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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Nov 27. 2022

왜 반말하시는 거죠?


단골 카페 카운터 근처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는 오후였다. 

점심시간이라 카페는 조용했고 클래식의 음악소리만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녀가 매장 안으로 들어와서 카운터 앞에 섰다. 

흐린 날인데 여자는 동그란 선글라스 차림에 빨간 조끼가 돋보였고 같이 온 남자는 검고 진한 눈썹의 중년 아저씨였다. 

여자가 말했다.

“오빠, 뭐 마실 거야?”

오빠라는 남자가 맞은편 카운터에 선 40대 카페 사장을 보고 말했다. 

“아무거나. 그런데 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어?”

하얀 마스크를 쓴 카페 사장이 대답했다.

“여기 화장실 비밀번호 있구요. 오른쪽 옆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검은 눈썹 남자는 메뉴판을 한참 보고 섰다가 화장실로 발걸음을 돌리는데 중년 여자가 남자에게 다시 물었다.

“오빠, 뭐 마실 건데!”

남자는 벌써 화장실로 발걸음이 향하고 있었고 중년 여자는 오빠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에이씨! 계산도 안 하고 그냥 가네!’ 여자가 기분이 나쁘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혼자 남겨진 여자는 카드를 꺼내며 카페 사장을 보고 말했다.

“나, 커피 하나 하고, 보자. 그런데, 여기 쌍화차 맛있어?” 

마침 화장실에 갔던 남자가 카운터 앞으로 돌아오더니 카페 사장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에이씨! 왜 화장실 문이 안 열려! 여기 뭐가 이리 불편해!”

“화장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서야 됩니다” 화장실 비번이 적힌 테이블을 가리키며 카페 사장이 대답했다. 

“아니! 그러지 말고 직접 가서 화장실부터 열어 주고 내 커피 타 줘!” 중년 남자가 말했다.

“그럼, 우리 커피 두 개 줘” 중년 여자가 카드를 내밀며 카페 사장에게 말했다.


나는 노트북을 보다 말고 이건 무슨 해프닝인가 싶어 그 두 중년과 카페 사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하얀 마스크를 쓴 카페 사장의 갈색 눈썹이 움찔하고 올라갔다.

나는 평소 이 카페에 단골로 다녔던 터라 차분한 카페 사장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정말 궁금하였다.

“초면에 왜 반말하시는 거죠? 반말하시면 안 됩니다!”

카페 사장이 또박또박한 어조로 분명하게 두 사람에게 대꾸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카페 사장의 입에서 마침내 터질 것이 터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중년커플에게서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오게 될까?


“아! 미안해요! 나는 친하고 싶어서 반말했는데! 호호호” 중년 여자가 눈웃음을 흘려대며 사과했다.


카페 사장은 남자화장실 쪽으로 문을 열어주려는 듯  중년과 함께 화장실 쪽으로 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화장실 문 고장이 아니었고 남자 손님이 비밀번호를 연거푸 잘못 누른 것이 원인이었다.

“아! 미안해요! 내가 화장실 번호를 잘못 눌렀네!” 남자 손님이 말했다. 


카페 사장은 카운터로 돌아와서 커피 원두를 도징하고 음료를 아무 말 없이 준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카운터로 다가가더니 큰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저기요, 아까 계산하고 내 카드 안 돌려줬죠?” 여자가 카페 사장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너, 오늘 잘 걸렸다’하는 뉘앙스가 숨어 있는 것처럼 들리는 말투였다. 


나는 커피잔을 조심스레 들어마시며 ‘아~, 이제 또 여기서 2차전이 시작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카페 사장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아까 영수증이랑 같이 드렸는데요, 앉으신 자리에서 다시 한번 천천히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자는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더니 부스럭 부스럭 빨간 조끼 주머니에서 카드와 영수증을 발견하고는, 

“아! 여기 있네요! 내 주머니에 있었네! 호호호”하고 크게 웃었다.


나는 카운터와 가까운 근처 테이블에서 ‘후유~’하고 다시 한번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남자와 여자는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주인장이 서비스로 내어준 비스킷의 초콜릿색 비닐을 뜯더니 대화를 이어 갔다.

“오빠! 이번에 나 예쁜 팔찌 하나 해주면 안 돼? 이제 곧 크리스마스도 다가오잖아 ”

“아이씨... 또 해줘야 돼? 팔찌 얼마 전에 해줬잖아...”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그 두 중년은 종이컵 4개를 더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컵들을 테이블에 남겨둔 채 서로의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중년들이 나간 자동문을 한번 보고 종이컵 네 개와 커피잔을 정리하는 카페 사장을 보며 말을 걸었다. 

“아까, 많이 당황하셨죠?”

“네. 사실, 순간 많이 당황했어요. 이걸 그냥 넘겨야 할까 그 짧은 순간에 뇌가 아찔했지요. 그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는데, 손님이 화가 나서 커피를 안 사 먹고 나가게 되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어요. 반면, 손님이 사 먹게 되었을 때 방문자 리뷰에 달릴 수 도 있는 네거티브한 댓글도 생각했지요. 그리고 오히려 남녀 손님이 언성을 높이며 소위, 갑질로 큰소리 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만약에, 내가 아니고 아르바이트 학생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그 짧은 찰나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 뭐예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참지 못하고 입바른 소리 했지요. 만약에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르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셔서 반말을 했다면 또 이해했겠지만, 저와 같은 연배의 처음 보는 손님이라서요 “ 

카페 사장은 나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말했다.

“저도 가까이서 봤지만, 그 순간 정말 당황하고 갈등되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친하고 싶어서 초면에 반말을 한다는 대답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래도, 손님이 바로  사과를 해서 보는 저로서는 다행이다 싶었어요.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곳이라 저럴 때 많으시죠?”


“하하하. 저도 이런 상황은 카페 오픈하고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나’를 포기 못한 저라서 나답게 살려고 입바른 소리 한 것이지요”  


카페 사장의 ‘나답게’라는 말도 정도 있게 들렸지만, 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비스직군에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 감정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콜센터 직원, 승무원, 백화점 판매원, 창구 직원 등의 감정노동자는 740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90퍼센트 이상이 폭언과 무리한 요구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고 답하였다. 

비단 740만 뿐만 아니라, 주위의 편의점이나 카페의 어린 아르바이트생들, 공공 서비스 분야의 직장인들, 그리고 의료 관련한 현장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는 육체적, 정신적 노동과 더불어 감정 노동에 까지 둘러 쌓여 있는 셈이다.


‘웨이터의 법칙’이란 용어가 생각난다. 

나에게는 친절하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업군이 있는 식당, 카페 등의 자리에 가서는 본인보다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힘을 ‘갑질’로 이용해 좋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분명히, 이런 사람은 ‘가까이 하기엔 멀리 보내고 싶은 당신’이라 결국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는 부류임에 틀림없으니 주의해야 할 대상들이다.   

사회적으로 감정노동에 대해 인식개선이 많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심리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각기 다른 환경과 현실에서 적용되기는 워낙 다양한 개체들이 모인 것이 인간사회라 언행을 가려하고 감정을 바로 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업무와 삶에 찌들어 오히려, 민원이나 고객들에게 불친절하거나 혹은 매너리즘에 빠진 태도로 일관하는 관련 종사자들도 주위에서 얼마나 많이 보는가?

일정한 대가를 지불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을 이용해 고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항상 감정노동의 약자에 놓였다고 말할 수 없고 내가 가해자가 될 가능성도 허다한 것이다. 

내가 구매력이라든지 권력의 상하관계라든지 하는 힘 있는 자리에 있을 때는 품위를 지켜 더욱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의 다반사를 풀어내기가 이리도 어렵다.


얼마 전 인터넷 신문에서 특별히 주목해서 봤던 기사 내용의 두 가지를 소개한다.

그 하나가 요즘 사람들은 사람을 직접 대면하거나 전화를 받는 것을 무척 두려워해서 간접적 소통의 도구로 카톡이나 메신저의 소셜미디어를 선호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사람과의 직접적 소통을 어려워하는 현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달러가 오르고 국내 시장경제가 어려워진 여파로 부동산 경기 역시 악영향을 받고 있는데, 상가 매매 역시 불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무인 상가가 집합적으로 있는 건물에선 공실이 없이 모두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기사였다. 이제 사람을 대면하지 않음을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다.  

무인카페에서부터 키오스크, 무인 편의점, 무인 세탁소, ATM... 등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으니 당연히 면대면 대화가 오고 갈 이유가 없어졌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이제는 사람과 사람의 교류가 그만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머지않은 시점엔 지금처럼 사람을 직접 대면하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무척 귀한 일이 될 것이란 의미이다. 

분명, 그런 시점이 오면 오히려 예전의 아날로그적 방식의 면대면 소통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고리타분하다 할 공자는 기원전 5세기에 이미 아래의 중요한 세 가지의 말을 남겼다.


재물에 임하여 구차하게 얻으려 하지 말고 어려움에 임하여 구차히 면하게 하지 말며

다툼에 이김을 구하지 말며 나눔에 많음을 구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의심스러운 일은 확정 짓지 말되 의견만을 곧게 하고 선입견을 두지 말아야 한다

臨財毋苟得 臨難毋苟免 狠毋求勝  分毋求多 疑事毋質  直而勿有 <<예기>>

카페 사장의 예에서 보듯 손님의 부당한 행동에 제동을 걸고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며 대가를 벌었다. 

이제 그 손님들은 다른 곳에 가서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정당하게 말하며 ‘나’ 답게 중심을 잃지 않고 정도껏 처신한 것이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서 '오빠'라고 부른 중년 커플에 약간 의심스러운 시선을 두고 다른 생각을 해보신 독자가 계실까? 의심스러운 일은 확정 짓지 말고 선입견을 두지 않으셨기를 바라 본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논어>>

커피 한잔에 오천 원 한 장이면, 아니, 요즘은 5천 원짜리 지폐는 구경할 수 없고 모든 것이 카드로 해결되는 편한 세상이다.  내 지갑의 오천 원을 들고 권력을 가졌다고 갑질하는 발상과 태도는 '예'가 아닌 천박한 자본주의의 작은 본보기로 더 큰 황금이 손에 들렸다면 그 권력의 위용은 엄청났을 것이다. 

다행히 카페 손님들은 '예'로서 곧 ‘사과'를 하였으니 일단은 서로 다행한 일로 마무리 되었다. 


자기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된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논어>>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말하는 가장 흔히 듣는 ‘역지사지’는 서양의 계몽주의 사상가인 ‘볼테르’도 숭배했을 만큼 위대한 황금률의 법칙이다.  내가 싫은 일은 타인에게도 싫은 일이 된다. 

그러니,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곧 남을 대접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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