없는 물건을 사야 할 때는 ‘당근’에서 한번 검색해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최근에 아들과 같이 가려던 인디음악 밴드 ‘검정치마’의 콘서트 티켓을 구하지 못해 혹시나 하고 당근에서 검색을 했는데 그냥 진짜 입는 여성 '검정치마'만 나오는 웃픈 에피소드만 제외하면, 가격이 맞지 않거나 이미 팔린 경우는 있지만 ‘당근’에 없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가구도 예외가 아니다. 꼭 이사철이 아니더라도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트렌드가 변하면 바꾸는 것이 가구이다. 그만큼 당근에서 가구의 거래수가 생각보다 많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목재값이 거의 두배가 오른 요즘에 ‘당근’의 가구는 헝그리 목수인 나에게 좋은 목재 공급원이 되기도 한다. 내 용도에 적합한 가구는 원래대로 대충 손봐서 그냥 쓰기도 하지만 전부 분해해서 다른 종류의 가구를 만들기도 한다. 

목재로 쓰기에 가장 좋은 가구는 식탁이나 테이블이다. 너른 상판을 고 잘라서 쓰기 좋기 때문이다. 


6인용 식탁의 상판이면 작은 장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다. 상판을 분리하면 아래쪽에는 나사 자국 등 흠이 있지만 흠을 새로 만드는 가구의 안쪽을 향하게 하면 보이지 않게 된다. 아래 사진은 상판이 갈라졌다는 이유로 무려 무료로 당근에서 나눔을 받은 6인용 오크(참나무) 식탁을 써서 만든 콘솔장이다. 다리는 본래의 두꺼운 다리를 가늘게 켜서 만든 것이고 문짝은 자투리를 얇게 켜서 만들었으니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뒤판과 철물을 제외하면 테이블 하나로 다 만든 것이다. 자칫 버려질 수 있는 식탁에 새 가치를 더해 새로운 가구로 재탄생한 업사이클링(Upcycling)의 좋은 예이다.


'당근' 무료 나눔 식탁으로 만든 콘솔장(오크)


원목의 가장 큰 매력은 화학적 변화 없이 톱날이라는 원초적 도구만으로 얼마든지 모양과 용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어느 산을 호령하며 살다가, 얼마간 식탁으로 뉘 집 부엌에서 밥과 국의 무게를 버티다가 이제 우리 집에서는 콘솔장으로 변신해서 거실 한 켠을 지키고 있다. 먼 훗날 더 이상 용도를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하더라도 어느 공사장에 새벽을 녹이는 장작으로 쓰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나무이다.


그런데 재가공을 목적으로 중고가구를 구입할 경우 잘 살피지 않고 구입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원목이 아닐 경우 재가공이 어렵기 때문인데, '당근’의 사진만으로 이것이 원목인지, 무늬만 원목인 것인지 구분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보통 판매글에 쓰여있긴 하지만 파는 사람도 모르고 파는 경우가 많다.


원목이 아닌 경우는 

    상판에 반복적으로 같은 무늬가 배열되어있다 ; 인공 판재(합판, MDF 등)에 무늬목을 붙인 경우이다  

    마구리면(나무가 잘린 면; 식탁의 경우 긴 방향 양쪽 끝 면)의 색깔이 상판과 같다. 마구리면은 나무가 잘린 면으로 수관 등이 노출되어 상판보다 진하다. 색깔이 같으면 위와 마찬가지로 무늬목을 붙인 것이다.

    상판이 마룻바닥 같은 모양이다 ; 이 또한 원목이라 할 수 있지만 작은 원목 조각을 핑거조인트 방식으로 붙인 것이라 원목 고유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없다.   

    상판 테두리가 있다 ; 테두리 안쪽은 합판일 가능성이 크다.  


위 몇 가지 포인트만 익혀두면 가구매장에서 가구를 고를 때도 도움이 된다. 요즘은 가구에 재료, 생산자, 원산지 등을 표시한 '표시사항'이 붙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자칫 원목이 아닌데 원목값을 주고 사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원목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꼭 좋은 가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인공 판재(합판, MDF, PB 등)로 만들어진 가구가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용도에 맞는 환경등급의 판재를 쓰고 그 만의 기능(주로 안정성, 경제성)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습기가 많은 싱크대나 문이 큰 붙박이 장은 틀어짐을 방지하고 경제적으로 만들기 위해 대부분 인공 판재를 쓴다.


좋은 가구란 미적 요구에 부합하고 원하는 기능에 충실하며 충분히 튼튼한 것이다. 물론 환경적으로 인체에 무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조건이다.


무안한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10여 년 전에 '오크 원목'이라고 알고 산 식탁이 원목이 아니고 무늬도 오크가 아님을 목공을 시작하고 한참 후에 깨달았다. 식탁에서 수저가 떨어져 줍다가 위를 올려다봤는데 식탁 윗면의 결은 긴 방향으로 흐르는데 밑면은 짧은 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위아래 합판을 대서 두께감을 주고 테두리를 둘렀으니 위에서만 보고는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혹여나 이 글을 읽고 서둘러 식탁 아래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그동안 만족하고 썼으면 그걸로 족한 것이고 사실을 안다고 해도 어디 딱히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저 마음만 상할 뿐이다.

그래도 분명히 기어이 식탁 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쪼그리고 앉은 김에 오래된 거미줄이나 걷고, 부디 나오실 때 머리 조심하시라.






환경등급; 합판 등 인공 판재는 제작과정에서 많은 양의 접착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해물질이 방출될 수 있다. 특히 포름알데히드 방출량에 따라 E2, E1, E0, SE0 등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실내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등급은 E0, SE0 등급이다. 환경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잘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데 몇 년 전만 해도 대형 가구업체가 E1을 친환경 등급이라고 광고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E1.....'1'이라는 숫자 때문에 모르면 왠지 친환경 등급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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