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내용 기록
새벽4시, 눈이 떠져 한 시간 책을 읽었다.
그러다 곧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아
40분 정도 눈을 붙였다.
그 짧은 새벽잠 동안 나는 영화를 한 편 찍었다.
내용이 넘 생생했고 감정도 현실과 똑같이 느꼈다.
그 순간의 세계가 너무 선명해서,
나는 그 꿈을 이야기로 기록해 보기로 했다.
서늘한 새벽, 서은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갑자기 낯선 동네 한복판에서 깨어난다.
지형은 현실 같고, 건물은 익숙한 듯 낯설다.
무엇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손에 들린 핸드폰이 LG 구형 모델,
값은 딱 20만 원짜리,
분명 자기는 최신폰을 쓰고 있었는데.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말한다.
“그거…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거래였을 텐데?”
서은은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이미 핸드폰은 자기 것이 된 것처럼 손에 착 붙어 있다.
서은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려 하지만,
버튼을 누를 때마다 엉뚱한 숫자가 입력된다.
전화기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그녀의 의도를 거부한다.
전화를 걸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현실을 잠식해 들어온다.
“연락이 안 되면 큰일 나는데…”
하지만 그 이유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는 ‘연락해야 하는 이유’마저 안개처럼 흐릿해져 있다.
길을 잃은 서은은
자기 집도 아닌 곳에서 잠시 쉬려 하지만
전화기는 더 격렬하게 오류를 내고
그녀의 심장은 점점 답답함을 토해낸다.
갑자기 장면이 전환된다.
서은은 자신이 다니던 병원에 와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현실과 다르다.
병원 바닥은 진흙탕,
어떤 환자가 길을 따라 진흙을 끌고 다니며
이상한 짐들을 옮기고 있다.
서은은 그 흔적을 치우기 시작한다.
현실처럼 몸이 기억하는 노동감각,
그러나 환자는 계속 진흙을 남기고 사라진다.
잠시 후, 로비에 선임 간호사가 나타난다.
현실과 달리 선임은 따뜻하게 미소를 보이며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고 있다.
"선생님 제가 할께요. 주세요"
“ 괜찮아, 내가 할게"
이 장면은 꿈 같지 않게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다.
그리고 대기실에 들어가자,
근무자가 4명으로 늘어 있다.
원래 3명이어야 하는데,
정체 모를 네 번째 간호사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화목하다.
서은은 그 순간 깨닫는다.
“아… 여긴 현실이 아니다.”
핸드폰을 바꿀 이유도,
전화를 해야 할 이유도,
병원도, 환자도, 모두
어떤 “테스트” 같은 느낌을 준다.
서은은 마지막 희망처럼
동료에게 전화기를 빌려 남편에게 전화한다.
하지만 남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메마르다.
“너 도대체 왜 연락이 안 됐어?
너 때문에 짜증 나 죽겠어.”
말투가 낯설다.
마치 남편의 목소리를 한 ‘누군가’가 흉내 내는 것 같다.
이제 핸드폰 가게를 찾아야 한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되돌리기 위해.
하지만 어떤 골목도
똑같이 생긴 간판도
길도
끝없이 반복된다.
미로 같은 동네는
서은이 갈수록 더 깊이 갇히게 만든다.
그녀는 마침내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뭘 되돌리려고 했던 거지?”
그 순간,
주머니 속 핸드폰이 스스로 켜진다.
화면에는 이런 문장이 떠 있다.
“새로운 세계는 언제나 불편함에서 시작됩니다.”
옆에는
어제 산 전자 피아노의 반짝거리는 건반이 있다.
그녀는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린다.
아직은 뜻대로 눌리지 않는 손.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두려움 대신
이 세계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솟는다.
"새로운 세계는… 그렇지. 원래 처음엔 뭐든 안 되지.”
그리고 첫음을 누른다.
새로운 시작이 울린다.
이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봤다.
최근 나는 전자 키보드를 새로 샀다.
악보도 모르고, 건반도 처음이라
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설렘도 있지만,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이
무의식 안에서 다른 장면들로 번역된 것은 아닐까.
버튼이 제대로 눌리지 않는 핸드폰,
엉뚱하게 어긋나는 숫자들,
길을 헤매는 나,
그리고 어디인지 모를 낯선 세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순간
뇌는 때로 이렇게 기묘한 형태로
배움의 ‘어색함’을 꿈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나를
무의식이 꿈으로 응원하는 것일까?
처음은 낯설고 어렵지만
그 모든 시간들은
언젠가 ‘배웠던 시간’으로 남는다.