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세계여행 130일 차.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선언했을 때 많은 선배들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집 나가면 고생이다. 여행은 가끔 다닐 때나 행복한 거다. 일 년 간 세계 돌아다녀봤자 힘들기만 하지. 금세 한국이 그리워질 거다' 등등. 100일 넘게 집 떠나 살아보니 이제 조금은 알겠다. 인생 선배들의 말이 일견 맞는 부분도, 또 정확하게 틀린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회사 그만두고 여행하니 행복한가? 순수하게 삶의 재미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매 순간이 행복하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아주 많은 순간이 벅차고 행복하고 재밌고 뿌듯하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즐거운 고생이다. 즐거운 고생이라니, 소리 없는 아우성도 아니고. 고생이 어떻게 즐거울 수가 있나. 그런데 즐거울 수 있더라.
일단 확실한 건 집 떠나면 피곤하다. 5성급 최고급 호텔에 묵고, 기사님이 딸린 차를 타고 다니며 관광하는 게 아닌 이상 피곤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에선 더욱 그렇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 처음 맛보는 음식,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언어까지. 낯선 여행지에선 온갖 시각, 후각, 청각, 촉각적 감각이 한 번에 쏟아지니 정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쉬이 피로해진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하루를 복기할 틈도 없이 까무룩 잠이 든다. 한국 음식은 또 어찌나 그리운지. 한식이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적어두는 메모장은 이미 한 페이지를 훌쩍 넘겼다.
근데 그게 여행의 매력이다. 일상적으로 마주하던 것들과 잠시 안녕하고, 온통 새로운 것에 부딪혀 보는 나날들.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깊이 알게 된다. 예컨대 평소 난 워낙 털털해서 어느 곳이든 지붕만 딸려 있으면 잘 잔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의외로 예민한 구석이 있는지 청결하지 않은 숙소에선 영 자는 게 불편하다. 겁이 많다는 점도, 의외로 악바리 면모가 있다는 점도 최근 들어 알게된 내 모습이다. 여행하다 보면 별 것 아닌 순간에도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내가 이런 상황에선 의외로 의연하구나, 이런 순간엔 의외로 긴장하는구나 하는. 하다못해 다양한 음식에 도전하며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기도 한다. 그래서 참 재밌다. 나이 서른 하나에 아직도 나를 잘 몰라 이렇게 배우고 있다. 서툴디 서툰 인생이지만 오랜 여행을 통해 조금씩 나와 친해지는 중이랄까.
아직 집에 돌아가려면 멀었다. 길 위에서 더 많이 느끼고 경험하고 배우고 싶다. 일 년 간의 세계여행을 마쳤을 땐 아늑한 둥지를 벗어나기 전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한 내가 되어 있길 바라면서. 그러려면 즐거운 고생을 조금 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