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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Dec 02. 2022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나

항상 집을 그리워하는 나의 이야기

6시 퇴근 후 걸어서 1~2분 거리의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날렵하게 훑어 누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하얀색 중문을 열고 편한 실내화로 갈아 신는다.

거실을 지나 안방 책상에 나의 핸드백을 걸어두고 샴페인색 나의 노트북이 들어 있는 에코백을 의자 위에 살짝 올려놓는다.

얼른 편안한 순면의 윗옷으로 역시 순면의 퐁당하게 여유 있는 실내용 바지로 갈아입는다.

머리카락은 포니테일로 모아서 묶거나 배배 꼬아 올림머리를 하고 집게핀을 꽂아 둔다.

‘아, 편안해~’

역시 집이 최고다.


집이 나에게 말한다.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너를 기다렸어. 얼른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나를 따뜻하게 데워주렴. 나는 너의 발자국 소리에 심장이 두근두근 뛴단다. 이제 얼른 부엌으로 가서 집안 가득 음식 냄새를 풍겨 주렴. 너의 분주한 발자국 소리에 사각의 펼쳐진 벽면들도 신나하고 있단다”


일터에서 보이는 나의 집 부엌 창문은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다.

창문의 그림자가 나한테 말한다.

“언제 올 거야?”

“쫌만 기다려. 곧 갈 거야”

직장과 집이 걸어서 1~2분 거리로 엎어지면 진짜 코가 닿을 거리에 집이 있지만 나는 언제나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집이 그리운 사람’이다.


냉장고 문을 열어 들여다보면서 오늘 저녁밥은 뭐하고 먹을까 하고 고민하며 서있는다.

냉장고엔 달걀이 떨어져서 한알도 없다.

그래도 나는 행복함을 충분히 느낀다. 집이니까.

로컬 마트에서 사두었던 상추를 꺼내고 향이 진한 추부깻잎을 꺼내 놓는다.

김장김치를 꺼내고 견과류와 볶아 놓은 멸치반찬을 식탁에 꺼내 놓는다.

혼자서 집밥을 먹는다.

좋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그런데, 너무 조용한가? 밋밋함을 느낀 나는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가져와 식탁에다 세운다.

유튜브를 클릭하고 ‘먹방’이라고 타이핑한다.

온갖 종류의 음식과 먹방러들이 등장한다.

맘에 드는 썸네일을 골라서 틀어 놓는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번 뜨고 반찬을 집으며 영상을 본다.

나는 영상을 보고 웃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낀다.

누군가가 이 모습을 봤다면 ‘쓸쓸해 보인다. 혼자 먹는 왕따의 저녁밥상이네’ 하겠지만 전혀 아니다.

나는 혼자 먹는 집의 밥상에서 행복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고 더 이상 떠들썩하지도 누군가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이 순간, 바로 나의 집에서 편안한 행복함을 느낀다.

누군가를 위해 차려주는 밥상의 기쁨도 좋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려 주는 밥상도 좋지만,

혼자 집에서 단출하게 차려 먹는 집밥의 자유에서 고요함과 행복한 여유를 느낀다.


화면 속 먹방러도 행복하고 맛있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먹방러는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자신의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

나는 그런 먹방러를 보면서 오늘 나랑 같이 밥을 먹어 준 것에 대해 심심한 고마움을 느낀다.

식사를 마친 나는 이제 먹방과 작별을 고하고 시사나 철학에 대한 내용의 채널로 주제를 바꾼 후에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시작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귀와 머리는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집중한다.

일방적이지만 전혀 일방스럽지 않음에서 또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손은 계속 설거지에 집중한다.

이렇듯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과 공간의 여유로움에서 오롯한 행복을 느낀다.


가족들이 한 곳에 모이는 주말이 되면 집안의 거실이 가득 차고 떠들썩한 평화가 가득하게 된다.

나는 또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나, 주말 저녁 썰물 빠지듯 가족들이 각자의 일로 자리에 돌아갔을 때, 나하고 집만 남은 고요한 시간이 되면 나는 또 행복함을 느낀다.

칠순이 가까운 엄마는 홀로 집에 남게 된 ‘빈 둥지 증후군’에 대한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래서, 엄마는 자녀들이 모두 직장과 각자의 가정을 찾아 나가고 혼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외로워서 싫다고 하셨다.

그러나, 엄마의 친구가 놀러 와서 말씀하시길 ‘집에 자녀들이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고 하셨다.


나는 고독한 빈 둥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또 그것이 외롭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하거나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안정과 충만이 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내가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일하러 나가면 그만이다.

잠을 자고 일어난 침대를 정리하고 이틀에 한번 꼴로 베갯잇을 갈아 끼운다.

내가 좋아하는 향의 향수를 이불깃과 새로 갈을 베갯잇에 살짝 뿌려두고 빨랫감을 세탁한다.

세탁이 될 동안 씻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볕이 좋은 바깥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출근을 한다.

집은 또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리고 나는 또 하루 종일 집을 그리워한다.


주말에는 약속이 있으면 잠시 차를 몰고 외출해서 친구를 만난다.

항상 만나는 친구는 거의 정해져 있고 이제는 더 많은 인간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심플한 게 좋다.

집안에 새로운 물건을 사서 들이지 않고 있는 물건을 정갈하게 간수하여 오래도록 두고 쓴다.

옷장에는 20년이 훨씬 지난 옷들이 간혹 줄을 서 있고 계절이 바뀌면 면티나 양말, 언더웨어들만 새로 마련한다. 가전제품들은 고쳐서 사용하고 휴대용 전자제품도 잘 바꾸지 않고 손때가 묻도록 오래도록 쓴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잠시 집을 생각해 본다.

예쁜 향이 은은할 편안한 침실과 단출한 부엌을 생각한다.  

‘아... 집에 가고 싶다’

다시, 일에 매진한다.


이윽고, 퇴근 시간이 되고 나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외투를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휴대폰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집으로 직진한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오늘은 1 분하고 30초가 걸렸다.

편안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냉장고 문을 연다. 그 흔한 멸치도 한 마리 없고 계란도 한알이 없다. 그러나 나는 행복함으로 냉동실 한쪽에 누워 있던 만두를 꺼내고 가래떡을 꺼내어 떡만둣국을 준비한다.

집안에 금세 따스한 온기가 퍼지고 편평하고 직각인 벽체들에 생기가 솟아난다.

파송송 썰어 넣은 냄비에 떡만둣국 1인분이 완성되면 뜨거움을 오래 가둘 그릇에 담아내고 열무김치만 두고 자유롭게 저녁을 먹는다.


다시 유튜브의 먹방러를 우리 집 화면에 초대해서 저녁을 먹는다.

나는 나의 그릇에 집중하고 먹방러는 자기 그릇에 집중하고 밥을 먹는다.

나는 웃으면서 천천히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나는 고요한 내 집을 만끽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낸다.

직사각형의 집, 그 속에 잔잔히 여유로운 시간이 흘러간다.

포근한 집, 이불속에 달팽이처럼 기어들어가 따뜻함을 만끽한다.

하루 종일 나만을 기다렸을 나의 집.

내가 하루 종일 그리워했던 나만의 집과 밤새토록 시간을 보낸다.

이내 아침은 빨리도 찾아오고 나는 또 출근을 하여 나의 사랑하는 집을 종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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